여름이라면 역시 냉면 같은 찬 음식이 유행이겠지만, 계절이고 뭐고 항상 유행에 둔감한, 아니, 유행이라는 것의 개념 조차 제대로 모르는 터라 그냥 '보이는 대로 처먹는' 생활을 해오고 있다. (사실 냉면 꾸미인 오이 때문에 관심이 없는 거지만)
아무튼 자금난에 시달리는 터라 외식을 가능한한 자제하고 있지만, 네이뷁의 모 블로그에서 '싸고 맛있는 우동집' 이라는 곳이 소개되어 있는 걸 우연히 보게 됐다. 을지로3가역 근처에 있는 '동경우동' 이라는 가게였는데, 메뉴판 짤방을 보니 미X야니 X우동이니 하는 소위 '이름난 일식집' 보다 훨씬 착한 가격이었다.
을지로3가역이라고 하면, 청계천과 함께 도보 나들이를 뻔질나게 하는 을지로지하상가를 통해 걸어갔다 올 수 있는 거리라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블로그에 나와 있던 대로 8번출구로 나왔다. 오른 편에 같은 활자체로 통일되어 있는 인쇄점이나 간판 가게가 쭉 늘어서 있다.
그리고 출구를 나오자 마자 왼편을 바라보면 떡하니 나오는 가게. 란마 1/3(가칭???)의 방향치 본좌 모 씨라도 절대 헤매지 않을 위치다. 계절이 계절인 지라, 특별 메뉴로 모밀국수를 팔고 있었다.
일단 위의 사진을 찍은 뒤 가게에 들어갔다. 점심때가 지난 좀 애매한 시간이었지만, 꽤 많은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에어컨이 있는 한 쪽 구석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 그 블로그에서 본 것 보다는 200~300원 가량이 더 비싸졌는데, 그렇다고 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들이다.
일단 우동 종류 중에서 먹어 보기로 하고 조금 고민하다가 오뎅우동을 시켜봤다.
주문을 받은 뒤 곧바로 나온 반찬들. 오이지와 단무지 각 두 쪽씩, 그리고 깍두기와 오뎅을 찍어 먹으라는 의도로 내온 와사비 살짝 푼 초간장이 주어졌다.
내부 인테리어는 비교적 소박했지만, 창가에 매단 원통형 조명기구가 독특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주문한 우동 그릇이 나왔다. 오뎅우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종류의 어묵 네 가지와 찐어묵, 맛살, 삶은 달걀 반쪽, 그리고 곤약이 들어 있었고, 튀김 부스러기와 송송 썬 파, 잘게 부스러뜨린 김이 가츠오부시 국물에 동동 떠 있었다.
'싼 가격' 에 혹해서 왔으니, 맛에 지나친 기대는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단 국물부터 몇 모금 떠먹어 봤는데, 예상 외로 깔끔한 맛이었다. 물론 일부 '환경단체' 에서 잔뜩 부풀려 떠벌대는 'MSG' 가 들어 있기는 했겠지만, 조미료 보다는 다시마와 가다랭이 국물 맛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국물이 개운한 맛이어서 특별히 같이 나온 단무지나 깍두기를 먹을 필요도 없었는데, 오뎅은 간장에 찍어서 먹었다. 와사비 간장이라서 그런지 혀가 아닌 코로 매콤함이 느껴지는, 개인적으로는 살짝 불쾌하게 느껴지는 맛이 되레 식욕을 돋구었다. 물론 국물까지 싹 비웠고. 다만 면은 쫄깃함이 좀 덜했다.
가격 대 성능비도 상당히 좋고, 더군다나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자주 가게 될 것 같은 집이었다. 공식적으로 '맛집 리스트' 에 추가. 다른 메뉴들도 조만간 천천히 먹어볼 생각인데, 다만 유부초밥 같은 경우에는 가격에 비해 실속이 떨어진다고 하니 일단 패스.
그리고 다시 지하도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파리바게뜨 매장이 눈에 띄어서 산 초코소라빵. 럭키☆스핀(가칭???)의 코났다(가명???)로 인해 꽤 유명해진 아이템인데, 모 빈유 츤데레 히로인이 히트시킨 메론빵 보다는 국내에서 훨씬 쉽게 구할 수 있는 과자빵이다.
다만 그 먹는 방법. 다른 사람들은 크림이 든 넓적한 부분부터 먹거나, 혹은 애니에 나온 대로 뾰족한 윗 부분을 뜯어서 밑의 크림을 발라먹는 창의적인 취식법을 발휘하지만, 나는 코났다 원전 스타일 거의 그대로 먹는다.
이유야 뭐, 일단 빵 뿐인 밍밍한 윗부분을 먹다가 점점 넓적해지면서 나오는 크림을 느끼는 '크레센도 스타일' 을 즐긴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코났다 식으로 들고 먹어도 웬만해서는 크림의 점성 때문에 흘릴 일도 거의 없고.
그렇다고는 해도, 요즘 크림빵이나 단팥빵 계통의 물건들은 속재료가 너무 적다. 저 소라빵도 맨 위의 5층에서 2층 중간까지는 아무 것도 없었고, 기껏 해야 2층 중간부터 초코크림이 들어 있는 정도였다. 뭐 어차피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을 것도 아니고, 그냥 '우매한 소비자' 로서 그네들 상술에 순응하고는 있지만.
p.s.: 오뎅우동이 아니라 카레우동 시켜서 먹었으면 완전히 오덕 막장이 될 뻔했네. (힌트: 아즈망가 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