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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잡설록 (공지 필독!!!)
by 머나먼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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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 신문을 보니, 미국 하원 의회에서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 의 촉매로 작용한 것 중 하나가 워싱턴 포스트(WP)에 실린 '반박 광고' 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6월 14일자 신문에 실린 'The Facts' 라는 제목의 그 광고는 '종군위안부 모집과 관리는 강제적이지 않았다' 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는데, 그러한 주장과 더불어 우파 국회의원과 언론인 45명의 이름이 같이 게재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45명 중, 저 광고를 게재하기 위한 비용 전액을 부담하고 우파 인사들의 이름을 게재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 바로 스기야마 고이치(すぎやまこういち, 1931-)라는 작곡가였다는 것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스기야마는 비디오 게임 장르 중 하나인 RPG(롤플레잉 게임)에서 신기원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음악 작곡가로 국내외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이다. 물론 스기야마가 그 전부터 작곡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정치적인 입장 표명에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러한 극우 성향의 소유자였다는 것은 정말 암담하기 그지 없는 소식이었다.

위키피디아 일본판을 참고해 보면, 스기야마는 그 이전에도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난징 대학살의 사망자 수는 과장된 것이며, 일본군의 학살 행위도 사실이 아니다' 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하려다가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그 사전의 편집자는 '사건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라고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편집자의 의도야 어쨌건 결국 결의안은 하원에서 가결되었고 스기야마의 정치적 성향은 해외에도 낱낱이 드러나고 말았다.

#2

하지만 스기야마의 '대선배' 로 이 사람을 빠뜨리면 안된다. 마유즈미 도시로(黛敏郎, 1929-1997)라는 인물인데, 2차대전 후 일본 음악계에서 '전위파' 의 한 사람으로 두드러지게 주목받았던 작곡가였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자음악과 구체음악(뮈지크 콩크레트)을 일본에서 처음 시도했으며, 해외에서도 음악성을 인정받아 페터스 등의 유명 음악 출판사에서 교향곡 '열반' 등의 작품을 출판하기도 했다.

마유즈미는 나이를 먹어 가면서 음향에 대한 갖가지 탐구 보다는, 친구였던 극우 문인 미시마 유키오의 강한 영향으로 민족주의로 돌아서기 시작했고 결국 극우파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가 일본의 우익 단체인 '일본을 지키는 국민 회의(현 일본 회의)' 의 의장을 역임하면서 역사 교과서의 '자학 사관' 비판과 헌법 개정 주장을 펼친 것은 국내에도 조금이나마 알려져 있다.

마유즈미는 스기야마와 달리 음악에 있어서도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나타냈는데, 특히 1981년에 작곡한 행진곡 '조국' 과 교성곡(칸타타) '헌법은 왜 개정되지 않으면 안되는가' 에서 두드러진다.

#3

일본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예술인들의 '비군국화' 과정이 상당히 허술했는데, 가령 '일본 국민음악 정신대' 회장을 맡았던 야마다 고사쿠(山田耕筰, 1886-1965)는 군복 차림으로 점령지와 식민지를 돌며 정력적으로 '나팔수' 역할을 했지만 전후 점령군 당국의 제재가 거의 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러한 전시 활동에 대해 야마네 긴지라는 음악 비평가가 강한 비판을 제기해 논쟁이 오고 가기는 했지만)

그나마 자신의 전시 행동에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난 인물은 하시모토 구니히코(橋本國彦, 1904-1949) 정도였다. 마유즈미의 스승이기도 했던 하시모토는 1940년대에 '학도진군가' 같은 군국가요와 일본 건국 2600주년 기념 음악인 교향곡 제 1번 등의 작품을 작곡했던 경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우익 성향이 뚜렷했던 음악인들 외에도, 자유와 민주를 추구한 '리버럴' 계통의 음악인들도 현실 인식이 자국 중심적이고 협소했던 것이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가령 일본에서 '좌파' 로 분류되고 있는 작곡가인 오키 마사오(大木正夫, 1901-1971)는 전쟁 중에도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를 추구했을 정도로 사회 운동에 적극적이었지만, 정작 점령지 혹은 식민지의 민중들에 대해서는 '미국과 유럽의 식민주의에 억압받았기에 동정심이 든다' 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자국의 식민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제보 부탁)

이외에도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국가 시책에 따른 활동을 펼친 음악인들은 대단히 많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그 음악인들의 전시 활동에 대한 연구와 재평가 작업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으며, 심지어 '순수 음악적인' 이유를 내걸고 리바이벌되고 있기도 하다.

가령 위에 언급한 하시모토의 교향곡 제 1번과 오자와 히사토(大澤壽人, 1907-1953)의 교향곡 제 3번 '일본 창건 교향곡(하시모토와 같은 목적으로 작곡됨)' 은 낙소스의 '일본 작곡가 선집' 계획에 포함되어 CD로 출반되어 있고, 한국에도 정식 수입되어 있다.

일본인들의 '제국' 시절에 대한 인식은 주로 '우리도 원자폭탄 투하 등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 라는 주장이 대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예전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의를 품고 칼을 휘두른 조폭이 상대방의 저항 때문에 덩달아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나도 피해를 입었는데 억울하다' 라고 해야 하냐는 것이다. 전쟁으로 독일과 일본 등 추축국들도 모두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그들은 그들 대로 자신들이 적으로 삼았던 민족이나 국가에서 전투원도 아닌 수십 수백만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착취했기 때문에 지금도 규탄받고 있는 것이다."
('레어 애청곡선-64.R.슈트라우스' 에서 인용함)

그러한 '피해자' 인식에 왜곡과 은폐라는 두건을 덧씌우려는 것이 현재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의 현실이다. 그 현실에 '예술가' 라는 부류의 인물들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 가에 대한 성찰도 아울러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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