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나 '오해' 같은 키워드는 음악 쪽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작곡자의 자필보나 서명이 없어서 정체성에 혼란이 오거나 의심을 받은, 그리고 받고 있는 작품이 아직도 수두룩한데, 특히 고전 후기 (혹은 낭만 초기) 까지 쏟아져 나온 수많은 교향곡이나 협주곡들에서 그런 촌극이 벌어지곤 한다.
지금은 하이든의 작품으로 인정되어 있는 첼로 협주곡 2번도 안톤 크라프트의 작품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기도 했고, 반대로 하이든 곡이라고 했던 '장난감 교향곡' 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카사치온 G장조에서 발췌해 만든 곡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자장가' 가 플리스라는 영국 작곡가의 작품이라고 수정된 내용은 중학교 음악 시간에 배우기도 했고, 최근에는 덴마크의 오덴세라는 도시에서 모차르트의 교향곡이라고 추정되는 작품이 나와 '오덴세 교향곡' 이라는 명칭이 붙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고전과 낭만의 과도기에 활동했던 베토벤도 이러한 해프닝에서 예외가 아니었는데, 특히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벌어진 교향곡에 관한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1909년에 프리츠 슈타인이라는 음악학자가 독일 동부 예나의 음악 협회 자료실에서 오래된 악보들을 발견했는데, 그 중에 '루이 반 베토벤(Louis van Beethoven)' 이라고 적혀 있는 교향곡이 있었다. 루이는 당시 독일에서 '루드비히' 를 프랑스어로 표기한 것으로, 실제로 베토벤 작품들의 초판 악보나 자필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표기다.
슈타인은 악보에 베토벤의 이름이 기입되어 있고, 초기 베토벤의 작품과 그 창작 형태가 많이 비슷하다고 해서 베토벤의 초기 교향곡으로 단정지었다. 1911년에는 악보가 '예나 교향곡(Jenaer-Symphonie)' 이라는 제목으로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에서 출판되기도 했는데, 물론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슈타인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대에 베토벤 지휘의 전문가로 유명했던 바인가르트너나 푸르트벵글러는 저 곡을 소위 '듣보잡' 으로 여겼는지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며, 베토벤과 별 연관성이 없는 도시인 예나에서 악보가 발견된 것이 이상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어쨌든 '예나 교향곡' 의 신화는 50년이 가까울 동안 계속 유지되었다.
예나 교향곡의 정체성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발견한 사람은 하이든 작품 연구로 유명한 영국 음악학자인 H.C.로빈스 랜던이었는데, 1957년에 괴트바이크에서 슈타인이 발견한 것과 똑같은 곡을 담은 악보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 악보에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 이건 '루이 반 베토벤' 이건 베토벤과 관련된 기록은 일체 없었고, 오히려 작곡자로 프리드리히 비트(Friedrich Witt, 1770-1836)라는 사람의 이름이 기입되어 있었다.
랜던의 발견으로 인해 예나 교향곡이 베토벤의 작품이 아니라 비트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음악학자들이 소위 '스타일의 유사성' 따위를 거론하며 함부로 의심작에 대해 특정 작곡가와 연관성이 있다고 들이대는(??) 연구의 위험성을 입증하는 사례로도 남게 되었다.
비트는 지금도 그다지 알려져 있는 정보가 많지 않은 인물인데, 뷔르템베르크 출신으로 주로 독일 남부에서 작곡가 겸 첼리스트로 활동했다고 한다. 오페라, 협주곡, 실내악, 종교음악, 교향곡, 합창곡 등을 작곡했다고 하는데, 베토벤 같은 혁신가 기질은 없었고 고전 시대의 어법을 고수했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예나 교향곡도 예외는 아니어서, 심지어 랄프 리비스 같은 음악학자는 '대부분 하이든의 추억으로부터 오려붙인 표절작' 이라고까지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정격연주 단체나 실내 관현악단 등을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는 18세기 관현악 작품에 대한 리바이벌 움직임을 보면, 그렇게까지 '깐다고' 해도 언젠가는 재평가가 이루어질 지도 모르겠다.
비록 많은 대가들이 무시했다고는 해도, 예나 교향곡 낚시질에 낚인 지휘자들도 분명히 있었다. 특히 프란츠 콘비츠니(Franz Konwitschny)가 아주 제대로 떡밥을 물었는데, 1956년에 자신이 지휘자로 있던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Staatskapelle Dresden)을 지휘해 도이체 그라모폰(DG)에 녹음을 했다.
물론 DG의 LP에는 베토벤 작곡의 작품으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작품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 거의 50년 가까이 재발매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정도였다. 아마 DG 측으로도 '쪽팔림' 을 충분히 느꼈으리라 생각되는 대목인데, 2006년에 'Musik...Sprache der Welt' 라는 시리즈로 최초 CD화가 되면서 비로소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 2005 Deutsche Grammophon GmbH
하지만 CD 커버에는 메인으로 수록되어 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정 교향곡' 만 언급되어 있는데, 신촌 M2U에서 호기심에 집어들었다가 뒷면을 보고 비트의 교향곡도 같이 수록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DG 홈페이지를 통해 그 시리즈 음반들의 정보와 샘플 파일을 들어보고 '한 번 살 가치는 있어 보인다' 고 판단돼서 질러 버렸다.
'Musik...' 시리즈는 1950년대의 DG 녹음들 중 지금까지 CD화가 되지 않았거나, 오래 전에 절판되어 버린 것들을 중심으로 내놓고 있는 것 같다. 콘비츠니의 녹음도 최초 CD화고, 이외에도 오이겐 요훔이 지휘한 시벨리우스 교향시나 칼 횔러의 변주곡 작품, 프리츠 레만이 지휘한 파야의 발레 '사랑은 마술사' 같은 진귀한 물건들도 보인다.
다만 그 진귀함에도 불구하고 녹음 자체는 대부분 모노인 만큼 소리가 답답한 편이다. 콘비츠니의 CD에 메인으로 수록된 가정 교향곡의 경우에는 곡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실망할 소지가 많은 밍밍한 사운드로 일관하고 있으며, 비트의 교향곡에서도 배경에 깔리는 히스 노이즈와 함께 상당히 고색창연한 인상이다. (뱀다리로 푸르트벵글러의 EMI 녹음 중 월터 레그+로버트 베케트 콤비와 만든 1951년 녹음들과 소리가 비슷하다.)
일단 음질은 차치하고 '알면서 낚여준' 예에 속하겠는데, 음악사의 해프닝을 생각하고 살짝 비웃음을 지어주며 들으면 나름대로 듣는 재미가 쏠쏠한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비틀린 냉소주의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야 '알고 안낚이는' 성실함 때문에 이 곡을 간단히 무시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