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번 코믹월드는 개인 의사를 따지기 전에, 갈 수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통에 개최되었다. 해가 바뀐 이래로 알바 건수가 0건에 통장 잔고도 극심한 위협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고, 그나마 '손을 벌리더라도 일이 들어오면 돈을 빌려야 겠다' 라는 생각에 몇 주를 목매던 터였다.
다행히도 월말과 월초에 모처에서 국정홍보물 관련 알바 제의가 들어왔고, 그 덕택에 푼돈을 받아 토요일에 다녀올 수 있었다. 가면서도 내내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지만, 어쨌든 긴 줄을 기다리면서 '이왕 온 김에 즐겨야지 어쩌겠나' 는 인위적인 세뇌를 계속 했다.
늘어선 줄 가운데 우뚝 서있던 '무료 전화 부스'. 시내전화부터 국제전화까지 3분 가량 통화할 수 있다는데, 해보지는 못했다. (솔직히 전화할 데도 없다.)
주최 측에서 '동인지전' 을 모토로 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부스에서 동인지나 그에 준하는 형태의 책자를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부스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다는 지인들의 말도 있었거니와 몇몇 부스가 임대 혹은 맞바꾸기 형식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어서 가이드북도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꾼 돈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그나마 오선지 등의 구입에 필요한 비용을 불려서 받아낸 것임-상당히 조심스럽게 지름에 임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회지 중심의 구입은 극심한 재정난을 불러 일으켰다. 지름 리스트는;
→ 입대 전에 갔던 코믹때 이 작가(마카브레)의 회지 두 권을 구입했었다. 반전(anti-war) 드라마와 연예인지옥 패러디 등이 들어 있던 것이었는데, 전자의 경우 꽤 진지한 내용이라 인상에 남는 것이었다. 이번이 거의 3년 만의 해후였는데, 한국인 청년의 일본 노처녀 작업걸기라는 특이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었다.
→작년 11/12월 코믹 때 이글루스 존을 형성했던 '양철공방' 의 이웃 부스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지름 리스트에는 항상 빠져 있었던 부스였다. 하지만 아르 누보풍 표지에 낚이고, 츤데레 로리 공주님 캐릭터에 '뿅가죽는' 효과로 단숨에 구입.
3. Orange espresso: 패러디 회지 '일단은 마법소녀인거야?' (2000\)
→이글루스걸 화보집에도 참가한 바 있는 루셀 화백과 스프 화백의 기동포격소녀 래디컬(radical) 나노하 패러디북. 루셀 화백 관련 동인지는 2004년 때의 OS걸 패러디북인 'Trouble Windows' 이래 거의 3년 만이다. 부스 앞에 걸어놓았던 압도적인(!) 디스플레이 만큼이나 위험한 해석도 종종 보이는 유쾌한 물건. (변신시 노X티 의혹이라던가 하는 것)
→이 부스도 예전 코믹 때부터 눈팅만 해오다가, 나오와 서큐버스의 블루머 모에와 발상의 기발함 때문에 회지를 구입하게 된 케이스. 키홀과 모리안이 운동회로 맞짱을 뜬다는 설정에, 마비노기 특유의 분위기가 잘 살아있는 물건이었다. (책 말미의 특별 코너에서 속이 좀 안좋아지기는 했지만.)
5. Black Velvet(가이드북에는 없었음): 2007년 일러스트 달력+러프 스케치북 (6000\)
→지난 코믹 때 살까 말까 했다가 관둔 물건들 중 하나. 칭송받는 자(우타와레루모노)를 보고 불타오르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패스했을 물건이었다. rita, kaho, zinno 세 화백의 합동작.
→아마 코믹을 전전하면서 지금까지 구입한 물건들 중 수위가 가장 높은 물건이 아닌가 싶다. (러프북 말이다.) 모 게임의 공략 불가 캐릭터의 오나라(가칭???)와 에루루+아루루 자매덮밥(??!!!) 등의 망상이 구현된 그림들은 특히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꼭꼭 숨겨라 빠바박씬 보일라)
→이번에도 상경한 로리꾼 화백. 회지를 비롯한 상품들은 지난 코믹 때와 대동소이했지만, 뱀파이어 세이버와 코믹파티 팬시는 신판이 나와 있었다. 전자는 공짜로 받고, 후자는 구입. 회지 이외의 구매 품목은 이것 뿐이다.
부스에 난입해 찍은 모습. 오른쪽 아래가 코믹 파티 팬시들이다.
지출 총계: 25000\
돈이 원체 적었기 때문에 구입 여부에 냉정해졌던 탓도 있고, 이번 행사가 aT센터의 1층 만을 사용한 탓도 있어서 그랬는지 간신히 지출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코믹월드와 대한음악사, 그리고 동사무소 헬스장을 거쳐 피곤하고 배고픈 몸으로 돌아온 뒤 지갑을 확인하니, 천원짜리 신권 한 장만이 남아 있었다.
판매 행사 외의 것을 돌아보면 곳곳에 출몰하던 소위 '프리허그' 코스족들이 기억에 남는데, 다만 그 '프리허그' 라는 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재미삼아' 혹은 '유행 따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첨언해둘 것이 (이미 다른 블로그에서도 다루어 졌지만) 위조지폐 사건. 그래, 딱 잘라서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말도 안되는 쪽에 DIY 정신을 발휘한 것은 아무리 애교로 봐주려고 해도 봐줄 수 없다. 코믹월드 측의 인지도에 흠집이 크게 잡힐 수도 있겠지만, 관계 당국에 엄정한 수사를 의뢰해 범인을 꼭 잡아야 한다.
그 외에도 행사장 밖에 있던 노점상들 가운데에는 18금 단행본 등을 버젓이 늘어놓고 아무한테나 팔아제끼는 몇몇 몰지각한 부류의 상인들도 있었는데, 거기에 넘어가면 넘어갈 수록 결국 망가지는 것은 자신들의 이미지요, 코믹월드라는 행사의 이미지일 것이다. 입대 전보다는 그래도 불만 사항은 현저히 적어졌지만, 질서 의식과 배려 의식의 부재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