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주곡(Concerto)' 이라는 장르는 전통적으로 기악용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그 수가 너무 많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며, 콘트라베이스나 콘트라바순, 튜바, 팀파니같이 독주용으로 부적합하다며 홀대받는 악기라도 적어도 한두 곡의 협주곡은 만들어져 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들어 '변종' 이라고 할 만한 몇 곡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협주곡의 독주 파트에 기악이 아닌, 성악이 사용된 곡들이 아주 드물지만 조금씩 나왔던 것이다. 그 중 유일하게 들어본 곡이 라인홀트 글리에르(Reinhold Glière, 1875-1956)의 것이었다.
글리에르는 20세기 중반까지 소련 음악계에서 소위 '주류' 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작곡가였다. 그는 소위 '소련 3인조' 라고 불리던 프로코피에프나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과는 달리 모더니즘 등의 신조류를 수용하지 않았고,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보수적인 음악 어법을 평생 견지하던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스탈린이 등장했을 때도 그는 거의 상처받지 않은 채 음악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흐렌니코프나 아포스톨로프 같은 이들처럼 정권에 영합해 살아가던 적같은 보신술을 추구한 것 같지도 않다. '뒷담화' 로 유명했던 쇼스타코비치도 글리에르를 평하기를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작곡에 그다지 재능은 없었다' 라고 완곡한(???) 표현을 썼을 정도였다.
글리에르의 작품으로는 세 곡의 교향곡을 비롯해 호른 협주곡과 하프 협주곡 등 기악 계통의 것들이 지금까지 종종 연주되고 있지만, 소련 시절 그의 명성은 주로 오페라나 발레 등 무대 작품에서 얻어졌다. 사회주의 사실주의 관점으로 창작된 발레 '붉은 양귀비' 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이고, 그 외에도 각각 아제르바이잔과 우즈베키스탄의 민속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오페라 '샤흐-세넴' 과 음악극 '굴 사라(탈리브 사디코프와 공동 창작)' 같은 이국색이 짙은 작품들도 남겼다.
문제의 작품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Concerto for coloratura soprano and orchestra op.82)' 이라는 제목의 1943년도 곡인데, 성악과 관현악의 매칭이 대개 아리아(Aria)라는 장르를 예상케 함에도 그것을 과감히 '협주곡' 으로 했다는 것이 상당히 당돌한 구상처럼 보였다. 물론 아리아는 대개 내용이 어떻든 간에 가사가 있고, 그 가사를 음악에 어떻게 대입시키느냐에 따라 해석의 묘미가 발휘되는 장르다.
하지만 이 곡 이전에 이미 많이 알려진 작품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보칼리제' 가 그것인데, 원래 보칼리제는 성악가들이 목을 풀기 위해 부르던 연습곡이었다. 대개 아무 가사 없이 아에이오우 같은 모음으로만 되어 있는데, 라흐마니노프는 그것을 예술적인 경지로 승화시켜 만든 것이다.
글리에르도 아마 라흐마니노프의 사례를 본따 이 곡을 만든 것 같은데, 이 곡의 소프라노 파트도 그냥 '아' 발음으로만 되어 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와 달리 이 곡의 독주 파트는 아주 어렵게 작곡되어 있는데, 콜로라투라라는 분류 자체가 고음역에서 복잡한 음형의 도약이나 정교한 세공을 주특기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곡은 약 13분 가량의 2악장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서정적인 F단조의 안단테와 장식적인 3박자 계통의 F장조 알레그로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은 느린 템포에 음의 움직임이나 도약 폭도 그리 크지 않지만, 음역대가 전반적으로 높이 잡혀져 있어서 '삑싸리' 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어지는 2악장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에 나오는 밤의 여왕 아리아와 맞먹는 수준의 고난도 기교를 요구하는데, 자잘한 8분음표 도약 악구 위주로 계속되는 중간부(2:55~3:36)는 노련한 가수들도 무척 버거워하는 대목이라고 한다. 게다가 곡의 맨 마지막에 소프라노에게 요구되는 음은 그 음역의 최고음이나 마찬가지인 하이 F다. 곡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곡의 음반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글리에르라는 작곡가가 서방에서 '어용' 으로 낙인찍혀 있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곡의 난이도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녹음이나 연주 빈도가 낮은 것 같은데, 몇몇 비평가들은 이 곡을 설명할 때 'harmful' 같은 단어까지 쓸 정도다. (비슷한 이유로 그의 호른 협주곡도 음반이 꽤 드문 편이다.)
오래된 녹음은 러시아 소프라노 예프게냐 미로슈니첸코가 마르크 에름레르 지휘의 볼쇼이 극장 관현악단과 협연한 컨소넌스(Consonance)반이 있고, 비교적 최신 녹음은 아이린 휴즈가 리처드 히콕스 지휘의 런던 신포니아와 협연한 샨도스(Chandos)반이 있다. 하지만 컨소넌스반은 국내에 아예 수입이 되지 않았고, 샨도스반도 아주 가끔 눈에 띌 뿐이다.
내가 접한 것은 1998년에 그라모포노 해적반으로 나온 것인데, 푸르트벵글러가 생전에 가장 선호했던 소프라노 가수인 에르나 베르거(Erna Berger)가 세르주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지휘의 베를린 필과 협연한 1946년 7월 7일 실황이다. 당시 베를린은 비록 연합군 공동 통치 하의 상태였지만, 베를린을 가장 먼저 점령한 것이 소련군이었기 때문에 베를린 필의 종전 직후 공연 프로그램에 러시아/소비에트 음악이 많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베르거는 녹음 당시 마흔여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기교나 음색의 쇠퇴를 찾아볼 수 없는 굉장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첼리비다케도 초창기의 몇 번을 제외하고는 평생 동안 오페라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성악 반주 녹음이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녹음은 굉장한 레어 아이템인 셈이다.
다만 원본 테이프의 피치가 꽤 엉망인 데다가 그라모포노가 그걸 그대로 옮겨 만든 탓에, 불가피하게 네로 웨이브 에디터로 수정(transpose)을 해서 듣고 있다(하여튼 그라모포노와 알레산드로 나바는 욕을 처먹어도 싸다). 물론 내가 전문 녹음 기사가 아닌 터라 가끔 쇳소리도 나고 음의 흔들림이 지나친 대목도 있어서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은데, 미국의 뮤직 앤 아츠(Music & Arts)에서 나온 네 장짜리 세트(아래 짤방 참조)를 구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이 한 곡 때문에 세트를 사자니...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