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지휘자' 의 시대를 처음으로 열었던 한스 폰 뷜로가 '바흐의 평균율은 구약성서, 베토벤의 소나타는 신약성서' 라고 대놓고 찬양했을 정도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피아니스트들 뿐 아니라 피아노와 관계된 모든 음악인들에게 지나칠 수 없는 관문으로 되어 있다.
베토벤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게 혹독한 레슨을 받았던 악기도 피아노였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된 말년에도 그의 곁에는 항상 피아노가 있었다. 물론 베토벤은 그 당시의 피아노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악기와 주법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의 곡을 써서 미래를 기대한 작곡가이기도 했다.
(번호 붙은) 서른 두 곡의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연주하기가 어려운 곡으로 손꼽히는 것이 29번 '함머클라리넷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 다. 피아노의 현을 건반에 연결된 작은 펠트 해머로 두드리는 구조 때문에 독일어로 지칭된 피아노의 명사 호칭을 그대로 표제로 만들었는데-요즘에는 '함머' 를 생략하고 그냥 '클라비어' 라고 함-,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한 베토벤의 다양한 생각과 견해가 함축되어 있는 제목인 셈이다.
일단 이 소나타는 길이부터 40분을 넘고, 4악장에서는 대단히 연주하기 골치아픈 푸가가 선보여진다. 베토벤은 그 이전에도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집' 등에서 짤막한 대위구를 삽입시키기는 했지만, 10분도 넘는 대규모 푸가를 쓴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후 베토벤은 마지막 작품이 되는 현악 4중주 16번에 이르는 거의 모든 작품에 푸가 또는 푸가토, 카논 등 대위법 역량을 총동원한 악구를 수도 없이 채워넣었다.
바로크 시대 이후 '고리타분한 유물' 로 폄하되던 대위법을 새롭게 자기 식으로 소화한 일종의 베토벤식 '온고지신' 인 셈인데, 18세기의 대위법 이론을 무시하는 오프닝부터 개성적이다. 이론에 파묻힌 제자들에게 '그러면 내가 (금기를 깰 것을) 허락한다' 고 단호히 말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듯이, 말년의 자아를 끄집어 내기 위한 일종의 위력 시위였던 셈이다. 오늘날에 와서도 몇몇 음악학자들이 '베토벤이 이 곡으로 청중들에게 감동이 아닌 폭력을 행사했다' 고까지 말할 정도로 넘쳐나는 에너지와 논쟁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 곡의 커다란 스케일과 거의 관현악에 가까운 음향을 만드는 연주 기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이 죽은 지도 훨씬 지난 19세기 중엽에 와서였다. 특히 예술에 관한 저작도 많이 남긴 니체가 우선 이 곡을 주목했고, 니체가 지적한 곡의 교향적인 구성을 실제로 관현악용 편곡이라는 형태로 바꿔버린 사람도 있었다.
평생을 베토벤 음악에 헌신했던 지휘자 펠릭스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가 이 곡을 1925년에 '관현악용 소나타' 로 편곡한 것인데, 이듬 해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출판사에서 악보가 출판되었다. 이 편곡은 바인가르트너의 다른 베토벤 편곡인 '대 푸가(원곡은 현악 4중주)' 와 함께 일종의 '문제작' 이 되어 있다.
음악학자 파울 베커와 찰스 로젠 같은 사람들은 이 편곡이 '원작 훼손' 이라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현악 4중주의 합주용 편곡과 달리 피아노의 관현악화는 아무래도 작위적이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곡들은 대규모 현악 합주용으로 편곡 연주하는 기회가 종종 있지만, 이 곡은 내가 아는 한 단 하나의 음반만이 존재할 정도로 연주/녹음 기회가 없다.
*실제로 이 곡을 출판한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은 현재 악보를 판매하지는 않고 있고, 단지 지휘자와 관현악단에 총보와 파트보를 대여하고 있을 뿐이다. 대여용 악보로 묶인 것들이 대체로 연주가 뜸한 곡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편곡의 인기가 그다지 없음을 알 수 있다.
단 하나의 음반이란, 바로 편곡자인 바인가르트너 자신이 영국 컬럼비아에 남긴 녹음이다. 1930년 3월에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런던에서 녹음한 것인데, 최근 낙소스 히스토리컬의 바인가르트너 시리즈 중 하나로 재발매되었다. 이전에 펄(Pearl)에서도 CD로 나온 바 있었지만, 펄은 지글대는 레코드 잡음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출반하는 탓에 소수의 빈티지 애호가들에게만 인기가 있는 회사였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대단히 무책임한 복각 방식이라고 생각함)
낙소스에서는 복각 전문가인 마크 오버트-손을 기용해서 잡음을 상당 부분 없애고 불안정한 피치(음높이)를 조정하는 등의 노력 끝에 들을 만한 소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물론 바이올린의 소리가 좀 날카롭고 새된 소리고, 전체적인 음질도 건조하다는 것이 듣기에 약간 피곤하기도 하다. 오버트-손도 속지의 프로듀서 노트에서 원 소스인 SP 세트들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푸르트벵글러, 피츠너 등의 '주관주의' 에 대해 '객관주의' 의 입장을 보였던 바인가르트너였는데, 이러한 견지로 제작된 베토벤 교향곡 녹음들은 지금도 CD로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객관주의라고는 해도 당시의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는데, 특히 스트링 주자들은 요즘 관점에서는 '촌스럽고 느끼한' 비브라토와 포르타멘토를 듬뿍 쓰고 있다. 소위 '원전연주' 의 스트링이 저 연주법들을 아예, 혹은 거의 쓰지 않고 연주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위치에 있는 셈이다.
이러한 구시대의 습관과, 오래되고 종종 포르테 악구의 디스토션이 걸리는 등의 음질 속에서도 편곡자 겸 지휘자의 의도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템포의 집행은 비교적 엄격하고, 과도하게 다이내믹을 휘젓는 법도 없다. 처연함이 묻어나는 가장 긴 3악장도 지나치게 장황하거나 감상적인 연주는 피하려고 노력한 듯 하다. 바인가르트너가 차라리 좀 더 기다렸다가 1934년 이후-녹음 가능 주파수 대역이 확장되면서 '하이-파이' 라는 용어가 처음 나온 시기-에 빈 필 같은 독일/오스트리아계 악단을 지휘해 녹음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바흐 오르간곡 편곡이 이제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시점에서, 이 편곡의 가치도 재고해볼 때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 음반의 재발매는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다. 시대와 관점의 한계가 있기는 해도, 어디까지나 원곡 존중이라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편곡인 만큼 리바이벌의 여지도 크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