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에 등단한 이래, 지금까지 일본 순정만화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가 바로 야마자키 다카코다. 30권도 넘는 그녀의 단행본들은 한국에서도 단 두 편의 단편집만 빼고는 모두 정식 한국어판이 서울문화사의 '윙크 컬렉션' 에서 출판되었으며, 특히 그녀가 1991년 이래 10년도 넘게 연재 중인 '보이!' 는 23권-2004년 8월 기준-모두가 서점에서 살아 남아 있다.
'보이!' 는 누군가가 말했듯이, '철저히 캐릭터성에 기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어엿한 중 3 남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또래의 여자 아이들보다도 훨씬 귀여운 아마노 타이라를 필두로, 타이라의 옆집 친구이자 카운셀러, 과외 선생(?)인 쿠사카 반리-국내판은 '만리'-, 그리고 타이라에게 짝사랑의 감정을 불태우는 두 여주인공인 이치노세 히나키와 사가미 마코토 네 명이 레귤러 멤버다.
여기에 타이라를 여자로 착각하고 '호모의 위기' 속에 표류 중인 농구 천재 다카오카 토라오, 마코토를 향해 (소득도 없는) 대쉬를 하는 하나시마다 에이타츠 등이 더해진 학원
이들에게는 현실 문제-고교 입시-도 있고, 타이라-히나키-마코토에게는 '사랑' 이라는 (그 시기에는 방해가 될 수도 있는) 대명제도 버티고 있다. 그래서 몇몇 독자들은 '타이라가 과연 누구와 맺어질 것인가' 를 기대하며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영원한 평행선으로 끝맺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라디오 드라마의 경우에는 호리에 유이(히나키), 사이가 미츠키(마코토), 치바 스스무(하나시마다), 이와타 미츠오(다카오카) 등 유명 성우가 대거 기용되어 제작될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의 '보이!' 는 점점 그 캐릭터성에 의존하다 못해 매 권마다 새로운 캐릭터들을 억지로 집어 넣어 주된 스토리를 이끌려고 하는 임시 변통 처방에 너무 기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그 '비극' 의 씨앗은, 단행본 4권부터 권말에 추가된 '나도 주인공!?' 에서부터 이미 싹트고 있었다. 타이라 이외의 캐릭터들을 고전 동화나 소설 등에 등장시키는 일종의 '팬 서비스' 인 셈인데, 첫 회로 '반리의 겐지모노가타리' 가 게재된 이래 '본편보다도 더 재미있는 패러디' 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5권부터 새로 등장한 고지마 미치아키를 필두로, 거의 매 권마다 새로운 캐릭터들이 '난입' 하기 시작했다. 겐조 마사키, 젠자이 아츠히로, 토마 소라, 카나메 호리타, 쿠가조 요시키, 앤드류, 무로 사쿠, 오카제 치나츠...심지어 타이라-반리-히나키-마코토 반의 급우인 마에야마 쇼지와 츠츠이 메구미까지 '신 캐릭터' 로 출연하는 장면에서는 납득의 수준마저 뛰어넘어 버렸다.
급우임에도 그 전까지 쇼지는 운동회 때 '남학생들' 의 일원으로 얼굴을 비춘 것이 단 한 번, 메구미는 그마저도 없었다. 게다가 이들은 에피소드가 끝난 뒤, 역시 같은 반 급우들인 사쿠라이 코코-니타케 미도리-키무라 히사시-사사키 후미아키에 밀렸는지 어쨌는지 거의 나오지도 않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은 대다수가 그 에피소드가 끝나고 자취를 감춘다. 예외로 무로 사쿠와 오카제 치나츠가 있지만, 나머지 캐릭터들은 메인이 아닌 '나도 주인공!?' 에 등장할 뿐이다. 물론 타이라가 인연을 만드는 방식이 항상 즉각적이거나 돌발적인 개연성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애써 설정한 캐릭터들이 너무 쉽게 '1회용' 으로 버려진다는 비판에는 나도 수긍한다.
게다가 '나도 주인공!?' 에 쓸 주인공이 없어지자 타이라를 '대타 기용' 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를 그리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되레 주객전도가 된 느낌이다. '나도 주인공!?' 을 위해 새 캐릭터를 억지로 집어 넣는다는 생각까지 들어 버리는 것이다.
팬들의 주된 관심사인 '타이라가 누구와 맺어질 것인가' 도 계속 질질 끄는 상황인데다가, 너무 자주 추가되는 게스트들, 그리고 그로 인해 계속 느려지는 진행은 마침내 '코믹스톰' 의 독자 리뷰에서도 불만의 표출 대상이 되고 있다. 웬만해서는 불만 사항이 올라오지 않는 곳임에도 이미 두 건의 비판글이 올라온 것은 예외적인 일은 아닌 것이다. 인기 작가의 가장 무서운 적인 '매너리즘' 의 제물이 되어 가는 것인지.
가지가 없는 나무는 존재할 수 없지만, 너무 가지가 많은 나무도 떨기나무로 일생을 끝낼 수밖에 없다. '보이!' 의 경우에도 그 지나친 가지 만들기 때문에 '스토리' 라는 성장 라인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보이!' 와 극점에 있는 'ZERO' 의 연재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작가가 본 궤도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