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예전에 유재하의 곡이 하나 나오기는 했지만, 이 시리즈가 지나칠 정도로 클래식 편중인 것도 사실이었다. 내 음악 취향이 어떤 지는 이 시리즈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추억을 되살려 보면, 클래식 말고도 내가 얼마나 많은 음악을 들어 왔는지를 잊어먹을 새가 없어진다. 암울했던 재수생 시절 나의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홍대 앞의 수많은 밴드들은 이제 와서라도 재조명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
'인디' 라는 레이블이 나오고, 대중 매체들이 인디밴드가 어쩌고 인디씬이 어쩌고를 떠들던 때가 90년대 말엽이었다. 불행히도 나는 그 시기를 약간 늦게 타서, 드럭에서 아직 노 브레인과 위퍼가 활동하던 때를 같이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크라잉 넛, 레이지본, 18크럭, 자니 로얄 등의 펑크 밴드 라이브는 엄청나게 들었고 옷과 신발도 슬램하고 해서 그 때 꽤나 많이 버렸다.
그렇게 거대했던 인디 담론의 실상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고-그렇게 영웅시 되는 크라잉 넛도 클럽에서 보면 영락 없는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 는 듯이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드럭을 비롯해 스팽글, 피드백, 하드코어 등 9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클럽은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때를 맞추어 부각되었던 팬진공/팬덤공도 마찬가지였다.
팬진공은 당시 인디씬과 밴드를 다룬 잡지들 중에서는 가장 '참여적인' 성향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들은 서울 뿐 아니라 지방에서 수없이 나타나고 사라졌던 밴드와 뮤지션들의 동향과 프로필, 데모 앨범 소식, 공연 소식을 제공했고, 팬덤과 합본해 '팬덤공' 이 된 뒤에는 대형 음반점에서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
'팬덤공' 은 CD 크기의 약간 두꺼운 '잡지' 와 거기에 딸린 CD 한 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불과 두 번 나온 뒤 폐간되어 매우 아쉬움을 남긴 바 있었다. 사실상 그 잡지의 폐간은 인디씬의 냉각과 맥을 같이 했다고 본다. 인디씬과 인디밴드라는 용어가 메이저 업계와 대중 매체에 농락당하던 것도 그 때까지가 피크였고, 지금은 '언제 그랬냐' 는 듯 쌩까고들 계시는 중이다.
물론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간다' 고 누군가가 일갈했듯, 인디라는 존재는 아직도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중요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음악 보다는 인기에 끌려 찾아온 '반짝 팬' 들이 썰물처럼 떠나간 뒤의 차가운 현실은 시련 보다는 깨달음의 순간일 지도 모르고, 진정한 팬들이라면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누가 떠들건 말건 지금도 클럽을 찾고 있을 테니 말이다.
팬덤공 두 권을 때맞춰 구입했던 나는 지금도 CD 진열장에 그것들을 보관 중이다. 그리고 거기에 첨부된 CD도 종종 듣고 있는데, 역시 리메이크 두 곡이 재미있다. 인디파워 같은 컴필레이션이 나오기도 전에 시도된 것이고, 해당 밴드들의 정규 앨범에도 들어 있지 않은 만큼 그 가치는 충분하다.
또 '인디' 레이블 최후의 발악(???) 중 하나였던 싱글 앨범을 통해 알려졌던 모던락 밴드 에브리 싱글 데이의 'KISS' 도 부록 CD를 통해 처음 들었던 것이고, 모던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즐겨 듣는 곡이 되었다.
근 5년 가까이 지나간 지금, 저 두 부록 CD에서 모습을 보였던 사람들의 상당 수가 인디씬에서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지간히 혁명적인 업적을 남기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저 바닥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업적의 여부을 떠나, 그 시절의 한 조각이라도 듣고 싶어지는 것은 내가 조금 나이를 먹고 회상할 과거가 있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절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