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교향악 축제에서는 하나의 '사건'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바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의 대작 오라토리오 '구레의 노래(Gurrelieder)' 가 창원시향에 의해 한국 초연을 보았던 것이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그 무대가 한국 초연은 아니었고, 그 전에 통영국제음악제의 폐막 연주회로 충무체육관에서 연주된 것이 첫 무대였다.
물론 이 연주회는 '굳이 통영 프로그램을 재탕할 필요가 있었느냐', '프로그램이 너무 길어서 부담스러웠다(이는 지난 교향악 축제 때도 지적되었는데, 지휘자 장윤성씨의 욕심인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서울 심포니와의 합동 연주였기 때문에 의미가 퇴색되었다' 고 종종 비판이 나오곤 했다. (나는 이들 비판이 지난 번 '음악과 정치' 란에서 후반에 씹은 모 음악잡지에서 나왔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솔직히 까보자. 통영과 서울은 버스로 네 시간도 넘는 거리다. 거리와 시간 문제로 거기서 듣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단순히 생각할 겨를은 없었을까? 그리고 변칙 5관편성의 거대한 관현악을 창원시향 혼자서 감당하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길이에 관해서는 그 잡지의 의견이 맞다고 본다. 구레의 노래 한 곡만으로도 약 90분이 소요되었으니 말이다.
쇤베르크는 음악 전공자들에게 '무조', '12음 기법' 등으로 인해 거의 '공포의 대상' 이 되고 있는 작곡가다. 게다가 그의 음악 세계는 너무나도 독창적이고 난해했기 때문에, 2차대전 후에 그의 제자였던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과 함께 일시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에게서 전면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제자 둘 중 베르크는 (쇤베르크가 타파하고자 한) 조성 개념의 음악에 대한 선호도를 평생 유지했고, 베베른은 쇤베르크의 개념을 더욱 끝까지 밀고 나가 극도로 단순하고 정제된 형태로 개량했다. (이 점 때문에 세 사람 중 베베른의 인기가 가장 높았다.) 그렇지만 이 세 사람, 즉 '신 빈 악파(Neue Wiener Schule)' 의 음악은 대중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전공자나 음악인 외에 이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고, 지금도 (물론 청중들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해도) 그러하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초기에는 조성에 기반한 후기 낭만주의 스타일로 곡을 썼고, 이들 작품은 난해한 중/후기 음악의 세계에 입문하기 전의 애피타이저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쇤베르크의 경우에는 현악 6중주 '정화된 밤', 교향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그리고 이 곡이 대표적인 초기 작품에 속한다. 덴마크 작가인 옌스 페터 야콥센의 방대한 텍스트를 로베르트 프란츠 아르놀트가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 생략도 거의 없이 통째로 가사에 쓰였다. 왕 발데마르와 토베의 신분차로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시작한 곡이 끝에 가서는 자연에 대한 찬미라는 주제로 바뀌어 간다.
쇤베르크는 이 곡에서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거대증' 을 끝장보려고 한 모양이었다. '구레의 노래' 에 요구되는 관현악은 그의 선배였던 말러보다도 더 커다란 것이었다. 플루트 8, 클라리넷 7, 호른 10, 트럼펫 7, 트롬본 7, 하프 4 같은 일부분의 편성만을 보더라도 이 곡은 도저히 정규 관현악단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 악기를 위한 엑스트라만 적어도 17~18명이 필요하고, 관악기 수가 이상할 정도로 많아지는 만큼 스트링 주자들의 숫자도 마찬가지로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합창부는 네 파트로 나뉘어지는 남성 합창과 여덟 파트의 혼성 합창-혼성 합창은 마지막 곡에서만 쓰인다-이, 독창자는 나레이터 합해서 6명이 필요하다.
게다가 독창자들 중에서 주인공 발데마르(Waldemar) 역을 맡을 테너는 매우 드문데, 적어도 바그너 오페라를 부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여주인공 토베(Tove) 역의 소프라노도 마찬가지다. 쇤베르크가 이들의 노래를 위해 작곡한 부분들 자체가 바그너의 '파르지팔' 같은 악극들과 분위기가 너무 흡사하기 때문에, 지금도 예외없이 이 두 배역의 성악가는 항상 드라마틱 계열을 기용하게 된다.
다른 독창자들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단 한 곡 뿐이지만 10분 가량이 소요되는 숲비둘기(Waldtaube) 역의 메조소프라노는 위의 배역들 다음으로 성악가 선정에 골치를 썩이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레이터도 쇤베르크가 정해놓은 박자와 대강의 음조/셈여림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연극 배우가 쓰이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성악가의 생명이 끝난 사람들이 이 역할을 맡기도 하는데, 테너 율리우스 파착과 바리톤 한스 호터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이렇게 편성이 어이없을 정도로 큰 데다가, 독창자의 선정에도 골치아픈 점이 많고 집중력과 스태미너가 지휘자를 포함한 모든 연주가들에게 요구되기 때문에 이 곡의 녹음은 그리 많지 않다. 있더라도 대부분이 실황 녹음이며, 최근의 사이먼 래틀 지휘 음반(EMI)은 그나마 독창자를 따로 스튜디오에서 녹음시켜 더빙했다고 해서 비판을 받은 바 있었다.
이 곡의 전곡 녹음은 이미 1930년대(!!!)에 나와있었는데,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 지휘의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이 주축이 되어 RCA에서 녹음한 것이었다. RCA는 이 당시 한 면당 3~4분밖에 되지 않는 레코드를 10분 이상으로 늘인 '장시간 디스크' 를 개발했다고 하면서 이 곡을 그 프로젝트에 끼워 발매했다. 하지만 디스크 자체의 음질도 좋지 않았고, 무지막지한 대곡을 녹음하기에 당시의 기술도 미약한 상태라 얼마 안가 시들시들해 졌다. (물론 지금도 구할 수는 있다.)
그 뒤로도 '구레의 노래' 녹음은, 막말로 '10년에 한 번' 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드문드문 나왔다. 그리고 회현동 지하상가의 중고 음반점에서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2차대전 후 20년 가량이 지난 1965년 3월 10일의 실황 녹음이었다. 라파엘 쿠벨릭이 지휘한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합창단이 뮌헨의 독일 박물관 회의장에서 개최한 콘서트를 도이체 그라모폰이 녹음한 것으로, 지금까지 나왔던 '구레의 노래' 음반 중 가장 독일적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은 바 있다.
ⓟ 1991 Deutsche Grammophon GmbH
독창진도 마찬가지였다. 발데마르 역의 헤르베르트 샤흐츠슈나이더는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토베 역의 잉에 보르크는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의 스페셜리스트였던 만큼 믿음직스러운 캐스팅이었다. 그리고 샤흐츠슈나이더도 약간 목소리가 금속성이기는 해도 과거의 바그너 테너들과 다름없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칼 리히터가 지휘한 바흐 성악곡부터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의 뺑덕어멈까지 넓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던 헤르타 퇴퍼가 맡은 숲비둘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많은 인원들을 인솔하는 쿠벨릭도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올드 스쿨의 마지막 세대에 속하는 지휘자가 바로 쿠벨릭이었고, 쇤베르크 후기의 숨어 있는 모습을 찾느라 낭만성이 거세된 불레즈 등에 비하면 훨씬 두껍고 굵게 소리를 뽑아냈다. 발데마르와 토베의 독창만으로 진행되는 1부는 정말 '파르지팔' 등 바그너 후기 악극의 냄새가 났고, 발데마르의 분노에 가득한 독창만으로 진행되는 짤막한 2부까지도 그 힘과 스케일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신을 저주했다는 이유로 죽은 뒤에도 유령이 되어 사냥터를 떠도는 발데마르와 그의 병사들-남성합창-이 등장하는 3부부터 약간 진행이 꼬이는 것 같았다. 남성합창은 녹음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가려서 잘 들리지 않았고 그나마 잔뜩 긴장해서 그런지 박자도 종종 틀렸다. 대규모 관현악에 눌리지 않는 발성과 더불어 익살스럽게 노래해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광대 클라우스(Klaus-Narr) 역의 테너 로렌츠 페헨베르거도 큰 소리를 내야 하는 부분에서는 갑자기 영웅적인 발성이 나오는 등 여러 모로 고충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레이터가 등장하는 '여름 바람부는 들판의 사냥' 부터는 연주도 다시 정교해지고 자신감도 회복되는 것 같았다. 나레이터로 나온 한스 헤르베르트 피들러는 위의 파착이나 호터처럼 성악가였던 인물인데, 그들 만큼의 명성은 없었지만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에크의 '콜럼버스', 베토벤의 '장엄 미사' 등에서 독창자로 나오는 그의 이름을 아직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나레이션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노래에 가깝게 진행되고, 훗날 센세이션을 일으킨 '달에 홀린 피에로' 를 예견할 수 있었다.
나레이터가 "모든 꽃들이여, 환희를 향해 깨어나라!" 라고 힘껏 외치며 링크되는 마지막 대단원에서는 그 때까지 혹사했던 합창단의 남성 파트와 관현악이 힘이 좀 딸리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휘두르는 힘은 거창한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 녹음은 다른 실황 녹음들처럼 며칠 간의 공연을 편집해서 만드는 '야메' 가 아니었기 때문에, 곳곳에서 나오는 헛점들이 오히려 '진짜' 당일치기 실황 녹음이라는 보증 수표가 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쿠벨릭이 지휘한 이 녹음은 현재 본국인 독일에서도 절판된 상황이다. 그 자리를 메꾸는 것은 오자와 세이지, 리카르도 샤이, 사이먼 래틀, 피에르 불레즈, 엘리아후 인발 등의 녹음인데,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고 한다. 도이체 그라모폰이 또 무슨 패키지를 마련해서 다른 녹음들과 끼워팔지가 궁금한데, 아마도 쿠벨릭 사후 10주년이 되는 2006년에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뿐이다.
*덧붙여, 쿠벨릭의 CD 세트(두 장)는 '구레의 노래' 외에도 여백에 전설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부른 쇤베르크/베르크/베베른의 가곡도 수록되어 있다. 각 작곡가별로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창작 스타일과 관점의 변화를 관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