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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점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가지 '코다' 를 보다가 신간서적 소개란에서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있었다. '망명 음악, 나치 음악' 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친일 음악인에 관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등의 여러 책들이 발매되어 있었지만 나치 독일 시절의 음악에 대한 책은 국내 출간된 것으로는 이것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
이경분이라는 국내 음악학자가 저술한 책인데, 개인적으로는 프레드 K. 프리베르크가 지은 '나치 국가의 음악' 이라는 책이 먼저 나왔으면 하는 기대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저 책은 나같이 깊숙히 파고들려는 사람보다는, 처음 집는 사람도 일단은 부담없이 읽도록 쉽게 쓰여져 있었다.
책에는 나치에 적극 협력한 나치 당원 혹은 열성 지지자 음악가들보다는, '순수음악' 을 지향했다며 항변한 음악가들과 반유태주의나 반공산주의 정책에 희생된 음악가들, 다른 나라로 망명한 음악가들, 그리고 베베른이나 하르트만처럼 독일에 남아 있었음에도 창작 활동을 거의 하지 않거나 눈에 띄게 하지 않은 음악가들이 주로 다루어졌다.
내가 주의깊게 본 것은 당연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다루어진 항목이었다. 작가는 푸르트벵글러가 프리델린트 바그너-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손녀로, 친나치 성향의 인물들이 대부분인 바그너 집안에서 드물게 반나치 입장을 고수했음. 나치 정권 수립 후 미국으로 망명-등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남게 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순수한 독일 정신의 유지' 라는 명분이 있었다 해도 사회적인 책임까지 벗어날 수는 없다고 쓰고 있다.
이는 내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비판적 카라얀 전기인 '음악의 황제 카라얀-그 영광의 뒤안길(로베르트 C. 바흐만)' 의 기술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한스 피츠너, 베르너 에크, 칼 오르프, 한스 크나퍼츠부슈, 칼 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등도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나치 독일에 이용당한 사실을 몰랐거나 혹은 숨기고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푸르트벵글러의 경우에는 매우 복잡해서, 유태인 음악가의 추방과 관직 박탈 등에 항의하고 공직에서 사퇴하는 등 꽤나 '개겼지만', 동시에 나치 당원 작곡가들의 작품을 공연하거나 히틀러 생일 기념 연주회를 지휘하는 등의 '국가적 행사' 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쟁 초기에는 점령지로 연주 여행을 떠나는 베를린 필을 위해 '매우 정치적인' 환송사까지 써주었다. 이러한 모순된 행동은 로널드 하우드의 '테이킹 사이즈(Taking Sides)' 라는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 자신이 푸르트벵글러의 열성팬임에도 불구하고, 바흐만이나 이경분 등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도 모순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인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인물의 단점이나 약점까지도 본받을 필요는 없다. 그래가지고서는 흔히 도마에 오르는 '빠돌이/빠순이' 밖에는 되지 않는다. 푸르트벵글러가 전후 공적/사적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더라도, 개인적인 변명이 사회적인 변명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경분은 말미에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고 쓰고 있어서, 종래의 주장처럼 '독일의 과감한 나치 잔재 극복' 이라는 논리를 뒤집고 있다. 실제로 연합군의 군정 당국들은 전후 새로 닥칠 '냉전' 을 위해 '반공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을 요직에 두어야 했고, 그들 대부분이 과거 나치 당원이었거나 협력자들이었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비록 '진짜배기 나치 어용 음악인들' 에 대한 서술이 미흡한 것이 아쉽기는 했어도, 이 책은 현재 국내에서 극히 드물게 구할 수 있는 나치 시대의 음악 서술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불어 값도 싼 편이다. 5900원이었던 것 같다.)
레코드점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가지 '코다' 를 보다가 신간서적 소개란에서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있었다. '망명 음악, 나치 음악' 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친일 음악인에 관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등의 여러 책들이 발매되어 있었지만 나치 독일 시절의 음악에 대한 책은 국내 출간된 것으로는 이것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
이경분이라는 국내 음악학자가 저술한 책인데, 개인적으로는 프레드 K. 프리베르크가 지은 '나치 국가의 음악' 이라는 책이 먼저 나왔으면 하는 기대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저 책은 나같이 깊숙히 파고들려는 사람보다는, 처음 집는 사람도 일단은 부담없이 읽도록 쉽게 쓰여져 있었다.
책에는 나치에 적극 협력한 나치 당원 혹은 열성 지지자 음악가들보다는, '순수음악' 을 지향했다며 항변한 음악가들과 반유태주의나 반공산주의 정책에 희생된 음악가들, 다른 나라로 망명한 음악가들, 그리고 베베른이나 하르트만처럼 독일에 남아 있었음에도 창작 활동을 거의 하지 않거나 눈에 띄게 하지 않은 음악가들이 주로 다루어졌다.
내가 주의깊게 본 것은 당연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다루어진 항목이었다. 작가는 푸르트벵글러가 프리델린트 바그너-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손녀로, 친나치 성향의 인물들이 대부분인 바그너 집안에서 드물게 반나치 입장을 고수했음. 나치 정권 수립 후 미국으로 망명-등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남게 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순수한 독일 정신의 유지' 라는 명분이 있었다 해도 사회적인 책임까지 벗어날 수는 없다고 쓰고 있다.
이는 내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비판적 카라얀 전기인 '음악의 황제 카라얀-그 영광의 뒤안길(로베르트 C. 바흐만)' 의 기술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한스 피츠너, 베르너 에크, 칼 오르프, 한스 크나퍼츠부슈, 칼 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등도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나치 독일에 이용당한 사실을 몰랐거나 혹은 숨기고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푸르트벵글러의 경우에는 매우 복잡해서, 유태인 음악가의 추방과 관직 박탈 등에 항의하고 공직에서 사퇴하는 등 꽤나 '개겼지만', 동시에 나치 당원 작곡가들의 작품을 공연하거나 히틀러 생일 기념 연주회를 지휘하는 등의 '국가적 행사' 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쟁 초기에는 점령지로 연주 여행을 떠나는 베를린 필을 위해 '매우 정치적인' 환송사까지 써주었다. 이러한 모순된 행동은 로널드 하우드의 '테이킹 사이즈(Taking Sides)' 라는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 자신이 푸르트벵글러의 열성팬임에도 불구하고, 바흐만이나 이경분 등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도 모순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인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인물의 단점이나 약점까지도 본받을 필요는 없다. 그래가지고서는 흔히 도마에 오르는 '빠돌이/빠순이' 밖에는 되지 않는다. 푸르트벵글러가 전후 공적/사적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더라도, 개인적인 변명이 사회적인 변명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경분은 말미에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고 쓰고 있어서, 종래의 주장처럼 '독일의 과감한 나치 잔재 극복' 이라는 논리를 뒤집고 있다. 실제로 연합군의 군정 당국들은 전후 새로 닥칠 '냉전' 을 위해 '반공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을 요직에 두어야 했고, 그들 대부분이 과거 나치 당원이었거나 협력자들이었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비록 '진짜배기 나치 어용 음악인들' 에 대한 서술이 미흡한 것이 아쉽기는 했어도, 이 책은 현재 국내에서 극히 드물게 구할 수 있는 나치 시대의 음악 서술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불어 값도 싼 편이다. 5900원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