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트벵글러를 왼쪽의 파인더에 넣고 검색하면 여기서도 꽤 여러 편의 글이 검색된다. 애청곡선 시리즈에도 한 번 나왔고, 단어만 나온 경우는 더 많다. 그만큼 나는 올드 스쿨의 음악가들 중에서 푸르트벵글러의 스타일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
그것은 비단 푸르트벵글러가 남긴 여러 녹음들 뿐 아니라, 그가 작곡한 작품의 음반 수집에도 미치고 있다. 푸르트벵글러는 당대에 작곡가로서 높은 지명도는 결코 얻지 못했지만, 교향곡 제 2번의 경우 지휘자라는 자신의 입지를 최대한 활용해 베를린 필, 빈 필, 함부르크 국립 필, 슈투트가르트 방송 교향악단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방송 교향악단을 지휘해 모두 다섯 개의 전곡 녹음을 남기고 있다.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교향 협주곡의 경우에도 에트빈 피셔의 독주와 베를린 필의 연주로 1939년의 실황이 (매우 조악한 음질이기는 하지만) 남아 있다.
하지만 이것들과 몇 편의 단편적인 리허설 녹음, 교향 협주곡의 2악장 스튜디오 녹음이 현재 구할 수 있는 푸르트벵글러 자작 자연이며 나머지 작품들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띌 때까지 또 여러 해를 기다려야 했다. 다니엘 바렌보임과 라파엘 쿠벨릭, 주빈 메타, 요제프 카일베르트, 로린 마젤, 볼프강 자발리슈 등의 지휘자들이 그의 관현악 작품들을 종종 지휘/연주했지만, 그야말로 산발적이었고 녹음 자료도 별로 남기지 못했다. 그나마 바렌보임이 시카고 교향악단을 지휘해 교향곡 2번을 발표한 것이 가장 최근의 사례다.
오히려 푸르트벵글러 작품의 본격적인 재평가는 좀 덜 알려진 아티스트들과 음반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낙소스 산하의 마르코 폴로가 특히 적극적이었고, 이들은 알프레드 발터 지휘의 벨기에 방송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기용해 교향곡 3번의 4악장 완성본을 세계 최초로 녹음했다. 1987년의 일이었고, 이 녹음은 곧 마르코 폴로의 푸르트벵글러 시리즈 계획으로 확대되었다.
마르코 폴로의 푸르트벵글러 음반은 모두 여섯 종류가 출반되었는데, 모두 알프레드 발터의 지휘로 녹음되었다. 레퍼토리들은 교향곡 1번(코시체의 슬로바키아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89), 2번(BBC 교향악단. 1992), 교향 협주곡(데이비드 라이블리 독주와 코시체의 슬로바키아 국립 필. 1990), 초기 관현악 선집(코시체의 슬로바키아 국립 필. 1993), 초기 가곡/합창곡집(귀도 피칼 등의 독창과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 징아카데미와 필하모닉. 1993)이었다.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나온 푸르트벵글러 작품의 음반 중 가장 체계적으로, 그리고 가장 많은 수의 음반이 발매되었다는 것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의 녹음 기술과 저예산 정책에 따른 2류 관현악단의 기용에 대한 불만은 요즘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때문인지 현재 본사 카탈로그에는 초기 관현악 선집만이 살아남아 있는 상태다.
또 푸르트벵글러 작품 해석에 있어서 '베토벤식' 관점을 강조한 알프레드 발터에 대해, 그 후배 격인 게오르게 알렉산더 알브레히트의 경우에는 '브루크너식' 관점으로 맞서는 형국이 되어 있다. 요즘 사람들은 발터 보다는 알브레히트의 해석에 더 점수를 주는 것 같은데, 이것은 결국 개인차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푸르트벵글러의 바그너와 브루크너 해석을 크나퍼츠부슈의 그것보다 좋아하는 데서 변명 거리를 찾고 싶다. 느린 템포와 거대한 스케일로 밀고 나가는 알브레히트 보다는 템포를 빠르게 잡아 곡의 기복을 강조하는 발터의 해석이 더욱 호감이 가는데, 단지 관현악단들이 그의 의도대로 충분히 밀어붙이지 못한다는 것은 여전히 아쉽다.
회현 지하상가의 중고 음반점에서 정말로 우연한 기회에 찾아낸 초기 관현악 선집은 국내에 정식 수입이 됐는지 어쨌는지도 불분명한, 그야말로 '레어' 의 자격이 충분한 아이템이었다. 비록 40분 남짓한 수록 시간이 감점 대상이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쨌든 나름대로 푸르트벵글러 매니아로서 얻은 귀중한 전리품이었다.
음원 자체는 낙소스 홈페이지에서 그 동안 제공되어 왔던-6월 15일 이후로 유료화 체제에 돌입했기 때문에 더 이상 공짜로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w;-저용량 파일을 쭉 들어왔기 때문에, 생경하지는 않았다. 물론 저용량 파일에 비할 수 없는 CD의 음질이라는 옵션이 붙어 더욱 집중하며 들을 수 있었다.
취향도 그 전과 같이 지속되었다. 푸르트벵글러의 첫 순수 관현악 작품이 된 서곡 E플랫장조(1899)에서는 그의 우상 베토벤이 즐겨 쓰던 '영웅 조성' 을 써서 나름대로의 풋풋한 위엄을 강조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엘가의 그 젠체하는 듯한 귀족적인 분위기로 받아들여졌다. 페이드 아웃 식으로 끝나는 용두사미 풍 결말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앨범에 수록된 세 곡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나은 것 같다.
나머지 두 작품은 교향곡으로 시도했던 작품들의 단편들이었다. 교향곡 D장조의 1악장(알레그로. 1902)과 B단조의 1악장(라르고. 1906)이었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푸르트벵글러의 첫 지휘자 데뷰 무대에서 두 번째 곡으로 연주되기도 했고, 첫 번째 주제가 몇십년 후 본격적으로 작곡된 교향곡 1번의 1악장에 거의 그대로 차용되고 있어서 주목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그다지 깊은 인상은 주지 못했다. 물론 후기 작품들에서도 면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로 신경쓴 대목이 많은데 정작 음악의 내용 자체가 좀 부실하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D장조의 1악장 후반에 나오는 푸가토는 곡의 전체적 맥락 보다는 '과시적인' 효과를 위해 일부러 집어넣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흐름을 끊어놓았다는 생각이다. B단조 1악장의 경우에는 그 장대하고 비극적인 악상에 비해 곡의 전개가 너무 급작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용에 비해 그릇이 너무 작다고 계속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들은 앨범 타이틀에서도 밝히는 것처럼 '초기' 의 작품들이다. 평소 윗사람들에게도 너무 잘난 체를 많이 해서 '건방진 녀석' 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푸르트벵글러의 유년기 성격이 작품에 투영되어 있으며, 자신의 발전 속도에 비하면 갈 길이 먼 교향곡 등의 대곡에 모든 노력을 바친다는 돈 키호테풍 사고방식에서 유래된 시행 착오도 그대로 담겨 있다. 아버지의 때이른 죽음과 지휘 활동의 급격한 증가 등으로 작곡을 중단하기 전의 푸르트벵글러는 어땠는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요전에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0번이라는, 매우 진귀한 곡의 한국 초연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물론 그 곡도 베토벤이 아직 고향인 본에 머물던 시기의 작품이었고, 많은 비평가들과 음악학자들이 '초기 베토벤의 많은 오류와 시행 착오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는 곡이다. 하지만 저 곡의 초연은 단순한 흥미와 가십 거리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곡 보다는 베토벤의 삶이라는 궤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 만으로도 저 곡의 한국 초연은 대단히 중요한 이벤트였던 것이다. 푸르트벵글러의 저 곡들은 언제 한국에서 실연으로 들을 수 있을 지 기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