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노래의 나라'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 서양 음악사에 있어서도 그런 것 같다.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라는, 성악곡 중 가장 중요한 장르 두 가지가 모두 이탈리아에서 발원되었으며, 저 두 장르에서 이탈리아의 작품을 빼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의 음악인들도 우선 '노래' 에 관계된 일로 먹어주고 들어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지휘자만 해도 '오페라 전문'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툴리오 세라핀을 비롯해 안토니노 보토, 비토리오 구이, 자난드레아 가바체니, 가브리엘레 산티니, 알베르토 에레데, 람베르토 가르델리 등의 이름은 지금도 오페라 레코드에서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도 콘서트 전문이거나, 혹은 콘서트와 오페라를 모두 겸하는 지휘자는 존재한다. 후자의 경우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그 모범을 보여 주었고, 토스카니니의 10여 년 연하인 빅토르 데 사바타(Victor de Sabata, 1892-1967)도 마찬가지였다.
토스카니니가 뽀록으로(???)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의 지휘대에 서면서 지휘 생활을 시작한데 비해, 사바타의 경우에는 좀 특이하다. 사바타는 콘서트 지휘자로 데뷰하고 나서 오페라를 지휘하기 시작했고, 1939년에는 이탈리아인으로서는 토스카니니 다음으로 바이로이트 음악제에 출연해 바그너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를 지휘하기도 했다.
토스카니니와 사바타 모두 구시대의 '독재형 지휘자' 였던 점은 일치하지만, 둘의 스타일은 매우 달랐다. 토스카니니가 '악보' 를 중시하는 객관식이었다면, 사바타는 '해석' 을 중시하는 주관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바타는 실제로 푸르트벵글러와 종종 비교되고 있으며, 기교의 완벽함 보다는 음악에서 즉흥성과 직관을 뽑아내는 것을 더 중요시했다고 한다.
사바타는 트리에스테 출신으로, 아버지가 합창단 지휘자였기 때문에 음악 교육을 이른 시기에 받았고 천부적인 재능도 있었다고 한다. 밀라노의 베르디 음악원에서 지휘 뿐 아니라 피아노, 바이올린, 작곡 등을 배웠고, 1910년 졸업할 때의 학위는 작곡으로 땄다고 한다.
1917년에는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위촉으로 '옥석' 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불과 24세의 나이로 얻어낸 첫 성과였다. 하지만 사바타는 성악 장르에만 머물지 않았고, 이탈리아인으로서는 드물게 대규모의 기악 작품들도 여럿 남겼다. 교향시 '유벤투스' 와 '플라톤의 밤', '겟세마니', 발레 '천일야화', 극음악 '베니스의 상인' 등이 1930년대까지 창작된 사바타의 주요 작품이다.
하지만 2차대전 후 사바타의 작곡 활동은 거의 정지되다시피 했고, 그 후 작곡가로서 사바타의 이름은 빠른 속도로 잊혀졌다. 아마 사바타가 전후 유행이 되다시피 한 음열 작곡을 기피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비슷한 성향의 푸르트벵글러나 빌헬름 켐프 등의 작품도 아직 찬밥 신세인 것이다.
위에 열거한 사바타의 대표작 중 교향시 '유벤투스(Juventus)' 가 지금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바타 작품의 음반이다. 낙소스 히스토리컬에서 CD로 복각한 것인데, 1919년에 작곡되었으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환' 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열정적이고 유창한 오프닝은 슈트라우스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 하지만 사바타는 이탈리아인이었고, 슈트라우스처럼 문학적인 소재보다는 음악 자체로 승부하는 기질의 소유자였다.
물론 저 곡만으로 사바타의 창작 성향을 가늠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대략 동시대 작곡가인 레스피기와 코른골트의 화려한 관현악 처리와 후기 낭만파의 어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은 파악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낙소스의 음반은 얇은 사바타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대단히 귀중한 '자작 자연' 이므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유벤투스' 의 녹음은 1933년 12월 28-30일 동안의 세션에서 이루어졌는데, 당시의 '현대음악' 이었던 스트라빈스키의 '불꽃놀이', 모솔로프의 '철공소', 글라주노프의 교향 모음곡 '중세 시대로부터' 발췌도 함께 녹음되었다. 사바타 자신이 작곡가였던 만큼, 동시대의 작품에 주의를 기울였다는 증거도 된다.
물론 1933년이라는 녹음 연도는 저 음반을 집는 데 좀 망설임이 생기는 요인이었다. 복각을 맡은 마크 오버트-손도 '작은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데다가, 당시로서는 좀 원시적인 소리였다' 고 밝히고 있다. 하이피리언이라는 영국 마이너 레이블에서 알도 체카토 지휘의 런던 필이 2000년 12월 녹음한 신보가 발매되어 있다는데, 국내에는 아직 수입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낙소스 히스토리컬의 CD도 적은 물량만이 수입되어 지금은 대부분의 레코드 상점에서 품절 상태인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