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을 처음 먹어본 것은 별로 오래되지 않았는데, 대학 들어가고 나서였다. 지금은 새 건물 올리느라 헐렸지만 신용산역에서 용산지하차도 가는 길목에 순대국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음악 관련 기획사 차려놓고 일하는 동기 녀석 한 명이랑 용산전자상가 갔다오는 길에 한 번 먹자고 해서 따라간게 처음이었다.
그 때까지는 순대국이 '국에 밥 대신 순대 말아먹는건가'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온 것을 보니 국 속에 순대가 들어있고 밥 공기가 따로 나와서 그걸 거기에 말아먹는 것이었다. 순대야 물론 좋아하던 먹거리였고, 처음 먹는 것 치고는 꽤 맛있어서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하지만 그 뒤로도 순대국은 그리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니었는데, 기껏해야 군 시절 외박 나왔을 때나 휴가복귀할 때 몇 번 먹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아주 예전에 딴지일보의 맛집 소개 코너에서 '여기 왠지 낯익은데' 라고 본 가게 생각이 났고.
낯이 익을 수밖에 없는게,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와도 가깝고 예전에 주차장하던 외갓집과도 가까워서 어릴 적부터 자주 돌아다니던 골목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 들어가고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하다가 여름방학 말기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관현악 리허설 끝내고도 객원 단원이나 협연자 모집 때문에 다시 모교로 가서 이리저리 교섭하고 하느라 점심 먹을 새도 없었는데, 굉장히 허기진 상태라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이 들어갔다. 가게 이름은 '버드나무집' 이었는데, 가게 앞에 내놓은 간판 외에는 정면 간판도 없는 굉장히 조촐한 가게였다. 맞은편에는 이문제일교회라는 교회 건물이 자리잡고 있고.
가게 내부는 전형적인 '허름한 국밥집' 스타일이었는데, 가까이에 외대가 있어서 그랬는지 외대생들의 술자리 혹은 해장집으로도 자주 이용되는 것 같았다. 벽에 빼곡히 쓰여져 있는 낙서들에는 갖가지 학과와 학생들의 이름 등이 있어서 '대학가 음식점' 다운 분위기였다.
메뉴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학생들의 환영을 받을 만큼 저렴했는데, 딴지일보 기사가 나왔을 당시에 국밥 메뉴들은 3000원이었다. 지금은 500원씩 인상된 가격이 붙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거의 6~7년 지난 기사인 만큼 그 동안 계속된 물가상승크리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냉면 메뉴를 인쇄한 종이로 가려놓은 메뉴는, 물어보니 동절기 특별메뉴라고 했다. 지금은 여름이니 냉면을 하고, 가을철과 겨울철에는 떡만두국이나 콩비지 등을 내놓는다고 했다.
어중간한 시간이었던 만큼 가게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나 외에는 커플부대원 한 쌍과 낮술을 많이 한 듯한 주정꾼 손님 한 사람까지 네 사람밖에 없었는데, 테이블 외에 가게 앞에서도 먹을 수 있게 선반과 탁자를 내놓고 있었다(위의 가게 앞 풍경 짤방 참조. 한가한 시간에는 식재료를 다듬는 장소로도 쓰고 있는 듯 하다).
가게 바깥 외에도, 한가한 시간이나 영업외 시간에 주인 내외분이 거처로 쓰고 있는 듯한 다락방도 단체 손님들이 오면 개방하는 것 같다. 다락방 벽에도 낙서가 가득하다.
일단 첫날에는 머리국밥을 주문해 보았다. 반찬 혹은 양념으로는 국밥에 넣어 먹는 다대기와 양념새우젓, 곰삭은 깍두기, 생양파와 풋고추, 그것들을 찍어먹을 수 있게 내놓은 쌈장이라는 전형적인 국밥집 셋팅으로 따라나왔다.
국밥 위에 수북히 담겨나온 깻가루와 산초가루를 풀어헤치면서 내용물을 확인해 봤는데, 말아놓은 밥 외에도 수북한 고깃덩이들에 꽤 놀랐다. 머릿고기 외에도 순대를 사먹을 때 흔히 따라나오는 오소리감투 같은 부산물 등 꽤 많은 육물들이 들어 있었다.
돼지고기를 쇠고기보다 좋아하는 식성 때문에 정말 반가울 수밖에 없었는데, 먹다가 좀 느끼하다 싶으면 깍두기와 양파, 풋고추를 곁들여가며 한 그릇을 싹 비웠다. 계산을 하면서 딴지일보 얘기를 꺼내봤는데, 역시나 알고 있었다. 여기가 초행이라는 것과 인근 대학교 학생이라는 것, 예전에 외갓집이 근처에서 주차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불어버리고(???) 말았다.
그 다음날에도 볼일이 있어서 또 학교에 가야 했는데, 볼일을 마치고 또 한 번 들렸다. 어제 온 손님이라는 것을 기억했는지 여주인 분이 가게 앞에서 웃으며 맞이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머리국밥에 이은 순대국밥을 주문해 보았다.
순대국밥도 기본적으로는 머리국밥과 대동소이했는데, 순대 몇 점이 있는 것을 빼놓고는 푸짐한 고깃덩이들이 들어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다대기와 새우젓을 풀어넣고 정신없이 퍼먹기 시작했다. 다만 이 날 먹은 풋고추 중 하나가 꽤나 약이 오른 거라서 조금 고생했고.
어쨌든 그릇을 또 쫙 비우고 계산을 했다. 아마 이틀 연속 온 것이 기특했는지(??) '단골손님이 하나 늘었네' 라고 좋아하시더라. 물론 주 3파를 사실상 확정지은 만큼 매일 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학생식당 메뉴가 암담할 때 같은 경우에는 종종 찾아가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뱀다리: 찾아가는 방법이라...일단 지하철로는 좀 불편하다. 회기역과 외대앞역 딱 사이에 있는데, 버스로는 휘경시장과 외대앞 사이를 통과하는 노선들인 120(파랑), 147(파랑), 261(파랑), 273(파랑), 1215(초록)와 1222(초록) 여섯 개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경희중고' 정류장(외대앞 방향)에서 내려 좀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꺾는 골목이 나오는데, 그 골목으로 들어가 다시 왼쪽으로 꺾어 좀 내려오면 된다. 그러다 보면 오른편에 교회가 있고 왼편에 보면 국밥집이 보인다. 맛과 양은 보장할 수 있지만, 말 그대로 전형적으로 질박한 분위기라 고급스러움 혹은 깔끔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좀 난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