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라는 이름을 들면 예전까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하나로 압축되던 상황이었지만, 그의 자식들 뿐 아니라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세대 까지도 작곡가였던 사람이 많았다. 라인하르트 괴벨이라는 독일의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는 이들 '알려지지 않은' 바흐의 선조들 작품을 모은 음반을 내기도 했다.
바흐의 자식들 중 지금도 음악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작곡가들로는 빌헬름 프리데만, 칼 필립 에마누엘,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와 요한 크리스티안 네 사람을 들 수 있다. 특히 칼 필립과 요한 크리스티안 두 사람은 각각 주 활동 무대를 빗대어 '베를린(또는 함부르크)의 바흐' 와 '런던의 바흐' 로 불리기도 한다.
저 네 사람들 중 가장 괴짜이면서 개성적인 음악을 작곡한 사람이 바로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다. 생전에 아버지 바흐보다도 더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었고, 특히 클라비어(당시 건반악기의 총칭어) 연주와 작곡에 있어서는 거의 지존이었다고 한다. 바로크와 고전 피아노 작품을 배우는 학생들이 참고하는 '올바른 클라비어 연주법' 이라는 책도 지은 바 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형제들과도 구별되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은 바로 '질풍노도' 라는 단어로 설명될 수 있는 격렬한 흐름이다. 칼은 성격도 꽤 드세었다고 하는데, '계몽 군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직속 음악가였지만 왕과 음악으로 추구하는 길이 다름을 알고는 종종 논쟁까지 벌였다고 한다. 결국 베를린을 떠나 함부르크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었는데, 마지막 무대가 된 함부르크의 이름을 딴 열 곡의 교향곡 시리즈가 있다.
열 곡 중 1-6번 까지의 여섯 곡은 스트링과 바소 콘티누오-통주 저음. 흔히 하프시코드를 사용-만으로 이루어진 간소한 곡이고, 나머지 네 곡은 거기에 오보에와 호른 각 두 대, 그리고 바순을 더한 곡들이다. 작품 번호도 각각 Wq.182번과 183번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여기서 이야기할 곡들은 바로 1-6번까지의 곡들, 즉 Wq.182번에 속하는 곡들이다.
*Wq: 칼의 작품 목록을 처음 작성한 알프레드 보트크벤네(Alfred Wotquenne)의 성씨 약자.
1773년에 베를린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였던 고트프리트 반 슈비텐 남작-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의 가사 제공자로 유명함-의 주문으로 쓰여졌는데, 아무래도 남작은 주문 상대를 잘못 고른 듯 했다. 남작이 원하던 곡은 오히려 칼의 동생 요한 크리스티안의 우아하고 품위있는 '갈랑(galant)' 스타일이었는데, 칼의 스타일은 그것과는 상반되는 것이었으니.
어쨌든 저 교향곡들은 발표되고 나서 '변덕스러운 곡', '악장 사이의 일관성이 없는 유치한 단절' 등의 악평을 많이 받았다. 물론 의뢰인인 슈비텐 남작으로부터 별 호응도 얻지 못했고. 바로크와 고전을 잇는 징검다리에 속했던 칼의 작풍은 오히려 낭만주의 스타일에 더 근접해 있었고, 오늘날에는 '감정과다 양식(Empfindsamer Stil)' 이라는 단어로 설명되고 있다.
저 곡을 처음 들었던 때가 중학생 시절이었는데, 단지 '바흐 짝퉁인가' 라면서 재미삼아 음반을 샀다가 엄청나게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했다. 자잘한 음들이 무수히 쏟아지는 빠른 악장-그리고 거기서 갑자기 주저앉듯이 이어지는 느린 악장-그리고 다시 빠른 악장이라는 3부 구성인데, 그 변덕스러움과 강렬한 대비는 오히려 아버지 바흐의 음악보다도 더 호소력이 강했던 것이다. 그렇게 괴팍스러웠다는 베토벤 마저도 저런 '당돌한' 스타일의 음악을 쓰지 못했고.
처음 샀던 음반은 영국의 원전연주-곡이 작곡되었던 시대의 악기와 연주법+철저한 고증을 거친 악보로 연주하는 방식-단체인 '고음악 아카데미 합주단(The Academy of Ancient Music)' 의 연주였는데, 테이프인 데다가 너무 오래 들어서 늘어지는 기미까지 있다. 그래서 며칠 전에 푼돈을 털어서 다른 CD를 샀는데, 염가 레이블인 낙소스에서 나온 카펠라 이스트로폴리타나의 연주였다-이 연주는 위의 단체와는 달리 일반적인 현대 악기를 쓰고 있음-.
곡 자체의 괴팍함과 변덕스러움은 오히려 고음악 아카데미의 연주가 더 잘 살리고 있는데, 차점으로 선택한 낙소스의 CD도 나쁘지는 않다. 단지 많은 낙소스의 관현악 앨범과 비슷한 단점인 '안전빵 연주' 라는 느낌이 들고, 녹음도 지나치게 작은 소리로 되어서 아쉽기는 한데, 어쩌면 현대 악기가 지닌 한계일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