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잔인한 농담이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이라는 나라의 노인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인간도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게 되면 건강도 나빠지고, 여러 면에서 젊은이들에게 압도당하게 된다.
그것이 살아 있는 동안 노인들이 감내해야 될 과제라면, 어떠한 분야에서 유명세를 얻고 타계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죽은 뒤에도 계속 되는 것이다. 물론 바흐나 횔덜린, 고흐 같이 사후에 '인생 역전' 을 이루게 된 대가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의 업적이 후대 사람들에게 '고리타분하다' 라고 느껴지는 순간, 그들은 부관참시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프랑스의 수많은 작곡가들 중 특히 1968년에 후대의 젊은이들에게 호되게 '다구리' 당한 사람이 있었다.
"구노 대신 헤나키스(그리스 출신 작곡가로, 프랑스로 망명함)를!"
체 게바라와 마오쩌둥 같은 '혁명가' 들을 추앙하며, 드골 정권에 불만을 품고 혁명을 외친 프랑스 젊은이들 중 음악학도들이 '타도' 의 대상으로 내세운 작곡가가 바로 샤를 구노(Charles Gounod. 1818-1893)였던 것이다. 구노는 당대에도 보수적인 작풍으로 유명했고, 주로 오페라와 종교음악 분야에서 활약했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첫 곡인 C장조 전주곡에 자작 선율을 붙인 '아베 마리아' 는 구노의 이름을 지금도 전해주는 곡이다.
절제와 조화, 아름다운 선율을 주특기로 한 구노가 수학과 건축의 이론을 음악에 도입하고자 한 헤나키스의 전위적인 작풍에 밀릴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구노는 음악원에서 '쫓겨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주역이었던 68년의 세대들은 지금 노년층이 되어 다시 젊은 세대들의 재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뭐든지 너무 성급한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 구노가 그들에게는 '타도해야 할 고리타분한 거장' 정도로 비쳐졌겠지만, 프랑스 음악의 전통을 계승한 대가라는 일반적인 평가는 그들의 젊은 혈기와 혁명의 열정으로도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구노가 주력했다는 위의 두 장르 중 오페라는 그의 이름을 높여주기도 했으며, 그리고 깎아내리기도 한 분야였다. '파우스트' 와 '로미오와 줄리엣' 두 작품은 지금도 세계 각국의 오페라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지만, 이 두 작품을 제외한 10곡은 상연의 기회가 대단히 적다. 기껏해야 '미레유' 가 가끔 공연되지만, 대본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한편 구노는 의고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었는데, 위의 '아베 마리아' 가 특히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독특한 경지를 만들어 낸 베를리오즈를 빼고는 항상 독일-오스트리아 전통에 가려 있던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했는데, 번호 붙은 두 곡과 번호 없는 '작은 교향곡' 한 곡이 남아 있다. 번호가 붙은 1번 교향곡은 하이든 풍으로 쓰여졌으며, 비제가 16세 때 쓴 교향곡과 함께 프랑스 교향곡의 단아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저 교향곡들은 결국 독일계 명작들의 아성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프랑스 작곡가들이 '구축력' 에 관한 센스가 없다고 도매금으로 넘겨버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평가지만, 구노 음악에서 그러한 건축미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건축미의 결여는 이후 음악을 '색채' 나 '분위기' 로 파악하는 드뷔시에 이르러 되레 '개성' 이 되었다.
구노의 '작은 교향곡(Petite Symphonie)' 은 지금도 관악기 주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름 그대로 20분을 약간 넘는 단촐한 작품이다. 1885년에 당시 프랑스 플루트의 대가였던 폴 타파넬의 부탁으로 쓰여졌으며, 초연도 타파넬이 이끄는 소규모 관악 합주단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플루트 하나와 오보에-클라리넷-바순-호른 각 두 개 씩 모두 아홉 사람의 합주로 편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편성은 18세기에 유행했던 귀족이나 왕족들의 관악 앙상블을 생각나게 한다. 유독 플루트만이 하나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아마 위촉자인 타파넬의 연주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구노는 다른 관악기들의 솔로와 앙상블에도 신경을 썼고, 모차르트가 19세기에 태어났다면 썼음직한 세레나데나 디베르티멘토풍의 관악 합주곡이 되었다.
ⓟ 2001 EMI Records Ltd.
하지만 저 작품이 '교향곡' 으로 인정을 받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 라고 대답하기가 곤란한 것이 사실이다. 위에 쓴 대로 저 작품은 세레나데 류의 가벼움이나 아름다운 선율 등이 존재하지만, 각 악장 간의 긴밀한 구성 등은 결여되어 있거나 부족하다. 구노는 '절제된 아름다움' 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 아쉬움은 이 곡에서도 느껴질 수밖에 없다.
구노의 저런 성향은 단점이라고 보여질 수도 있지만, 그와 자주 대조되던 자코모 마이어베어의 운명을 본다면 오히려 장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마이어베어는 3시간도 넘는 상연 시간을 자랑하던 '그랜드 오페라' 의 작곡가로서, 그리고 그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매우 외향적이고 화려한 음악으로 당대 청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뭔가 절제되어 있는 듯한 구노의 오페라에 파리 청중들이 익숙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였다.
21세기가 된 지금, 마이어베어는 그러한 작풍이 오히려 '과대포장' 으로 여겨져 평가절하 당하고 있는 입장이 되었다. 구노는 비록 진보적인 음악인들에게 욕을 먹었을 지언정, 그의 명성은 그리 타격을 입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물론 구노도 언제 마이어베어의 길을 밟게 될 지는 모를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