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가 두 번씩이나 등장했다. 자주 인용하는 작곡가 김대성씨의 말이 의미심장한데,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유치원 등에서 글을 깨우칠 나이에 작곡을 시작했고, 죽을 때까지 600편도 넘게 작품을 남겼으며, 중요한 것은 그 작품들의 절대 다수가 흠잡을 데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 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작품들 중 '졸작' 도 여러 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졸작' 을 딱 하나 찝어낼 수 있는 것이 있다. 유년 시절의 습작? 아니다. 1787년, 모차르트가 31세 때 쓴 작품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에 모차르트가 큰 슬럼프에 빠져서? 그것도 아니다. 물론 그 해 아버지 레오폴트가 타계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창작열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모차르트가 왜 그러한 '졸작' 을 썼는 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 곡의 제목을 알 필요가 있다.
'음악의 농담(Ein musikalischer Spass)' K.522
사실 위의 여러 가지 가설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제목 그대로 받아 들이면 되니까. 하지만 이 곡은 단순한 '농담' 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을 지독하게 꽈배기한 '블랙 유머' 에 가깝다. 재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노력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항상 존재해 왔으며, 저 곡은 각기 후자의 3류들을 꼬집은 것이었다.
'데스메탈의 황제 메탈리카를 존경합니다' 라던가 '레드 제플린이 누구에요?' 같은 소리를 하고 다니면서 자신이 락커라고 굳세게 주장하는 벌레 한 마리가 기어다니듯, 당시에도 비슷한 유형의 얼치기 작곡가들이 있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곡의 '블랙 유머' 를 현대의 청중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뒤처진' 곡이 된 것이 문제다. 모차르트는 이 곡의 작곡 기술 측면에서 병행/은복 5도나 악장 간의 비례 계산 실패-당시 다악장 곡들은 첫 악장과 끝 악장에 비중이 크게 주어지고 연주 시간도 긴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성 파악 실패-3악장은 순수 흰 건반의 C장조지만 '파' 음에 #이 붙어 시작하고 있다-등을 풍자하고 있다.
저러한 것들이 모차르트 시대에는 '졸렬한 기법' 이라고 여겨져 왔다고 해도, 요즘 와서 똑같이 웃어제낄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다. 병행/은복 5도는 동양의 전통 음악에서 쉽게 발견되며, 드뷔시의 작품에서는 일부러 사용되기도 했다. 20분을 훨씬 넘는 아다지오 악장이 배치된 브루크너의 후기 교향곡도 마찬가지로 '비웃음' 의 대상이 되기는 힘들며, D장조로 시작한 곡을 D플랫장조로 마친 말러의 교향곡 9번이 '조성 파악 실패' 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저 곡을 듣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고전 시대의 작곡 기법이나 관례를 통달한 사람에 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몇 군데, 처음 듣는 사람도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
2악장에서 호른 두 대가 연주하는 악구(0:49~0:56 외)는 척 듣기에도 팡파르 풍이지만, '돌체(부드럽게)' 라고 지정되어 있는 데다가 뒤로 갈 수록 엉터리로 되어 있다. 3악장은 '아다지오 칸타빌레(느리게 노래하듯이)' 라고 되어 있지만, 그 '노래' 는 위엄스럽게 꾸민 악절 때문에 시작부터 계속 흐름이 끊겨 버린다(0:00~0:18). 게다가 말미에 삽입된 카덴차-아이러니하게도 모차르트 자신이 직접 쓴 유일한 바이올린 솔로용 카덴차다-는 괴상한 음으로 높이 올라가 버린다(4:38~5:35).
4악장에서는 쓸데없이 자주 등장하는 호른의 트릴(두 음을 빠르게 연주하는 꾸밈음. 예: 0:46~0:51)이 뭔가 조롱하는 듯한 인상을 주며,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세 화음의 연주는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상황을 연출한다. 호른과 현의 각 파트-바이올린 2/비올라/콘트라베이스-가 저마다 다른 음을 연주하며 완전히 불협화음으로 끝나 버린다.
조금 더 주의 깊게 듣는다면 1악장의 전개부(1:52~2:23)가 굉장히 짧고 유치하게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같은 악장의 끝맺음 부분(3:09~3:27)에서는 위에 쓴 병행 5도 등 화성 진행의 오류 때문에 대단히 난잡하게 들린다는 것도 알 수 있다. 4악장의 푸가토(fugato. 푸가 풍의 짧은 악구)도 주제를 콘트라베이스-비올라-바이올린 2-호른이 받아가다가 거기서 전혀 상관 없는 호른 악구가 등장해 주저앉아 버리는 것도 들 수 있다(0:28~0:41).
이 곡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명곡 해설집 등에도 항상 등장하지만 연주되는 기회가 그다지 많지도 않으며, 연주 된다고 해도 모차르트가 의도했던 대로 청중들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기대한다고 해도, 어제의 역사가 소용없는 것은 아니다. 락커(Locker)나 인터넷 '배설' 작가(대표적 인물: 귀없니→가명?) 같은 같잖은 녀석들이 싸돌아 다니는 요즘의 현실을 비추어 보며 (B)웃음을 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