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르를 불문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녹음이 바로 라이브 레코딩, 즉 실황 녹음이다. 몇 번이고 이어붙여서 '삑싸리나 실수가 없는' 스튜디오 녹음이 가지지 못하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실황 녹음만의 강점이다.
하지만 이 실황 녹음에 대해 소비자나 청중들이 얼마나 믿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다. 클래식만 거의 십수 년을 듣고 살아온 나라도, '실황 녹음' 딱지가 붙은 음반이라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고 검토한 뒤에야 사는 실정이다.
레코드와 레코딩 역사에 있어서 실황 녹음은 항상 스튜디오 녹음보다 몇 걸음 처진 상태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녹음 전에 기술자들이 충분히 준비를 갖추고 이러저러한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스튜디오에 비해 라이브는 여러 가지 위험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넥스트의 첫 라이브 앨범-주로 서울과 부산 공연을 편집-을 들어 보면 참 난감한 사운드가 펼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라이브 앨범 제작 경험이 없는 그룹의, 그리고 라이브 레코딩의 경험이 부족한 스탭들의 도전으로서는 어느 정도 성공한 앨범이지만, 곳곳에서 뭉개지는 기타 사운드라던가 앰프 등 전자 장비의 조작 미숙 등이 '현장감' 과 함께 그대로 담겨져 버린 것이다.
많은 부분을 전자 장비에 의지하는 대중 음악 콘서트에 비해 언플러그드 뮤직이나 클래식 등 생음악 콘서트는 그러한 위험이 덜 하다고는 해도, 역시 변수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악장 사이 혹은 연주 중 박수를 치는 청중들, 이곳 저곳에서 예상되는 삑싸리와 실수, 연주자의 연주 음량 등.
그래서 많은 경우에 음반사들은 며칠 동안의 공연을 편집해서 '실황 녹음' 음반으로 내놓고 있다. 위의 넥스트 라이브 앨범도 그런 것이었고,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70년대 후반부터 출반한 일련의 실황 음반들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도 나같이 '무편집, 당일 실황 녹음' 의 애호가들에게는 분명 태클의 소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연주회의 내용 뿐 아니라 기후나 온도 등 사소한 조건에 따라서도 미묘하게 다른 각각의 실황을 이어 붙인다는 단순한 문제 외에, 편집에 따른 음반사의 도덕성 문제도 얽혀 있는 것이다.
다행히 무편집/당일 실황 녹음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앨범 뒤의 곡목과 연주자 소개 란에 녹음 일자와 장소가 확실히 표기된 경우-예: 1967년 1월 3일 프라하 스메타나홀-에는 안심하고 살 수 있다. 물론 그 날 공연이 두 번 이루어졌다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이러한 당일치기 녹음은 메이저 음반사에서도 종종 어떤 시리즈의 일환으로 발매되는데, 도이체 그라모폰과 EMI, 소니 클래시컬 등의 '잘츠부르크 음악제(Salzburger Festspiele)' 시리즈들이 그렇다. 물론 이들 시리즈도 1970년대부터 최근 까지의 몇몇 음반들에서는 일반적인 경우와 마찬가지로 짜집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히스토리컬' 전문 음반사들이 있다. 프랑스의 타라(Tahra), 영국의 BBC 레전드(BBC Legends)와 테스타먼트(Testament), 독일의 오르페오 도르(Orfeo d'or), 오스트리아의 프라이저(Preiser), 미국의 뮤직 앤 아츠(Music & Arts)들은 대부분 당일치기 실황 녹음 위주의 음반을 내놓고 있다.
물론 '히스토리컬' 이라는 개념은 '오래된' 뜻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위의 음반사들은 테이프 보급 이전인 1930년대부터 스테레오 중기인 1960년대 후반 까지의 실황 녹음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어서, 음질에 관한 불만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일 녹음을 전문으로 하는 많은 방송국들, 그리고 해당 아티스트들 (사망한 경우에는 친족들) 과의 합법적인 계약으로 음반을 제작하기 때문에, 도덕성 측면에서도 믿을 만한 회사들인 것도 사실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이러한 '실황' 의 특성을 살릴 만한 기술 수준을 이미 갖추고 있다. 1970년대 말 NHK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실황 녹음을 시행하는 방송국이 되었고-대부분의 유럽/미국 방송국들은 1980년대 중-후반에야 디지털 녹음 장비가 보급되었다-, 지금도 녹음 기술에 있어 선진국 대열을 달리고 있다.
정발이건 해적판이건 실황 녹음에 있어 일본의 열정을 능가하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친친(Cin Cin), 사르다나(Sardana), 메테오르(Meteor) 등의 해적 레이블들은 NHK나 도쿄 FM 등이 중계하는 세계 각지의 연주회 프로그램 등을 녹음해 CD로 내놓고 있으며, 이들 CD는 '어둠의 루트' 를 통해 각지에 보급되고 있다. 이들에 의해 '세계 최초 음반화' 된 실황 녹음은 엄청나게 많으며, 그 중에는 정명훈이 지휘한 브루크너 교향곡 4번(2002.3.12 도쿄 실황) 같은 진귀한 것들도 끼어 있다.
그리고 많은 아티스트들이 라이브 앨범 발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갈수록 완벽성을 추구하는 세태 때문에 '어지간해서 실수를 감수해야 하는' 라이브의 녹음과 출반은 위험성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1940-50년대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많은 공영/상업 방송국들이 자체 제작의 실황 녹음 자료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 자료가 음반/영상매체로 활발히 시판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스튜디오 녹음 여건이 아직도 미흡한 한국에서도 실황 녹음은 요긴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실제로 부천시향, 전주시향, 수원시향 등 국내 관현악단들은 당일치기 실황에 의한 자주 제작 CD를 내놓고 있다. 물론 질 좋은 실황 녹음을 하기 위해서는 스튜디오 녹음의 경험이 풍부한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장비 또한 세계 수준의 것들을 많이 갖추고 있어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덧붙여, 스튜디오와 실황의 장점을 모두 수용하고자 하는 이색적인 녹음 방식도 시도되고 있음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도이체 그라모폰. 신판 베렌라이터 악보에 의함)의 몇 곡은 스튜디오 녹음임에도 엄선한 소수의 청중들을 객석에 앉혀놓고 녹음했다.
비록 모양새는 어중간하지만, 실황 녹음의 가장 큰 문제인 '청중들의 도발적인 사고(???)' 도 예방할 수 있고, 현장감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방식에 의한 녹음이 앞으로 계속 될 것 같다. 일본에서도 '오 나의 여신님-작다는건 편리해' 의 오케스트라 앨범이 이러한 방식으로 녹음되었고, 앨범에는 '공개 녹음'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