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은 유한하고, 게다가 죽음이 예상치도 못한 때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미완성' 의 인생도 존재한다. 특히 예술인들이 자신의 마지막 기력을 쏟아붓고도 채 완성시키지 못한 채로 눈을 감을 때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로맨스' 가 되곤 한다.
문제는, 미술이나 문학과 달리 음악의 경우 미완성 작품이 설득력을 가지기가 더욱 힘들다는 것이다. 극히 개인적인 어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음악이며, 악보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 시간 예술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천재적인, 혹은 작곡가를 가장 잘 알고 있었다는 사람이 거기에 보완을 한다고 해도 그 작품은 여전히 '미완성' 일 뿐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는 바흐의 '푸가의 기법', 모차르트의 '레퀴엠', 베토벤의 교향곡 제 10번,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 9번, 말러의 교향곡 제 10번,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버르토크의 비올라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등의 작품이 여전히 '미완성' 인채 존재하고 있다.
물론 작품에 따라 타인의 보완이 성공적이었던 경우도 있었지만, 베토벤 교향곡 10번의 1악장을 보완했던 배리 쿠퍼나 슈베르트 교향곡 8번의 나머지 3-4악장을 썼다는 브라이언 뉴볼트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이번에 소개할 곡도 마찬가지이며, 나 자신도 보완자의 업적 자체를 부정하지만 음악만은 살려두기로(???) 했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 7번' 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생전에 1-6번 까지의 교향곡과 번호없는 '만프레드 교향곡' 까지 일곱 곡의 교향곡을 완성시켰다. 물론 후자는 전통적인 교향곡보다는 교향시에 가깝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저 '7번' 은 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답은 6번 '비창' 의 작곡 단계로 돌아가면 찾을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모스크바 근교의 클린에서 6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영감이 얻어지지 않는다' 면서 작곡을 포기했다. 이 포기된 소재들은 이후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의 작곡에 이용되었고, 새로 쓴 곡이 바로 '비창' 이라는 표제로 유명한 현재의 6번 교향곡이다.
그나마 피아노 협주곡 제 3번은 1악장만이 완성되었고, 지금도 단악장으로 연주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 사후, 그의 제자였던 타네예프가 유품 악보들을 뒤져 피아노 협주곡 제 3번의 2-3악장이라고 생각되는 스케치를 찾아냈다.
타네예프는 이 스케치를 관현악 편곡/수정해 발표했지만, 예상했던 협주곡의 1악장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그 두 악장은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안단테와 피날레' 라는 이름으로 별도 출판되었다. 피아노 협주곡 제 3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차이코프스키 만년의 범작' 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칭호가 붙어다니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 1950년대에 러시아의 음악학자였던 세묜 보가티례프라는 사람이 위의 두 작품과 '18개의 피아노 소품(op.72)' 중 '스케르초 환상곡' 을 합쳐 차이코프스키가 처음 착수했다는 '6번' 을 복원시켰다. 그리고 복원된 곡은 '교향곡 제 7번 E플랫장조' 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물론 저 복원 작업은 대단히 비판을 많이 받았다. 차이코프스키가 마음에 안들어 포기한 작업을 굳이 다시 해야 했느냐는 목소리가 많았고, '7번' 을 지휘한 지휘자가 고작 유진 오먼디, 네메 예르비, 레오 긴스부르크, 그리고 원경수 정도뿐인 것도 그 증거가 될 수 있다.
나 자신도 저 곡을 '보가티례프 작곡의 차이코프스키 주제에 의한 교향곡' 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과 별도로, 저 7번의 원래 형태가 된 두 작품이 너무 평가 절하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만년의 그 어두움으로 가득찬 걸작들에 비하면 '너무 가볍다' 는 인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버려진 스케치들에서조차 차이코프스키가 마지막 교향곡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 담겨 있고, 어두움이 부족한 대신 활기와 경쾌함이라는, 흔히 이야기하는 차이코프스키의 심각함과는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지도 않을까.
교향곡 제 7번은 위에서 언급한 원경수 지휘의 KBS 교향악단에 의해 1997년 한국 초연을 보았다. 원경수는 그 이전에도 서울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배리 쿠퍼가 보완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 10번 1악장을 한국 초연하기도 했다. 이 실황은 위성 채널로 중계되었는데, 물론 처음에는 거부감이 많았지만 점차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앞으로도 저 '7번' 을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미완성 작품의 존재 문제, 그리고 작곡가의 의도에 대한 존중 문제와 함께 예술적인 논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저 논쟁은 '먹물들' 에 국한되어서는 안될 것이고, 어떻게든 일반 대중들의 귀로 끌어내어 그들에게도 논쟁에 참여할 기회를 줄 '연주자' 들과 함께 해야 한다.
교향곡 제 7번의 음반은 유진 오먼디 지휘의 필라델피아 관현악단(CBS/소니 클래시컬)이 유명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쉽게 눈에 띄는 것이 영국의 샨도스(Chandos)에서 나온 네메 예르비 지휘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샨도스반에는 위의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이 같이 들어 있어 원곡과의 평가도 가능하다.
긴스부르크도 러시아 국영 음반사인 멜로디아(Melodiya)에서 음반을 냈다고 하는데, 이것은 오먼디 음반보다도 더 찾기 어려우며 연주 수준도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그 외에 2월 17일 KBS 1FM의 'KBS 음악실' 이라는 프로그램 첫 곡으로 이 곡의 1악장이 방송되었는데, 원경수 지휘의 모스크바 필 연주라고 했다. 음반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한 음원인데, 비디오로 떠놓은 한국 초연 실황과 혼동한 것 아닌가 했지만 많이 달랐다. KBS 측에 문의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