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음악과 애니메이션 등의 '대중문화' 는 지금도 개방을 하네 안하네 하면서 (완전히 말도 안되는) 논쟁 대상이 되고 있지만, 문학 쪽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겐지모노가타리 등의 고전 문학부터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의 근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 등 현역 작가들의 작품을 서점에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그 사례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되면서 '은하철도 999' 의 원작은 아니더라도, 그 아이디어를 제시해준 것이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성대하게 치뤄진 제 2회 ANIMEXPO의 상영회에서는 위 작가의 작품을 아예 원작으로 한 '첼로켜는 고슈(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애니메이션이라서 어느 정도 각색의 묘미가 가해졌겠지만, 음악 전공자로서 그리고 첼로를 취미로 배우고 있는 입장으로서 지금도 극히 드물게 즐겨 보고 있는 음악 관련 작품이다. '고슈' 를 보고 몇 년 후에는 자주 가는 동대문 만화책 도매상에서 저 두 작품을 소재로 한 만화책 한 권을 샀다.
'드래곤 피스트', '람설기' 등이 국내에 출판되었고, 그로 인해 명성을...얻기 보다는 '국내 출판되면 1년도 못가 절판되는 작가' 라는 낙인이 찍혀 버린 카타야마 슈의 그림이었는데, 물론 이 책도 1년을 못 넘기고 절판되어 버렸다.
제일 먼저 '고슈' 쪽을 봤는데, 애니메이션의 좀 투박한 그림체에 익숙했던 터라 '꽃돌이' 가 된 주인공 때문에 좀 실망했다. 그래서 일단 다시 메인인 '은하철도의 밤' 으로 돌아갔다.
물론 거기서도 미소년 그림체는 여전했지만, 스토리의 전개나 내용 자체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조반니의 마지막 독백이 좀 거슬리기는 했어도, 특별히 '희망' 이나 '꿈' 등 동화의 진부한 소재를 강조하지 않고 이 정도 이야기를 만든 것이 미야자와 겐지의 역량이었을 것이다-물론 이것도 2차 창작품이라 원작과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 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권말에는 그림을 그린 카타야마 슈가 미야자와 겐지의 고향인 모리오카를 탐방하고 그린 '이와테도버 기행' 이 부록으로 붙어 있다. 이것도 원작자의 활동 배경 등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고슈 편에서 트로이메라이(Träumerei)의 작곡자를 '로맨틱 슈만(원래는 로베르트 슈만)' 이라고 표기한 몇몇 엄청난 오역 사례가 걸리고, 무엇보다 헌책방 외에서는 찾기 힘든 절판본이라는 점이다. 한국 만화책 유통 구조의 괴상함이 다시 느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