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책 보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는 것은 주로 만화책이나 잡지 뿐이고-그나마 헌책방의 도움을 많이 받는 편임-나머지는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읽고 오는 소위 'only read' 족에 속할 것이다.
물론 문화상품권 같은 것이 생기면 책 사는 것에 투자하기도 하는데, 그 중 22000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아직도 보류중인 책이 있다. 하지만 꼭 가격 때문은 아니었고, 책의 진실성이 요즘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의 책은 '증언(Testimony)' 이라는 제목인데, 구 소련의 3대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었던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가 말년에 볼코프(Solomon Volkov)라는 후배 음악학도에게 구술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너무도 민감한 소련 체제 비판을 담고 있어서 쇼스타코비치 사후에 서방에서 출간되었고, 출간 당시 많은 러시아 음악학자들이 이 책의 진실성을 놓고 설전을 벌인 바 있었다. 국내에서도 이번이 첫 출간은 아니었고,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하면 아주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 어느 일보사에서 조악하기는 했지만 이미 한글 번역판을 1980년대에 낸 바 있었다.
물론 쇼스타코비치가 평생 존경했다는 스승 글라주노프(Alexander Glazunov)에 대한 내용이라던가, 아니면 소련 시절 지독한 어용으로 유명했던 흐렌니코프(Tikhon Khrennikov) 같은 작곡가에 대한 내용은 나도 공감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동료였던 프로코피에프(Sergei Prokofiev)라던가 '망명파' 에 속하는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에 대해서는 거의 악의적으로 써놓고 있어서 의문이 가는 점이 많았다. 또한 1940년대 그가 휘말린 '형식주의 논쟁' 을 언급한 대목은 너무나 자기 변호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의 말미에는 한국어 번역자가 쓴 일종의 에필로그가 쓰여져 있었는데, 물론 책의 진실성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그 '진실성' 에 대해 언급한 대목은 지나친 편파성이 참 거슬렸다. 이 책이 상당 부분 날조되어 있다는 주장은 단지 소련 당국의 선전에 지나지 않으며, 요즘에는 거의 언급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내 음악잡지에서 이 책이 나온 지 1년 정도 지나서 프로코피에프 서거 50주년(올해) 특집 기사를 실으면서 이 책에 나온 프로코피에프 비판을 인용했다. 그리고 그 서두에는 '볼코프가 책의 진실성을 해명한 자료가 너무나도 부실해서 더욱 의구심이 간다' 라는 넋두리를 달고 있는데, 그럼 볼코프의 저 책은 어느 정도가 진실일까?
솔직히 따져보면 쇼스타코비치가 정부에 '개긴' 적은 있기는 있었다. 유태인 문제를 쉬쉬하던 소련 당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교향곡 제 13번 '바비 야르(Babi Yar)' 가 그랬고, 특별히 정치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교향곡 제 9번이나 10번도 마찬가지로 논쟁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과 교향곡 제 9번으로 두 번의 격렬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스탈린에 대한 상찬으로 끝맺는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스탈린 사후 가사가 일부 개작됨)', 소비에트 혁명을 그린 교향곡 제 12번 '1917년', 그리고 수많은 영화 음악은 오히려 당과 정부에 영합하는 작품들이다. 그는 또한 스탈린상, 레닌상 등의 여러 영예와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 등의 칭호를 받았고 소비에트 평의회 부위원장 직책 또한 가지고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양면성이 작품에도 나타난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작품들을 놓고 과연 그가 '반체제 인사' 였는지, 아니면 '어용 작곡가' 였나를 따지는 것이다.
사후 30년도 아직 되지 않은 현대사의 인물을 평가하는 작업은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폐쇄적인 공산 국가에서 생애를 보낸 사람이니, 이에 관한 자료를 발굴하는 일도 그럴 것이고. 하지만 그러한 평가 작업과 별도로 이러저러한 극단의 의견이 난무한다면 그것도 참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저 책을 살지 말지 고민 중인 것이고.
(네이버 블로그, 2003.11.26)
물론 문화상품권 같은 것이 생기면 책 사는 것에 투자하기도 하는데, 그 중 22000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아직도 보류중인 책이 있다. 하지만 꼭 가격 때문은 아니었고, 책의 진실성이 요즘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의 책은 '증언(Testimony)' 이라는 제목인데, 구 소련의 3대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었던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가 말년에 볼코프(Solomon Volkov)라는 후배 음악학도에게 구술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너무도 민감한 소련 체제 비판을 담고 있어서 쇼스타코비치 사후에 서방에서 출간되었고, 출간 당시 많은 러시아 음악학자들이 이 책의 진실성을 놓고 설전을 벌인 바 있었다. 국내에서도 이번이 첫 출간은 아니었고,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하면 아주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 어느 일보사에서 조악하기는 했지만 이미 한글 번역판을 1980년대에 낸 바 있었다.
물론 쇼스타코비치가 평생 존경했다는 스승 글라주노프(Alexander Glazunov)에 대한 내용이라던가, 아니면 소련 시절 지독한 어용으로 유명했던 흐렌니코프(Tikhon Khrennikov) 같은 작곡가에 대한 내용은 나도 공감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동료였던 프로코피에프(Sergei Prokofiev)라던가 '망명파' 에 속하는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에 대해서는 거의 악의적으로 써놓고 있어서 의문이 가는 점이 많았다. 또한 1940년대 그가 휘말린 '형식주의 논쟁' 을 언급한 대목은 너무나 자기 변호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의 말미에는 한국어 번역자가 쓴 일종의 에필로그가 쓰여져 있었는데, 물론 책의 진실성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그 '진실성' 에 대해 언급한 대목은 지나친 편파성이 참 거슬렸다. 이 책이 상당 부분 날조되어 있다는 주장은 단지 소련 당국의 선전에 지나지 않으며, 요즘에는 거의 언급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내 음악잡지에서 이 책이 나온 지 1년 정도 지나서 프로코피에프 서거 50주년(올해) 특집 기사를 실으면서 이 책에 나온 프로코피에프 비판을 인용했다. 그리고 그 서두에는 '볼코프가 책의 진실성을 해명한 자료가 너무나도 부실해서 더욱 의구심이 간다' 라는 넋두리를 달고 있는데, 그럼 볼코프의 저 책은 어느 정도가 진실일까?
솔직히 따져보면 쇼스타코비치가 정부에 '개긴' 적은 있기는 있었다. 유태인 문제를 쉬쉬하던 소련 당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교향곡 제 13번 '바비 야르(Babi Yar)' 가 그랬고, 특별히 정치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교향곡 제 9번이나 10번도 마찬가지로 논쟁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과 교향곡 제 9번으로 두 번의 격렬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스탈린에 대한 상찬으로 끝맺는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스탈린 사후 가사가 일부 개작됨)', 소비에트 혁명을 그린 교향곡 제 12번 '1917년', 그리고 수많은 영화 음악은 오히려 당과 정부에 영합하는 작품들이다. 그는 또한 스탈린상, 레닌상 등의 여러 영예와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 등의 칭호를 받았고 소비에트 평의회 부위원장 직책 또한 가지고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양면성이 작품에도 나타난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작품들을 놓고 과연 그가 '반체제 인사' 였는지, 아니면 '어용 작곡가' 였나를 따지는 것이다.
사후 30년도 아직 되지 않은 현대사의 인물을 평가하는 작업은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폐쇄적인 공산 국가에서 생애를 보낸 사람이니, 이에 관한 자료를 발굴하는 일도 그럴 것이고. 하지만 그러한 평가 작업과 별도로 이러저러한 극단의 의견이 난무한다면 그것도 참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저 책을 살지 말지 고민 중인 것이고.
(네이버 블로그, 2003.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