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있어서, 아무래도 그 쪽의 역사나 풍습, 지리가 수업 시간에도 자주 언급되곤 한다. 실제로 문법 중에는 한국어로 그냥 '전화하다' 로 되는 개념이, 독일어에서는 '누구를 전화로 불러내다(anrufen/rufen ~an)' 라는 개념이 돼서 그 쪽의 사고 관념을 모르면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것도 있고.
독일 하면 특히 같은 분단 국가의 처지였다고 통일을 이룩한 나라로 많이 기억되고 있는데, 다만 그 통일이 서독에 의한 일방적이다시피 한 흡수통일이었기 때문에 그 부작용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대한 교훈이나 반면교사로도 활용되는 것 같고.
아무튼 그 때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몇 개 구역의 기념물이나 미술 전시용-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으로 보존된 것을 제외하면 벽돌 조각이 되어 관광 상품으로 팔리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어 있는 상태다. 독일 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장벽 일부가 건너가 세워져 있는 경우도 있는데, 한 일본인이 만든 장벽 관련 사이트의 목록을 보면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다. (클릭)
완전한 목록은 아니지만, 아시아 쪽을 보면 일본에 다섯 군데 보존되어 있고 한국에 한 군데가 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서울 시민이면 어렵잖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바로 종로~청계천의 피아노거리 인근이고(예전에 쁘렝땅백화점 건물이었던 곳의 한켠이기도 하다).
이번에 처음 안 사실도 아니고, 이런저런 일로 많이 지나가기도 했던 곳이기는 하지만 수업을 듣고 뭔가 삘이 꽂혀서 굳이 사진을 담기 위해 찾아가봤다;
독일에서 '수입된' 장벽은 세 토막 짜리인데, 일부 파손되기는 했지만 장벽의 구조나 크기, 너비를 가늠하기에 적절한 상태다. 한국인들이 한 낙서도 눈에 띄는데, 단순한 반달리즘인지 아니면 원체 낙서용으로 활용되었던 장벽에 대한 오마주인지는 개개인의 판단으로 넘긴다.
장벽을 들여오고 소광장을 조성한 연유가 적힌 동판. 설명은 꽤 자세하게 되어 있어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는데, 다만 장벽의 설치 연도에 관해서는 좀 더 보족할 필요가 있다.
장벽 자체가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발터 울브리히트가 동독 실권자였던 1961년이 맞지만, 저 장벽은 그 뒤로도 탈출자들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보완되고 재건축된 바 있다. 그 중 1976년에 가장 최종적인 모습으로 개량된 '제 4세대' 형태의 것이 저 장벽이다. (자세한 설명은 위에도 언급한 일본인의 장벽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클릭)
장벽의 옆면 모습. 바닥에 길쭉하게 늘어나와 있는 부분이 동독 방면이었다. 왼편에는 베를린 시에서 쓰는 것과 같은 모델의 가로등 하나와 파란 바탕의 곰 상이 있는데, 베를린의 상징 동물이 바로 곰이다. (분단 때도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모두 디자인은 달랐지만, 시 공식 문장에 곰이 새겨져 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곰 상. 아이들이 타고놀기 좋은 '청소년곰(???)' 정도의 크기라 훼손이 걱정되는데, 아직까지 큰 흠집은 없는 상태다. 곰의 왼편에는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이, 오른편에는 서울의 상징인 숭례문이 그려져 있는데, 그나마 숭례문은 방화범의 손에 잿더미가 된 터라 더 안습이고.
베를린 장벽이 과거 분단의 상징이었다면, 현재 분단의 상징은 당연히 휴전선일 것이다. 휴전선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민통선 인근이기는 하지만, 임진강 근처에 자리잡은 임진각은 지금도 실향민들이나 새터민들의 각별한 장소가 되어 있다. 다만 이번에 간 목적은 그런 현실을 되짚는 것보다는 그저 경의선이 복선전철화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CDC(통근형 디젤 동차)를 타보자는 것 뿐이었고.
그래서 임진각 사진은 찍지 않았는데, 다만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하면서 옥상에 설치되어 있던 유료 망원경이 경기도와 파주시의 지원으로 무료로 바뀌었다는 것은 적어볼 만한 희소식이다. 물론 거기서 북한이 보이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민간인이 쉽사리 접근하기 힘든 임진강 유역의 모습을 보고 싶은 이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겠고.
하지만 그렇게만 갔다오기엔 좀 그래서, 자유의 다리 옆의 분수가 가동되는 모습 한 장만 찍어봤다. 특히 가운데 분수의 물줄기는 굉장히 세게 뿜어져 나왔는데, 바람이 불 때는 임진각 옥상에서까지 그 물방울을 맞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됐으니 다시 서울로...가 아니라, 그 동안 몇 차례 임진각을 갔다오면서 항상 눈에 밟혔던 문제의 '평화공원 협궤열차' 를 미친척 하고 타보기로 결정했다. 경의선 전구간의 운임이 편도 1400원인 상황에서, 그보다 훨씬 짧은 영업 거리의 여흥용 열차를 3000원 주고 탄다는 것이 항상 수전노의 경제 관념에서 이해가 안되던 상황이었고.
하지만 이 때 아니면 언제 타보랴는 생각으로 표를 끊고 기다렸다. 전형적인 놀이공원용 표 디자인인 승차권. 어린이날 전날이기도 해서 파주시나 기타 지역 유치원생들이 단체로 소풍을 온 모습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만원 열차로 운행하고 있었다.
승강장 모습. 무척이나 단순한데, 그래도 사람보다 큰 탈것이라 운행 구간에는 차단기가 내려오는 건널목도 수 군데 설치해 놓았다. 철로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식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저 좋다고 철로 위에서 간지내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 나이 헛드신 분들이 보여서 꼴사납기도 했고.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들어오는, 정말로 작은 크기의 협궤열차. 겉보기에는 증기기관차처럼 보이는데, 물론 아니고 대충 보니 영국제 디젤기관차라고 표기되어 있는 듯 했다. 기관차 뒤에는 장식용으로 달아놓은 석탄차와 객차 너댓 량 정도가 배치되어 있었다.
객차라고는 해도, 사방이 막힌 형태가 아니라 서울대공원의 '코끼리열차' 처럼 무개차에 지붕만 덧댄 식의 구조다. 지붕 위에는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어서, 열차가 지나는 기념물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오도록 되어 있다.
한 절반 쯤 와서 크게 한 바퀴 도는 열차. 철로 오른쪽에는 버마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 희생자들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추모비를 끼고 돈 뒤에는 새로 가설된 경의선 철로의 옆을 나란히 달리는데, 안내방송으로는 지금 협궤열차가 다니는 선로 자리가 옛 경의선 선로 자리라고 했다.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관광용으로 운행하는 열차라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은데,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걷는 정도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수인선에 협궤열차가 다니던 시절을 살았음에도 타보지 못한 것을 후회한 적도 있어서, 그것보다는 애들 장난 수준이지만 어쨌든 협궤가 운행되는 것이 계속 신경쓰인 것이었고.
이렇게 해서 아마 경의선 복선전철 개통 때까지는 마지막이 될 듯한 임진각 방문을 끝냈는데, 다만 한 번 더 갈 일도 있을 것 같다. 자유의 다리 옆에 쳐져 있는 민통선 철책 바로 앞에 증기기관차-평화공원 옆에 있는 것을 옮긴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기종이 하나 더 있는지는 모르겠다-를 보존하기 위한 시설 공사가 한창인데, 완공되면 또 궁금증이 도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