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부산지하철 전구간을 타볼 차례였다. 미리 알아본 바로는, 부산지하철은 모두 세 개 노선에 총연장 100km 가까이 되는 꽤 큰 규모였다. (그 외에도 통근용 복선전철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동해남부선이나 인근 김해시와 연결되는 김해 경전철, 3호선의 지선 개념으로 건설되고 있는 반송선까지 포함하면 더 커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리저리 생각해본 결과, 그 날 모든 구간을 다 타본다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부득이 1호선과 3호선만 타보기로 했고. 그리고 부산대학앞역에 돌아와서 뭔가 중요한 것을 자동발매기에서 발견했는데, 바로 '1일권' 의 존재였다.
1일권은 3500원이라는 꽤 고가의 승차권이지만, 일단 그날 발매받으면 부산지하철 전구간을 횟수와 요금 제한 없이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다는 혜택이 있었다. 노포동에서 미리 끊으면 됐을 것을. 아무튼 뒤늦게나마 1일권을 구입해 싸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부산지하철의 이용객은 내가 예상했던 것만큼 많지는 않았다. 서면이나 연산동 등 환승역을 제외하면 크게 붐비는 일이 없었고. 1호선 전동차의 경우 특이하게 출입문이 세 개만 있는 구조였는데, 그래서 좌석수가 훨씬 많아 보였다(서울지하철이나 부산의 다른 노선 전동차의 경우 네 개임). 그리고 좌석 위의 선반도 서울처럼 봉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물망처럼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곳도 노사 간의 갈등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고, 특히 반송선의 경우 무인운영체계를 적극 도입한다는 교통공사측의 계획에 노동조합이 반발하고 있었다. 다만 부산지하철의 경우 특이하게 역마다 노동조합 전용 게시판이 비치되어 있었고, 이 곳에 붙은 게시물은 사측에서 강제로 제거하거나 훼손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위 짤방이 노동조합 측에서 붙여놓은 반송선 무인화 반대 만화 포스터다. 이후 서울로 돌아오기 직전에 명륜동역에서 전단지로 비치한 것이 보여서 두 장 가량 집어왔고. 사진은 못찍었지만, 사측도 여기에 대응해 전동차내 모니터를 통해 파리 지하철의 예를 들며 무인화 운전의 경제성과 당위성을 설명하는 내용의 영상을 방송하고 있었다.
가장 짧은 구간인 3호선의 경우, 사직구장을 거쳐가는 노선이라 그런지 다른 노선보다는 사람이 훨씬 많은 편이었다. 특히 롯데 자이언츠 홈경기가 있는 날은 미어터진다고 하는데, 역시 '롯데 까면 사살당한다는(???)'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세븐일레븐이나 롯데리아 등 롯데 계열의 점포도 다른 도시보다 많아 보였다.)
하지만 3호선이 개인적으로 다른 노선보다 더 매력적이었던 것은, 바로 낙동강을 건너가는 유일한 노선이라는 점이었다. 구포-강서구청 사이의 구간이었는데, 하류 쪽이라 그런지 거의 바다를 건너가는 듯한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3호선 서쪽 끝 종착역인 대저역. 맞은편에 한창 다른 역이 지어지고 있었는데, 바로 김해경전철용 환승역이었다. 부산의 주변 도시들인 양산과 김해, 그보다는 좀 더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마산과 창원, 진해도 꽤 교통난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다소 뒤늦은 느낌이지만 경전철과 광역전철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다시 되돌아가던 도중에 구포역에서 잠시 내렸다. 낙동강 옆에 자리잡은 구포역 역사에는 무료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다만 개찰구 밖이라 표를 내고 나가야 볼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1일권이 무척 유용했다. 부산지하철 역들은 방향을 잘못 알고 들어갔을 때 반대편으로 건너가 탈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때마침 해넘이 때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풍경은 굉장히 멋있는 모습이었다. 저화질 폰카로만 사진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웠고. 맨 마지막 사진의 쌍안경은 두 개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비치되어 있었다.
대합실의 광고판에는 부산 시립 교향악단의 연주회 포스터도 붙어 있었다. 공연이 마침 이튿날이었는데, 이거까지 보고 올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부산시향은 올해 러시아 지휘자 알렉산드르 아니시모프의 후임으로 중국 지휘자인 리 신차오를 수석지휘자로 초빙했는데, 아니시모프가 악단 조련과 운영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먹튀' 로 비판받았던 터라 30대 중국인 지휘자의 기용이 꽤 파격적인 인사였다고 하고 있고.
구포역에서 짧은 망중한을 보낸 뒤에는 만덕역에 가보기로 했다. 만덕역은 한국 지하철역들 중 가장 땅속 깊은 곳(65m)에 자리잡아 유명한데, 아시아에서 지하철망이 발달되어 있기로 유명한 일본에도 이 만큼 깊은 곳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지나쳐 가거나, 플랫폼에 내리거나 할 때는 전혀 그런 낌새를 느끼지 못하기 일쑤고. 하지만 진정한 충공깽은 나가는 곳을 찾을 때부터 시작된다.
만덕역 플랫폼 중간에는 마치 대기업 사옥처럼 엘리베이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대개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만 이용하도록 설치되지만 여기는 좀 상황이 다르다. 아무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아래 짤방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 같다;
사진이 볍신같아 잘 안보이지만, 안내도를 보면 '승강장(지하 9층)' 이라고 되어 있다(!!!). 승강장에서 대합실까지 무려 8층 높이의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이외에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로도 올라갈 수 있다고 되어 있었지만 계단을 이용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모두 가동이 중단되어 있었고.
실제로 엘리베이터를 타 보니, 이 역이 얼마나 깊이 지어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만덕역 위치가 거의 산중턱이나 마찬가지였던 탓에, 지하철 터널과의 깊이도 더 벌어져 이렇게 기록적인 결과가 나온 거였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 만덕역에서 미남역 사이의 거리는 부산지하철 구간 중 가장 길다는 기록(3.3km)도 가지고 있다.
이렇게 1호선과 3호선을 다 돌아보고 나니 오후 8시가 훌쩍 넘은 상황이었다. 2호선과 나머지 목적지는 내일 돌아보기로 하고, 그 다음 목표인 저녁식사를 위해 대연동으로 이동했다. (번외편 격으로 '식충잡설' 카테고리에 따로 포스팅할 예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