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탑골공원 유진식당 포스팅에서 공언한(?) 대로, 인근의 다른 음식점에서 닭을 두 차례 먹었다. 복날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비가 오건 아니던 무더운 요즘 날씨에는 닭이건 개건 뭐건 간에 보양식을 찾게 되는 본능은 내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진식당에서 공원 담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식당 몇 개가 줄줄이 나오는데, 역시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가게들이고. 그 중에 '풍년집' 이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처음 먹었을 때는 거의 밤 9시가 됐을 때였고, 야간에는 플래시를 터뜨려도 100% 족망하는 폰카의 특성상 좀 밝을 때 먹은 두 번째 짤방들이 나은 것 같아 포스팅에 붙여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마치고 교보문고에 들른 뒤 찾았는데, 두 번 다 가게 안이 아닌 길가의 테이블에서 먹었다.
탑골공원 음식점들 중 바깥 테이블을 이용하는 손님들은 거의 예외없이 선불로 음식값이나 술값을 지불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눈뜨고 '먹튀' 를 당할 수는 없을 테니. 아무튼 풍년집의 메뉴도 굉장히 싼 편인데, 내가 두 차례 먹은 닭한마리의 경우 3500원이다. (그나마 물가인상 전에는 3000원이었다고 한다.)
돈을 지불하고 더위와 갈증을 식히기 위해 물을 몇 차례나 따라먹으면서, 그리고 이미 술이 얼큰해져 큰소리로 잡담을 나누고 계신 어르신들의 모습을 힐끔힐끔 보면서 기다렸다. 계속 강조하는 것이지만, 탑골공원 인근 식당들은 절대 다수가 젊은 커플부대원이나 청결과 조용함을 음식점 제 1의 미덕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매우 적합치 않은 곳이다. 특히 옆자리에서 술판이 벌어져서 언짢다고 한다면, 이미 당신은 '배패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닭이 많이 나가는 탓에 다소 기다렸다가 받은 음식상. 뚝배기에 펄펄 끓여 내오는 닭한마리와 공기밥, 고기를 덜어먹거나 소금 종지로 쓰라고 나오는 것 같은 플라스틱 그릇 두 개, 배추김치와 마늘장아찌-첫 번째 갔을 때는 무채무침이었음-라는 소박한 모습이다.
가격이 싼 탓에 작은 닭을 쓸 것이라는 예상은 확실히 틀렸다. 나름 튼실한 닭 한마리가 뜨거운 국물에 푹 잠겨 나오는데, 물론 삼계탕처럼 찹쌀이나 대추, 밤, 인삼 같은 사치스러운 속재료같은 것은 없고 그냥 닭과 송송 썬 파 정도가 전부다.
뼈있는 고기나 생선은 한 번 먹게 되면 주위에서 싸움판이 벌어지건 어쨌던 간에 정신없이 뜯어제끼는 성격이 오랜만에 발휘되었다. (실제로 두 번째 갔을 때 만취한 어르신들이 꽤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 연출됐는데, 이미 '뜯기교' 에 경도된 내게는 그저 BG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양손과 입가를 닭국물로 범벅을 해가며 두 번 다 끝까지 먹어치웠는데, 이렇게 해서 '복날 닭' 에 대한 미련을 후련하게 떨쳐버릴 수 있었다. 닭한마리 외에 풍년집에서 유명한 메뉴는 뼈다귀콩비지라고 하는데, 이것도 지금은 3000원이라는 가격이지만 예전에는 훨씬 쌌다고 한다.
사상의학에서 태음인은 천성적으로 콩음식을 좋아한다고 교양 한의학 시간에 배웠는데, 실제로 배추김치 넣고 끓인 콩비지탕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인 음식이기도 하고. (다만 저 메뉴는 그냥 콩비지에 돼지등뼈 몇 조각만 넣고 끓인 간단한 음식이라고 한다.) 아무튼 닭한마리나 콩비지 외에도 이런저런 식사나 안주들을 3000~5000원 선에서 대부분 해결할 수 있어서, 싼 거라면 시끄럽던 위생이 걸리건 별 상관없는 내게는 지상낙원으로 남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