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줄 알면서도 안가왔던 낙원상가/탑골공원 인근의 음식점 순례가 세 번째 장소까지 이를 줄이야. 서플 끝나고 나니 오랜만에(???) 지갑이 개털린 것을 보고 넋이 잠시 나갔는데, 게다가 집에 밥까지 없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그럼 할 수 없지' 라는 심정으로 종로3가역까지 가서 내렸다.
탑골공원 서쪽을 끼고 걷다 보면 낙원상가 건물이 나오는데, 그 건물 오른쪽에는 악기상-주로 기타-이나 구멍가게도 있지만 돼지머릿고기나 순대, 순대국밥 등을 파는 음식점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어차피 술마시러 가지는 않으니 국밥만 노렸는데, 가격대는 대체로 3000~3500원 선이다.
3000원에 파는 가게는 구 필름포럼 매표소 자리에서 가까운 두 곳인데, '허리우드' 와 '소나무' 라는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다. 그 중에 '소나무' 엘 들어가 봤다.
큰 건물이 가리고 있기 때문인지, 가게 앞보다는 이렇게 옆에 간판을 대놓은 가게들이 대다수였다. 대개 공간이 크지 않기 때문인지 가게 앞에 테이블을 내놓고 장사하는 집들도 많고.
메뉴판. 순대국밥의 경우 예전에는 2500원이었던 것이 물가폭등 후 3000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곳은 내가 아는 한 서울에서 흔치않은 것은 여전하고.
국밥을 시키고 앉으니 재빨리 위와 같은 찬거리와 공기밥이 따라나왔다. 전형적인 '국밥집 셋팅' 이었는데, 양파의 경우 중국집에서처럼 가로썰이가 아니라 세로썰이한 것으로 나왔다.
그리고 좀 기다리고 있으니 무시무시하게 펄펄끓는 채로 뚝배기에 담겨나온 순대국밥. 고양이혀인 내게 있어서, 이것만큼 두려운 식탁 풍경은 '개인적 오신채(오이, 가지, 호박, 생당근, 감)' 가 잔뜩 올라앉은 모습 외에는 없다.
먹는데 무진장 오래 걸리겠구나 싶어서 조심스레 밥을 말고 가능한한 빨리 식으라고 조금씩 휘저었는데, 위 두 짤방에서도 보이는 머릿고기나 곱창, 순대 같은 '동물성' 재료 외에 특이하게 반찬으로 따라나오는 모양의 양파와 마늘까지 같이 들어가 있었다. (깻잎이나 송송 썬 파는 공통된 셋팅이지만) 크게 언짢은 것은 아니었지만, 국밥에 곁들여먹는 양파는 생으로 된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좀 놀랐고.
후후 불어 식혀가며 떠넣느라 좀 고생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맛이었다. 비계가 많이 붙은 머릿고기를 쓴 국밥이라는 특성상 다소 느끼하기는 했지만, 깍두기나 김치, 양파 등으로 조금씩 입을 가셔가며 그릇을 뚝딱 비웠다.
가게 분위기는 일요일 오후라는 시간상 특성도 있기 때문인지 다소 시끄러웠다. (이건 늘상 강조하지만 어르신 분들이 많이 드나드는 가게들의 태생적 한계다.) 다른 곳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소주 반 병' 이나 '소주 한 잔' 으로 술을 주문하는 소리도 들려왔고, 좀 까다로운 입맛인 분은 '깍국(깍두기 국물)' 이나 이런저런 양념거리를 추가로 내달라고 하는 모습도 보였고. 심지어 외상까지 하는 단골들도 있었는데, 나같은 '햇병아리' 가 그랬으면 어땠으려나.
뱀다리 겸 뱀짤: 서플에서 극강의 염장 포옹을 시전하며 솔로부대 준장인 본인을 압박 중인 커플부대원들(좌: lumi 화백/우: A셀 작가). 조기전역의 욕망이 불끈불끈 끓어올랐지만, 펄펄끓는 국도 제대로 못먹는 현실에 끓어봤자 어쩌겠냐는 식으로 결국 체념.
...내가 저 커플을 보고 느끼는 건데, 존나 방구석 폐인이면 안될 거 같애. 근데 난 계속 폐인질 하잖아. 난 안될거야, 아마...lll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