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만큼 화교가 살기 힘든 곳은 없다고 하는데, 남북한 어디고 간에 해당 국가의 국적을 가지지 않는 한 이런저런 제한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해외의 차이나타운들이 범죄의 온상으로 종종 보도되는 현실과 '중화주의' 에 대한 반감 등 여러 사회적인 문제가 얽혀 있어서, 함부로 옳다 그르다 하기는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 유일하게 '차이나타운' 이라고 할 만한 곳은 인천에 있는 곳 하나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그 규모로 봤을 때 미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의 그것과는 비교하기 뭣할 정도로 작다고들 하던데, 정말 그런지 체험해보기 위해 오랜만에 인천역으로 향했다.
역에 딱 하나밖에 없는 출구를 나오면 횡단보도가 보이고, 그 건너편에 중국풍의 패루가 보인다. 들어가면 그 곳이 차이나타운.
패루를 지나서 오른쪽 보도에 있는 안내판. 하지만 정작 찾는 곳은 표시되어 있지 않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행정구역상 중구 선린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화교들만 거주한 곳은 아니었고, 가까이에 일본 조계지도 있어서 중국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공존하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소이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현대식 건물들에 밀려 모습이 많이 퇴색했지만, 약간 이상하나마 복원시킨 건물들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었다. 위 짤방의 약간 괴이한 건물은 선린동 주민센터인데, 차이나타운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옥상에 기와지붕 구조물을 올려 지어놓았다.
인천역 근처에서 들어가는 차이나타운 골목은 오르막을 약 80미터쯤 올라가야 하는데, 일단 언덕 끝배기에 가면 '공화춘' 을 비롯한 큰 건물에 입점한 중화요리점들이 보인다. 하지만 저 짤방에 나오는 공화춘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처음 짜장면을 만들었다는 그 오리지널 점포는 아니다. 그리고 차이나타운 내의 안내문이나 홍보물에도 '공화춘이 자장면의 원조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는 식으로 적혀 있고.
아무튼 그 공화춘이 보이자마자 오른쪽으로 난 길을 홱 돌았다. 마찬가지로 양편에는 이런저런 중화요리점들이 보였고, 그 사이에는모에요소치파오를 비롯한 중국 잡화를 파는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인도의 난과 비슷하게 만두를 화덕에 붙여 굽는 집도 있었는데, 최근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에 소개됐는지 평일 오후라는 시간임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찾는 곳은 화교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인 '인천화교중산학교' 의 맞은편에 있다고 되어 있었다. (단,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차이나타운 내를 한참 돌아다니다가 한 안내판에 표기된 것을 보고 알아차렸다.) 차이나타운을 거니는 많은 학생들도 외모와 교복 디자인은 한국의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학생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중국어라는 점에서 학교가 멀지않은 곳에 있음을 알아챘다.
아까 들어갔다는 골목을 걷다 보면, 왼편에 '대창반점' 이라는 중화요릿집이 보이면서 그 왼쪽으로 골목이 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골목의 담벼락에 친절하게 내가 찾던 가게를 알리는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골목으로 들어가 오르막을 오른 뒤 다시 내리막을 걷다 보니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화교 아이들이 골목 왼편의 계단에서 무리지어 내려오고 있었다. 바로 인천화교중산학교. 그리고 그 계단 바로 오른편에 내가 찾던 중국과자 전문점인 '복래춘(復來春)' 이 있었다.
복래춘은 흔히 커다란 모양새에 비해 안에는 든 것이 없는 '공갈빵' 으로 유명한 가게라고 한다. 하지만 공갈빵이건 중국식 호떡이던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심지어 기름에 지지는 한국식 호떡도 좋아하지 않는다. 단 것은 거의 좋아하지만, 감이랑 호떡은 별로 입에 안맞는 듯하다-, 공갈빵과 함께 이 집의 유명 상품으로 꼽히는 월병을 사러 들어갔다.
가게 앞에는 도향촌처럼 파는 과자들의 견본들을 창가에 진열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모형인 도향촌과 달리, 명절 때만 나오는 듯한 커다란 호빵 모양의 것들을 빼고는 진짜 과자들을 진열하고 있던 것이 차이점.
진열대에는 대략 두 종류의 월병과 호두 넣은 쿠키인 호도수, 중국식 강정인 부영고(도향촌에서는 '부용고' 라고 하는 것), 참깨 쿠키인 지마수, '계란과자' 라고는 되어 있지만 같은 이름의 시판품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듯한 쿠키같은 모양의 과자, 공갈빵, 꽈배기, 막과자, 포춘쿠키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중국인들이 아침에 달게 만든 콩국물에 찍어먹는 츄러스 비슷한 튀김과자인 '유탸오' 도 메뉴판에 있는 것을 봐서는, 그것도 파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메뉴판만 있고 보이지는 않았다. 다 나간 듯.)
대개 예상한 품목들이었는데, 가격은 도향촌보다 좀 더 쌌다. 월병은 두 종류 모두 개당 1000원이었고, 두 개나 네 개, 여섯 개 등 다양한 갯수별로 비닐봉지에 포장해놓고 있었다. 부영고나 여타 과자들도 다양한 크기로 썰어담아 가격대별로 늘어놓고 있었고.
일단 뭘 살지 고민하다가 팥고물 넣은 월병과 흰 고물에 견과류와 말린 과일 섞은 소를 넣은 팔보월병 한 개씩, 세개 들이로 포장된 호도수, 일곱개 들이로 포장된 계란과자, 약간 작은 크기로 썰어담은 부영고를 골랐다. (가격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대략 다 합쳐서 5100원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구입한 중국과자 봉지를 들고 입이 헤벌쭉해져서 가게를 나왔는데, 점심도 안먹고 온 탓에 갑자기 허기가 엄습했다. 하지만 수중에 남은 돈이 6000원 정도라, 함부로 돈을 쓰기가 뭣했다. 문제는 그런 상태였음에도 거의 30분 가까이 차이나타운 내를 계속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보고다닌다고 체력을 더 떨어뜨렸다는 것이었고.
아무튼 이제는 참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수많은 중화요릿집 중에 어디로 갈까 생각을 하다가 한 곳을 잡아 들어갔다(어딘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자금성' 맞은편이었던 것 같은데...). 거의 모든 요릿집에는 저렇게 인천세계도시축전 공식 캐릭터가 등장하는 '자장면 특색음식점' 이라는 팻말이 붙어 '원조 짜장면' 을 찾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메뉴인 짜장면 곱배기를 시키고, 기다리는 와중에 사온 과자들의 짤방을 만들기 위해 폰카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왼쪽이 단팥소넣은 월병, 오른쪽은 팔보월병. 집에 와서 먹어보니 전자는 약간 거친 질감의 단팥빵 맛이었고, 후자는 도향촌의 '산동팔보' 와 구성물과 맛이 대동소이했다. 하지만 월병 표면은 만쥬 느낌의 도향촌 것과 달리 쿠키처럼 바삭거리는 식감이었다. 결론은 둘 다 만족.
왼쪽은 호도수, 오른쪽은 계란과자. 호도수도 도향촌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좀 더 딱딱했다. 특이한 이름과 모양새 때문에 산 계란과자는 막상 먹어보니 '달걀맛이 나는 달달한 건빵' 정도. 좀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기대했지만 좀 아니었다. 하지만 차와 함께 가볍게 한두 개 먹기에는 좋은 과자인 듯.
마지막으로 부영고. 도향촌 과자와 비교했을 때 가장 맛에 차이가 많이 나는 과자였다. 도향촌 것이 투박한 모양새에 카스테라맛이라는 아방가르드적인(?????) 조화로 나를 사로잡은 것에 비하면, 복래춘의 것은 한국의 강정에 가까운 맛이었다. 그렇다고 실망스러웠다는 것은 아니었고, 도향촌과 달리 아몬드나 건포도, 참깨 등이 토핑되고 단맛보다는 고소한 맛이 더 강한 것이 차이점이자 나름대로의 장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둘 다 기름에 튀긴 과자인 만큼, 많이 먹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따른다.)
약간 이질적이었던 계란과자나 호도수를 제외하면 월병 두 종류와 부영고가 착한 가격과 맛 때문에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다만 거리가 멀다 보니, 차비까지 계산에 넣어보면 그렇게 싸다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이 문제고. OTL 물론 인천시민이라면 해당되지 않을 문제이기는 하다.
오히려 나같이 중국과자 등 다소 레어한 아이템을 목표로 차이나타운을 찾는 관광객들보다는, 짜장면이나 만두를 비롯한 대중적인 중화요리를 먹으러 오는 관광객들이 훨씬 많아보였다. 짤방용 과자 사진들을 찍고 나니 짜장면이 도착했는데, 한 가지 중요한 요청 사항을 까먹은 것을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로 '오이채는 빼주세요' 라는 요구 사항. 사실 내가 드나드는 중국집들은 짜장면 위에 오이채를 올리지 않는 곳이라 안심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안심이 방심이 되어버렸다. 그릇이 놓이자마자 일단 표정관리부터 하고 오이채를 죄다 골라내 양파그릇에 옮겨놓은 뒤에야 짤방을 만들 수 있었다. (오이채 지못미...???)
그렇게 하고 먹은 짜장면 맛은...그냥 그랬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짜장면 맛 그대로. 돈이 더 됐다면 속는 셈 치고 '인천정통자장(혹은 향토자장면)' 을 시킬 수 있었겠지만, 이미 지갑의 사정은 현시창이었고. 아무튼 오이채 빼고는 단무지와 양파 모두 해치우고 음식값을 낸 뒤 가게를 빠져나왔다.
차이나타운 전체에 대한 소감은...특별한 풍경이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점 정도? 화교들의 생활 터전이라기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관광 명소라는 인상이 강해서 좀 이질적으로 비춰졌다. 그마저도 밋밋한 현대식 건물들이 빈칸을 채우는 모습이라 작고 인위적인 모습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어찌 보면 현재 한국 화교들의 위치와 그들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을 약간 차갑게 느낄 수 있는 곳일 지도. 아무튼 복래춘 월병과 부영고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뱀다리 1: 차이나타운에서는 일반 잡화점 등지에서도 월병을 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다만 복래춘처럼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입품 등이고 가격도 훨씬 비싸다. 복래춘 외에 차이나타운 내에서 과자를 직접 만들어서 파는 곳으로 '중국제과' 라는 가게가 있는데, 여기는 생긴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 돈이 떨어진 상태라 가보지는 못했다.
뱀다리 2: 차이나타운에 가기 전에 웹에서 그럭저럭 유용한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다. 약도나 가게 정보도 직접 가서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더 자세하므로,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미리 조사하고 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인천차이나타운 공식 홈페이지: 클릭
한국에 유일하게 '차이나타운' 이라고 할 만한 곳은 인천에 있는 곳 하나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그 규모로 봤을 때 미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의 그것과는 비교하기 뭣할 정도로 작다고들 하던데, 정말 그런지 체험해보기 위해 오랜만에 인천역으로 향했다.
역에 딱 하나밖에 없는 출구를 나오면 횡단보도가 보이고, 그 건너편에 중국풍의 패루가 보인다. 들어가면 그 곳이 차이나타운.
패루를 지나서 오른쪽 보도에 있는 안내판. 하지만 정작 찾는 곳은 표시되어 있지 않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행정구역상 중구 선린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화교들만 거주한 곳은 아니었고, 가까이에 일본 조계지도 있어서 중국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공존하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소이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현대식 건물들에 밀려 모습이 많이 퇴색했지만, 약간 이상하나마 복원시킨 건물들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었다. 위 짤방의 약간 괴이한 건물은 선린동 주민센터인데, 차이나타운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옥상에 기와지붕 구조물을 올려 지어놓았다.
인천역 근처에서 들어가는 차이나타운 골목은 오르막을 약 80미터쯤 올라가야 하는데, 일단 언덕 끝배기에 가면 '공화춘' 을 비롯한 큰 건물에 입점한 중화요리점들이 보인다. 하지만 저 짤방에 나오는 공화춘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처음 짜장면을 만들었다는 그 오리지널 점포는 아니다. 그리고 차이나타운 내의 안내문이나 홍보물에도 '공화춘이 자장면의 원조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는 식으로 적혀 있고.
아무튼 그 공화춘이 보이자마자 오른쪽으로 난 길을 홱 돌았다. 마찬가지로 양편에는 이런저런 중화요리점들이 보였고, 그 사이에는
내가 찾는 곳은 화교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인 '인천화교중산학교' 의 맞은편에 있다고 되어 있었다. (단,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차이나타운 내를 한참 돌아다니다가 한 안내판에 표기된 것을 보고 알아차렸다.) 차이나타운을 거니는 많은 학생들도 외모와 교복 디자인은 한국의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학생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중국어라는 점에서 학교가 멀지않은 곳에 있음을 알아챘다.
아까 들어갔다는 골목을 걷다 보면, 왼편에 '대창반점' 이라는 중화요릿집이 보이면서 그 왼쪽으로 골목이 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골목의 담벼락에 친절하게 내가 찾던 가게를 알리는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골목으로 들어가 오르막을 오른 뒤 다시 내리막을 걷다 보니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화교 아이들이 골목 왼편의 계단에서 무리지어 내려오고 있었다. 바로 인천화교중산학교. 그리고 그 계단 바로 오른편에 내가 찾던 중국과자 전문점인 '복래춘(復來春)' 이 있었다.
복래춘은 흔히 커다란 모양새에 비해 안에는 든 것이 없는 '공갈빵' 으로 유명한 가게라고 한다. 하지만 공갈빵이건 중국식 호떡이던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심지어 기름에 지지는 한국식 호떡도 좋아하지 않는다. 단 것은 거의 좋아하지만, 감이랑 호떡은 별로 입에 안맞는 듯하다-, 공갈빵과 함께 이 집의 유명 상품으로 꼽히는 월병을 사러 들어갔다.
가게 앞에는 도향촌처럼 파는 과자들의 견본들을 창가에 진열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모형인 도향촌과 달리, 명절 때만 나오는 듯한 커다란 호빵 모양의 것들을 빼고는 진짜 과자들을 진열하고 있던 것이 차이점.
진열대에는 대략 두 종류의 월병과 호두 넣은 쿠키인 호도수, 중국식 강정인 부영고(도향촌에서는 '부용고' 라고 하는 것), 참깨 쿠키인 지마수, '계란과자' 라고는 되어 있지만 같은 이름의 시판품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듯한 쿠키같은 모양의 과자, 공갈빵, 꽈배기, 막과자, 포춘쿠키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중국인들이 아침에 달게 만든 콩국물에 찍어먹는 츄러스 비슷한 튀김과자인 '유탸오' 도 메뉴판에 있는 것을 봐서는, 그것도 파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메뉴판만 있고 보이지는 않았다. 다 나간 듯.)
대개 예상한 품목들이었는데, 가격은 도향촌보다 좀 더 쌌다. 월병은 두 종류 모두 개당 1000원이었고, 두 개나 네 개, 여섯 개 등 다양한 갯수별로 비닐봉지에 포장해놓고 있었다. 부영고나 여타 과자들도 다양한 크기로 썰어담아 가격대별로 늘어놓고 있었고.
일단 뭘 살지 고민하다가 팥고물 넣은 월병과 흰 고물에 견과류와 말린 과일 섞은 소를 넣은 팔보월병 한 개씩, 세개 들이로 포장된 호도수, 일곱개 들이로 포장된 계란과자, 약간 작은 크기로 썰어담은 부영고를 골랐다. (가격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대략 다 합쳐서 5100원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구입한 중국과자 봉지를 들고 입이 헤벌쭉해져서 가게를 나왔는데, 점심도 안먹고 온 탓에 갑자기 허기가 엄습했다. 하지만 수중에 남은 돈이 6000원 정도라, 함부로 돈을 쓰기가 뭣했다. 문제는 그런 상태였음에도 거의 30분 가까이 차이나타운 내를 계속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보고다닌다고 체력을 더 떨어뜨렸다는 것이었고.
아무튼 이제는 참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수많은 중화요릿집 중에 어디로 갈까 생각을 하다가 한 곳을 잡아 들어갔다(어딘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자금성' 맞은편이었던 것 같은데...). 거의 모든 요릿집에는 저렇게 인천세계도시축전 공식 캐릭터가 등장하는 '자장면 특색음식점' 이라는 팻말이 붙어 '원조 짜장면' 을 찾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메뉴인 짜장면 곱배기를 시키고, 기다리는 와중에 사온 과자들의 짤방을 만들기 위해 폰카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왼쪽이 단팥소넣은 월병, 오른쪽은 팔보월병. 집에 와서 먹어보니 전자는 약간 거친 질감의 단팥빵 맛이었고, 후자는 도향촌의 '산동팔보' 와 구성물과 맛이 대동소이했다. 하지만 월병 표면은 만쥬 느낌의 도향촌 것과 달리 쿠키처럼 바삭거리는 식감이었다. 결론은 둘 다 만족.
왼쪽은 호도수, 오른쪽은 계란과자. 호도수도 도향촌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좀 더 딱딱했다. 특이한 이름과 모양새 때문에 산 계란과자는 막상 먹어보니 '달걀맛이 나는 달달한 건빵' 정도. 좀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기대했지만 좀 아니었다. 하지만 차와 함께 가볍게 한두 개 먹기에는 좋은 과자인 듯.
마지막으로 부영고. 도향촌 과자와 비교했을 때 가장 맛에 차이가 많이 나는 과자였다. 도향촌 것이 투박한 모양새에 카스테라맛이라는 아방가르드적인(?????) 조화로 나를 사로잡은 것에 비하면, 복래춘의 것은 한국의 강정에 가까운 맛이었다. 그렇다고 실망스러웠다는 것은 아니었고, 도향촌과 달리 아몬드나 건포도, 참깨 등이 토핑되고 단맛보다는 고소한 맛이 더 강한 것이 차이점이자 나름대로의 장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둘 다 기름에 튀긴 과자인 만큼, 많이 먹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따른다.)
약간 이질적이었던 계란과자나 호도수를 제외하면 월병 두 종류와 부영고가 착한 가격과 맛 때문에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다만 거리가 멀다 보니, 차비까지 계산에 넣어보면 그렇게 싸다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이 문제고. OTL 물론 인천시민이라면 해당되지 않을 문제이기는 하다.
오히려 나같이 중국과자 등 다소 레어한 아이템을 목표로 차이나타운을 찾는 관광객들보다는, 짜장면이나 만두를 비롯한 대중적인 중화요리를 먹으러 오는 관광객들이 훨씬 많아보였다. 짤방용 과자 사진들을 찍고 나니 짜장면이 도착했는데, 한 가지 중요한 요청 사항을 까먹은 것을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로 '오이채는 빼주세요' 라는 요구 사항. 사실 내가 드나드는 중국집들은 짜장면 위에 오이채를 올리지 않는 곳이라 안심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안심이 방심이 되어버렸다. 그릇이 놓이자마자 일단 표정관리부터 하고 오이채를 죄다 골라내 양파그릇에 옮겨놓은 뒤에야 짤방을 만들 수 있었다. (오이채 지못미...???)
그렇게 하고 먹은 짜장면 맛은...그냥 그랬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짜장면 맛 그대로. 돈이 더 됐다면 속는 셈 치고 '인천정통자장(혹은 향토자장면)' 을 시킬 수 있었겠지만, 이미 지갑의 사정은 현시창이었고. 아무튼 오이채 빼고는 단무지와 양파 모두 해치우고 음식값을 낸 뒤 가게를 빠져나왔다.
차이나타운 전체에 대한 소감은...특별한 풍경이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점 정도? 화교들의 생활 터전이라기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관광 명소라는 인상이 강해서 좀 이질적으로 비춰졌다. 그마저도 밋밋한 현대식 건물들이 빈칸을 채우는 모습이라 작고 인위적인 모습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어찌 보면 현재 한국 화교들의 위치와 그들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을 약간 차갑게 느낄 수 있는 곳일 지도. 아무튼 복래춘 월병과 부영고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뱀다리 1: 차이나타운에서는 일반 잡화점 등지에서도 월병을 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다만 복래춘처럼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입품 등이고 가격도 훨씬 비싸다. 복래춘 외에 차이나타운 내에서 과자를 직접 만들어서 파는 곳으로 '중국제과' 라는 가게가 있는데, 여기는 생긴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 돈이 떨어진 상태라 가보지는 못했다.
뱀다리 2: 차이나타운에 가기 전에 웹에서 그럭저럭 유용한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다. 약도나 가게 정보도 직접 가서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더 자세하므로,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미리 조사하고 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인천차이나타운 공식 홈페이지: 클릭
Posted by 머나먼정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