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년 남짓 안하던-사실 그 시점에서 일단 끝낸 거였지만-중화요릿집 볶음밥 순례를 다시 시작할 참이다. 독일문화원에 원대복귀(???)하기 이전에 워밍업 삼아 종로의 모 사설 어학원을 한 달 남짓 다녔는데, 그 때 가본 집.
IV. 오구반점 (을지로3가역 근처)
을지로 쪽에서 나름대로 이름이 높은 중화요릿집은 내가 들어본 것으로는 두 곳이었다. '오구반점' 과 '안동장' 인데, 오구반점의 경우 집에서 학원까지 을지로지하상가를 타고 걸어가다가 쉽게 들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물론 아주 예전에도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중국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다니는 정도는 아니라 가서 먹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튼 웹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본 결과, 볶음밥도 나름대로 괜찮고 무엇보다 오이를 안넣는다는 점 때문에 찾아가봤다. 위치도 2호선 을지로3가역 2번출구로 나온 뒤, 180도 돌아서면 나오는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보이는 적절한 접근성도 한몫 했고.
건너편에서 찍은 오구반점 앞모습. 한자로 된 간판에서 보듯 '59' 라는 숫자가 좀 신경쓰이는데, 많은 사람들은 창업 당시 가게 번지수가 5번지 9호라 그렇게 지었다고들 말하고 있다.
가게 바로 앞의 유리창에는 음식점이 아니라 술집 혹은 주류도매상으로 잠시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술병들이 죽 늘어서 있다. 이과두주와 고량주 등 중국술인데, 예전에 마셔보고는 그 향기 때문에 꺼벅 죽었던 옌타이 고량주도 있어서 은근히 반가웠다.
하지만 술먹으러 간 것도 아니고, 이미 목적은 볶음밥 하나로 고정되어 있던 터라 들어가서 앉자마자 곱배기를 주문했다. 곱배기 가격이 6000원이었던 것으로 봐서 보통은 5000~5500원 선으로 추정된다.
1층과 2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점심 때가 지난 어중간한 오후 시간이라 그랬는지 손님은 나와 짬뽕을 시켰던 한 아주머니 외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위 짤방 왼쪽에 어렴풋이 보이는 것처럼 주방 맞은편의 어항에 붕어들을 기르고 있는 모습도 보였고, 낚시터에서 잡은 것인지 꽤 커다란 물고기의 박제도 벽걸이 액자에 담겨 장식되어 있었다.
카운터의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께서 주문을 받자마자 주방에 챠오펀(炒飯. 볶음밥의 중국어 명칭) 어쩌고 하시는 것을 보고, 화교가 직접 운영하는 화상(華商)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집도 공화춘 등 인천 쪽의 역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꽤 역사가 오랜 음식점이라고들 한다. 그런 점에서 절대다수 중국집들의 대표 메뉴인 짜장면도 약간 궁금하기는 했다.
뭘 시키던 일단 중국집 식사 메뉴의 필수요소로 나오는 춘장과 단무지/양파. 여기서는 특이하게 단무지보다는 양파를 더 많이 담아주었다. 볶음밥이 약간 느끼하니 맵싸한 양파로 입을 가시라는 의도였을까?
이 집을 소개한 몇몇 블로그의 포스팅을 봤을 때는, 볶음밥을 시키면 흔히 나오는 짬뽕국물이 아니라 계란탕 국물을 내오는 몇 안되는 집이라고 된 내용도 있었다. 물론 계란탕이 짬뽕국물보다 더 손이 가고 고급이라는 이유는 아니겠지만, 이것도 약간 기대는 하고 있었고. 하지만...
나온 모습은 이랬다. 동그랗고 커다란 접시에 나온 볶음밥에 따로 담아내온 짜장과 짬뽕국물. 영업 방침이 바뀐 것일까? 계란탕을 기대한 입장에서는 약간 실망했지만, 일단 계란탕 보다는 볶음밥에 관심이 있어서 온 것이었으니 그렇게 언짢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볶음밥 자체는 꽤 훌륭했다. 사진이 볍신같이 나와서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고슬고슬하고 약간 그을린 듯한 쌀알이 올드비들이 흔히 볶음밥에서 기대하는 '불맛' 을 내줬다. 간이 약간만 더 셌다면 짜장 없이 먹어도 될 정도로 식욕을 돋우는 맛이었는데, 짜장과 섞어서 먹어도 충분히 맛있었고. 그리고 곱배기라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양도 꽤 많았다.
지난 번처럼 세 곳을 추천받거나 혹은 웹의 정보들을 참고해서 가보기로 했는데, 다음에 찾아갈 곳은 집에서 매우 가까운-뜻밖이다!-'유락반점' 혹은 가끔 만화책 사러 가는 종로6가의 '신신원' 둘 중에 하나가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