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주문을 부탁했던 CD들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해가 바로 넘어간 뒤에 들었는데, 그래서 주문 품목들을 받기 위해 오랜만에 180cm 미만 남자는 못들어간다는 모 대학교 앞에서 약속 시간을 잡았었다. CD 받는건 둘째 치고 점심 약속을 겸한 것이라, 대체 어딜 가서 무엇을 먹어야 할 지가 고민거리였고.
사실 저 쪽에 많이 가봤다고는 해도, 대부분 아마추어 관현악단 리허설 때나 락/재즈 클럽 공연볼 때, 그리고 북새통 등에 만화책 구입하러 갈 때 등을 빼면 그다지 볼일은 없었다. 그나마 '처묵으러' 갔다오는 것도 멘야도쿄 등 극히 한정된 곳에 한한 것이었고.
어쨌든 고민 끝에 CD를 가져온 지인 분이 추천한 '커리포트' 라는 곳으로 향했다. 이름만 봐서는 카레 전문 식당으로 여겨졌지만, 오무라이스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천했다고 한다.
가게 위치는 서교푸르지오에서 지하철역 방향으로 향하는 비스듬한 골목의 초입이었는데, 1층에 옷가게가 있는 자그마한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노란색 바탕의 간판이 인상적이었는데, 한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강황빛 강한 노란색 카레의 이미지를 노리고 설치했을지도. 하지만 최근 일본식 카레 전문점들이 한국에 상륙하면서 이런 선입견도 조금씩 깨지고는 있는 모양이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은 뒤, 받은 CD들을 확인하면서 메뉴판을 받았다. 메뉴판 역시 노란 바탕의 디자인.
카레 전문점답게 카레 메뉴가 맨 앞에 있었고, 중간에는 오무라이스, 끝에는 필라프를 비롯한 기타 식사 메뉴들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오무라이스를 노렸기 때문에 다른 음식들은 일단 보류하고 뭘 먹을지를 골랐다.
가격은 개인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좀 높은 편이었는데, 곁다리가 없는 스패니시 오무라이스도 6500원이라는 값이었다. 하지만 일단 들어온 이상 물러설 수는 없었고(???), 고민 끝에 치킨커틀렛 오무라이스(7000\)를 시켰다. 지인 분은 도이치소세지 오무라이스(7500\)를 주문.
주문을 하고 나니 단무지와 깍두기, 냅킨으로 싼 숟가락과 포크, 독특한 디자인의 찻잔과 찻주전자가 나왔다. 단무지와 깍두기는 그렇다 치고 차가 맛이 독특했는데, 가게 안의 설명을 보니 '루이보스 티' 라고 했다. 과거 미용과 체중감량에 좋은 차라고 대대적으로 선전되던 물건으로 기억하는데, 최근에는 비슷한 효험을 가지고 있다는 마테 차나 여타 제품들에 가려 많이 잊혀진 듯. 아무튼 선전의 기능을 거의 믿지 않는 '만년 불신자' 인 내게는 그다지 솔깃한 품목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는 동안 주문한 음식들이 차례대로 나왔다. 짤방은 내가 시킨 치킨커틀렛 오무라이스. 아무래도 오무라이스가 메인인 지라 치킨커틀릿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야박하다는 인상은 들지 않았다. 소스는 데미글라스 베이스에 버섯과 다진 야채를 넣어 조미한 것으로 보인다.
지인 분이 시킨 도이치소세지 오무라이스. 사실 독일어 배우고 독일 유학 준비하면서 독빠 기질을 보이고 있는 내게 강하게 어필한 메뉴였지만, 가격대를 감안해 치킨 쪽으로 바꿨다. 이쪽도 소스나 오무라이스 구성은 똑같은 대신 중간 정도 크기의 소시지 두 종류가 곁들여진 컨셉. 그리고 나이프는 오무라이스와 함께 가져다 주었다.
먹어보니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약간 말간 소스도 시큼함과 달콤함, 짭짤함 등이 적절하게 섞여 있었고, 소스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오무라이스 속의 볶음밥에는 특별히 기교를 부리지 않았던 것 같았다. 다만 양의 경우, 먹성이 있는 탓에 개인적으로는 살짝 적은 편이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가격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고.
알고보니 저 커리포트는 프랜차이즈 체인점이라고 한다.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주로 서울과 수도권을 거점으로 점포를 확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수도권 이외의 지역은 아직 제천와 대전 쪽으로 한정되어 있다. 체인점이라 아마 각 가게별로 맛은 대동소이할 것으로 보이지만, 가격의 경우 간혹 미세한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 터라 여기가 특별히 비싼지 어쩐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아무튼 싸고 양많은 것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에는 좀 못미치는 것이 아쉬웠는데, 가격이나 양을 희생하더라도 특이한 메뉴가 있다면 한두 번 쯤은 더 가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상호명이 상징하는 카레 메뉴의 경우, 과연 어떨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