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시즌 3의 다섯 번째 가게 포스팅이 되었다. 이쯤 되면 질릴 때도 됐지만, 여전히 쑥쑥 잘 들어가는 중이다. 주로 마포-신촌-종로 방면에 몰려 있던 답사 대상 가게 중 가장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 이번에 가본 집이었는데, 상호명도 단순소박하면서도 개성적이라 눈에 띄는 곳이었다.
서울 시내에서도 좀처럼 갈 일이 없는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왔다. 선거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는지 교육감 예비후보 선거인단이 역 출구마다 배치되어 명함 크기의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엉겁결에 받기는 했지만, 쓱 보고는 마음에 안들어 죄다 쓰레기통행. 아무튼 이번에 갈 곳은 함정 하나만 잘 넘기면 그리 어렵잖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중요한 단서는 '동구여상 정문' 이었는데, 6번 출구에서 동구여상 쪽으로 가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가장 먼저 나오는 길은 팻말에 신호등까지 있어서 차가 드나드는 2차선 도로가 딸린 골목인데, 여기로 들어가면 배패를 인정해야 한다. 처음 나오는 골목은 후문 가는 길이고, 그냥 큰길을 따라 신호등을 건너 쭉 가다가 길 건너편에 '성북1동 치안센터' 가 보이는 지점에서 우회전하면 만사형통.
우회전하는 길목의 모습이다. 큰길 건너의 치안센터 외에도, 골목 꺾는 곳에 정육점이 있다는 것도 체크하면 헤맬 일이 없을 듯.
골목으로 들어가서 훼미리마트를 막 지날 무렵 눈앞에 간판이 보인다. 사다리꼴 모양 콘크리트 건물에 사각형 타일을 촘촘하게 붙여 마감한, 70~80년대식의 고색창연한 외관부터가 꽤 인상적인 모습이다.
가게 앞 모습. 이삿짐을 가득 실은 용달차 두 대가 주차하고 있어서 '설마 이 가게 장사 접고 옮기려나?' 는 노파심이 들었는데, 다른 집 이삿짐이었다. 화교가 운영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35년 전통이라는 다소 흔한 캐치프레이즈가 솔깃한 간판에 속는 셈 치고 들어갔다. 사실 속는게 아니라 진짜인데, 이제 은퇴할 나이가 다 되신 듯한 노년의 주인장께서 주방을 지키고 분주하게 일하고 계셨다. 가업을 물려줄 자식이나 친지가 없으신 걸까?
가게 외관도 그렇고, 내부도 그렇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중국집은 절대 아니었다. 그냥 동네에 흔히 보이는 대중적인 중국집 모습 그 자체인데, 메뉴도 중식 뿐 아니라 비빔밥이나 냉면, 콩국수 같이 분식집 혹은 밥집에서 팔 법한 음식들까지 아우르는 컨셉을 취하고 있었다.
가게 안의 식사 공간도 그리 넓지는 않았는데, 바닥에도 작은 타일을 촘촘히 깔아 마무리해 더욱 옛스러운 인상이었다. 화장실은 두 번째 짤방의 문으로 나가야 하는 걸로 봐서는 따로 만들어놓은 것 같다.
먼저 온 손님이 탕수육을 주문한 터라, 볶음밥은 좀 늦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주문한 지 약 6분 만에 나온 볶음밥 곱배기(6000\). 여기도 반숙달걀부침을 얹어 내오는 곳이라 주목하고 있었다. 고슬고슬하고 그을음도 적당히 섞인 밥에는 잘게 썬 당근이나 파 같은 흔한 채소들 외에 잘게 썬 돼지고기도 들어 있었다. 곁들임 짜장은 약간 달착지근한 편.
춘장이나 단무지, 양파는 주방이 아니라 그 바로 앞의 설거지하는 공간에 놓고 있었는데, 셀프 서비스인 줄 알고 있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주인장분께서 볶음밥을 가져다 주신 후 갖다주셨으니. 그리고 깍두기는 따로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을 꺼내주셨다. 모두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맛.
곁들임 국물은 많은 중국집들과 마찬가지로 짬뽕국물이었다. 하지만 그냥 곁들임답잖게 조개며 작은 새우, 오징어 등 해물도 꽤 많이 걸려들어 감탄했는데, 제법 매운 맛이 볶음밥의 느끼함과 꽤 잘 어울렸다. 소박한 동네 중국집 그 자체였지만, 적어도 볶음밥 만큼은 웬만한 화상 중국집 수준의 고퀄을 보여주는 곳인 듯.
커피도 커피믹스고 셀프이기는 하지만 공짜로 마실 수 있었는데, 다만 오후인 데다가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붙이고 있기 때문에 타먹지는 않았다. 65세 이상의 노인 고객들에게는 할인 혜택을 준다는 종이까지 붙인 것으로 봐서는, 아마 그 분들이 주로 타드실 것 같다.
이제 서울 한정으로 세 군데 남았다. 한 군데는 홍제역 근처고 한 군데는 집에서 가까운 2호선 신당역 근처, 그리고 또 한 군데는 충정로/서소문 근처. 이곳저곳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호기심 참기 힘들어하는 성격 때문에라도 머지 않아 정ㅋ벅ㅋ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