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에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하늘도 당연히 맑지 않았다. 다소 우중충한 분위기를 감수하고 다시 시내를 돌아다녔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아침식사. 뜨끈한 국 종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전날 못갔던 시락국집을 찾아나섰다.
시락국은 1편에서 충무김밥 끄적일 때 잠깐 썼듯이, 시래기국의 사투리다. 하지만 다른 지방과 달리 된장을 많이 풀거나 시래기 외의 푸성귀를 쓰지도 않고, 멸치 등 잔물고기나 장어뼈 등 해물 부산물로 육수를 내서 끓이기 때문에 꽤 개운한 맛이라고들 하고. 이번에 찾아간 곳은 서호시장의 '원조시락국' 이었다.
서호시장은 여객선터미널 근처에 있는데, 정 모르겠다 싶으면 기점이나 경유지 표기가 시장 쪽으로 된 버스를 타도 무방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따져보면, 발품팔이를 하며 걸어다녀도 크게 상관없고. 오히려 재래시장의 독특한 분위기를 음미하며 산보할 수 있기 때문에 후자를 추천하고 싶다.
시락국집이건 점심/초저녁을 때우기 위해 찾아간 또다른 집이던 모두 서호시장 안에 있는데, 둘 다 거리 차가 아주 약간 있지만 위의 통영농협 건물과 지척이라 여기만 찾아도 거의 헤맬 염려는 없다. 특히 시락국집은 거의 대각선 맞은편에 있다.
원조시락국 앞. 시락국이라는 표기가 강조되어 있지만, 외지인들도 많이 찾는지 '시레기국' 이라고 따로 써붙여 놓기도 했다. 다만 이날 따라 가게 주변 분위기는 별로 안좋았는데, 가게 주변의 해물 상인들이 무슨 이유로 시비가 붙었는지 날카로운 사투리로 거친 욕설을 주고받는 모양새였다.
가게 안은 마치 오뎅 바 등 일본식 주점/음식점의 다찌를 두 개 빙 둘러놓은 듯한 모습이었는데, 나무 테이블 위에는 여러 종류의 반찬들을 담은 스테인리스 용기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원하는 반찬들을 원하는 만큼 덜어먹는 자유 배식이었는데, 콩나물 무침이나 배추김치, 무김치 등 일반적인 반찬 외에도 삭힌 멸치나 풋고추 된장절임 같은 특색있는 것들도 보였다. 몇몇 단골로 보이는 손님들은 국 외에 밥만 양푼에 덜어달라고 주문한 뒤, 반찬들을 덜어넣고 비벼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시락국 1인분. 예전에는 밥을 미리 말아 내는 '말이국밥' 과, 밥과 국을 따로 내는 '따로국밥' 두 가지 메뉴가 있었다지만, 지금은 4000원짜리 따로국밥 하나로 통일되었다. 국물을 더 원할 경우 3000원 추가인 점은 똑같다고 하지만. 그리고 반찬을 담는 플라스틱 그릇도 따로 내준다.
그대로 먹을 수도 있지만, 부산에서 돼지국밥 먹었을 때처럼 현지인들의 방식을 따라 반찬통에 있는 정구지(부추) 무침과 잘게 부순 김을 듬뿍 얹고, 산초가루도 뿌려준 뒤 밥을 말았다.
특이한 반찬들이 많기는 했지만, 행여 입에 맞지 않아 손도 못댈 까봐 그냥 상식 선의 것들만 담았다. 무김치와 배추김치, 콩나물 무침, 멸치볶음, 미역무침. 김치들은 역시 짭짤하고 약간은 비릿한 젓갈의 향취 때문에 꽤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반찬들도 남김없이 해치웠고. 가게 안에도 붙어 있지만, 반찬은 먹을 만큼만 덜어 남기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아침식사를 해결한 뒤에는 통영적십자병원 인근의 '오미사꿀빵' 본점을 찾았다. 2002년이나 2004년 때는 그냥 '특이한 지역 군것질거리'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전국 단위의 택배 배송까지 할 정도로 꽤 유명한 지역 명과로 자리잡은 것 같았다. 물론 본점은 여전히 직접 찾아와 사가는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었다.
원래 9시 30분에 여는 걸로 되어 있었지만, 찾아갔을 때는 9시를 좀 넘은 약간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떤 아주머니가 가게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했는지, 사가려면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물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들어갔고.
예전에는 묶음 판매보다는 낱개 단위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입소문이 퍼지고 퍼져서 외지인들이 선물용으로 많이 사가다 보니 이렇게 10개들이 묶음 위주로 팔고 있었다. 물론 나도 가족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한 묶음을 샀다. 개당 700원이니 한 묶음에 7000원.
막 만들어 쌓아둔 묶음들 외에도, 가게 한 켠에는 이렇게 튀겨놓고 물엿 바르기 전의 빵들이 플라스틱 광주리들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물론 이것들도 그 날 오후 두세 시를 채 넘기지 못하고 팔려나갔을 테고.
선물용 꿀빵을 사기는 했지만, 내가 먹고 싶어서 미륵도 쪽의 분점으로 가기 위해 전날 거닐었던 윤이상 거리를 이번에는 거꾸로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눈에 띈 페스티벌 하우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 공무원들의 사무용 건물로 쓰이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이렇게 통영국제음악제 사무국과 행정 부서들이 입주해 사용하고 있다.
현관의 계단에 걸려 있는 대형 윤이상 사진. 1층에는 프린지 공연을 개최하는 작은 공연장도 있었지만, 아침이라 열리고 있던 행사는 없었고 자원봉사자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띄고 있었다.
페스티벌 하우스를 나와 좀 더 걷다 보니 저녁 때 한 번 갔었던 도천테마공원이 다시 눈에 띄었다. 여전히 흐리멍텅한 하늘빛이기는 해도, 밤보다 훨씬 자세하게 세부를 살펴볼 수 있었다.
공원의 사무동과 공연동을 겸한 건물 맞은편의 경사진 공간에 올라서서 찍은 사진. 개관한지 며칠 안된 터라 시설 자체는 무척 깔끔했다. 여기를 객석으로 삼고 건물 앞에 가설 무대를 만들어 공연해도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경사진 공간 주변에는 마치 성곽의 해자처럼 얕은 물가가 조성되어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조명과 함께 분수도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물가 주변은 작은 나무들을 비롯한 식물들이 심어진 화단이 둘러싸고 있는데, 한켠에는 이렇게 윤이상 동상도 세워져 있었다. 사진이 너무 어둡게 나와 정체불명의 동상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주춧돌 앞에 자세히 보면 검은색으로 이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