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간도 물론 서코에 행차하긴(???) 했었지만, 지른 물품이 너무나도 적었고 전체적으로 루저루즈한 분위기 때문에 후기 '따위를' 쓸 마음이 전혀 나지 않았다. 어차피 누가 쓰라고 닦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써갈기고 싶으면 쓰는 거고 아님 말고.
사실 이번 일정도 좀 무리가 있기는 했다. 단골 행사장인 SETEC을 잡기는 했지만, 같은 시기 다른 행사 예약이 3관에 잡혀 있어서 쓸 수 있는 공간은 1관과 2관 두 곳 뿐이었다. 게다가 부스는 1관에만 있었기 때문에, 동인들의 참가 숫자도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추가로 토요일은 스승의 날 겸 학교가는 토요일이었고.
이래서 그랬는지 토요일은 입장 직전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입장도 안하고 행사장 바깥에서 찌질대는 민폐 코스어들의 꼬라지도 눈에 띄게 적어 보였고. (다만 나중에 나왔을 때의 사정은 좀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휴일인 일요일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무튼 부스만 들락거리는 것으로 끝내는 일정과 동선은 예전과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적으면 분위기가 좀 그렇기는 하지만, 이동할 때 불편하지는 않다는 장점도 생긴 터라 토요일 하루만은 비교적 맘편히 이것저것 보고 지르고 할 수 있었다. 일요일은 역시 미어터지는 인파 때문에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고 했지만.
지른 것들은 대부분 아래 짤방에 찍혀 있다. 단, 일요일 구매 물품 제외.
☆미쿠미쿠체인지☆ (C24): 하츠네 미쿠 합동 일러스트북 'Mikumiku Change' (5500\)
사전에 체크하고 간 두 번째 품목. H2SO4(황산) 화백이 오랜만에 한국 동인행사에 참가해 낸 신간인데, 일본에서 상업용으로 그린 일러스트들과 여러 애니메이션이나 게임들의 팬아트 등이 섞여 있다. 한국에서는 호환마마전쟁보다 더 무서웠다는 양배추 파동 때문인지 뭔지 동인계에서 인기가 그다지 많지 않은 '새벽녘보다 유리색인' 의 피나 팬아트가 두 종류 포함되어 있는 것도 체크 포인트.
현재 일본에서 어학연수중인 깜쥐 화백이 위탁한 품목. 같은 달 열리는 일본 동인행사인 코미티아 스페셜에서 낼 목적으로 작업한 탓에 모두 일본어로 되어 있지만, 러프북이라 특별히 해석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텍스트보다는 흑백 러프북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단걸 땡기게 만든다는게 미스테리.
원래 양일 참가 부스로 되어 있었지만, 토요일에는 참가하지 않았는지 계속 기다려봐도 텅빈 상태라 굳이 일요일 하루를 더 갔다왔다. 물론 그 때도 분명히 참가하리라는 보장도 없었지만, 다행히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요일의 유일한 지름 품목. (그래서 토요일에 찍은 지름 인증샷에는 애석하게도 누락되어 있다.)
라휘아 화백의 회지. 지난 번 가쿠포이드x메구리네 루카 커플링 회지로 우수 동인지에 뽑히기도 한 작가였는데, 회지 나온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해서 행사장 가서야 알게 되었다. 다만 이 회지의 커플링인 가쿠포이드와 메구포이드는 둘 다 비(非) 크립톤 계열이라 딱히 별 관심이 없어서 살까 말까 고민 중이었는데, 결국 행사장 나오기 직전에야 구입을 결정했다. 가쿠포의 커플링이 바뀐 것 때문에 후속작은 루카와 메굿포가 가쿠포를 놓고 벌이는 아침 드라마풍 치정극이 되지...않을 것 같다.
아마 이번 서코에서 본 물품들 중 가장 이색적이자, 가정의 달이기도 하지만 1961년의 군사정변과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두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 달임을 강하게 상기시켜 준 회지. 안그래도 월요일에 정말로 광주에 갈 예정이라, 손이 안갈래야 안갈 수 없었다.
물론 그림체는 꽤 투박한 편이고 1980년대 학생 운동이라는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코믹월드라는 행사장을 찾는 대다수 연령층들의 취향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꼬맹이 시절이기는 했어도 그 시대의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성장했고, 이후 그 시절에 대한 역사를 되짚어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터라, 이 주제로 동인 행사에서 누가 회지를 냈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한 놀라움이었고.
다만 이 회지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1980년대부터 재야 운동과 척을 두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안쓰러울 정도로 맛이 가버리신 '그 분' 의 시 보다는, 그 시절을 형무소에서 보냈던 김남주 같은 시인들의 시 제목을 썼다면 좀 더 내용에 부합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든다.
(물론 저 시가 그 당시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동안 민주화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까지 실릴 정도의 대중성도 있으니, 그것을 감안해 작명하고 인용했을 듯.)
예전 행사들과 비교하면 그렇게 많이 지른 편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행사에 나온 큰손 작가의 일러북이나 고퀄 합동 일러북, 그리고 컬처쇼크나 다름없었던 1980년대 학생운동을 다룬 회지까지 꽤 다채로운 물품들을 입수할 수 있었던 덕에 상당히 인상적인 지름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