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방문의 주요 목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얼치기 철덕으로서 이 곳에 깔린 지하철을 못타보고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민주묘지를 답사한 뒤 금남로로 와서 점심을 해결한 뒤 금남로4가역에서 평동으로, 다시 평동에서 녹동까지, 그리고 녹동에서 다시 금남로4가역으로 탑승해 왕복 완주했다.
하지만 광주라는 도시 자체가 다른 광역시들과 비교하면 좀 기묘한 구조라서, 어느 한 곳이 뚜렷한 중심지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는 곳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불과 1개 노선의 지하철이 광주의 모든 거점을 연결해주지는 못한다는 태생적인 약점을 지닐 수밖에 없겠고. 그래서 시 측에서도 2호선이나 3호선 등 후속 노선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지만, 시의 재정 상황이 영 좋지 않아서 설계와 시공은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주택 지구로 재개발된 상무 지구와 중심가인 금남로 등 몇 군데는 그나마 제대로 이어주고 있기 때문에, 이용객은 생각보다 그리 적지는 않았다. 다만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갈 정도로 많이 타는 편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버스가 대중교통의 대부분을 전담하고 있는 시의 특성 때문인 듯. 그리고 이 노선 자체도 주민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면서 가루가 되도록 까는 시민들도 있다고들 한다.
구간은 대부분 지하고, 지상역은 종착역들인 평동과 녹동역 두 곳 뿐이었다. 그나마 두 곳 모두 시의 중심과는 꽤 떨어져 있어서, 거의 시골 간이역같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대구지하철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동그란 토큰식 승차권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잃어버리거나 부러지거나 하지 않는 이상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타입.
사진은 시종착역들에서만 몇 개 찍은 데 그쳤다. 서쪽 시종착역인 평동역의 승강장 모습. 지상 역사지만, 지하 역사 식으로 스크린도어를 높게 달아놓았다.
서울 촌놈 입장에서는 무척 미니멀리스틱한(...) 노선도. 노선이 딱 한 개밖에 없으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종착역임에도 그 뒤로 화살표가 더 뻗어있는 식으로 그려져 있어서 약간 이상하기도 했다. 평동 이후로 추가 연장 계획이 있는 건지 뭔지.
애석하게도(?) 여기는 반대편 승강장 횡단이 불가능한 역이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일단 개찰구 밖으로 나와야 했다. 나와서 찍어본 폴사인. 코레일이 관할하는 서울 도시철도들의 역에 있는 것과 꽤 유사한 디자인이다.
일단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마시면서 역사 내부를 잠시 돌아다녔고, 버스노선을 자세히 표시한 노선도도 하나 집어왔다. 지하철에서 경쟁 교통수단인 버스의 노선도를 배부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했는데, 역시 경전철이 되든 어떻든 후속 노선이 있어야 꿀리지 않고 경쟁할 수 있을 듯.
녹동 가는 열차가 자그마치 한 시간에 한 대라는 ㅎㄷㄷ한 배차 간격을 자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대충 시간을 때우다가 다시 승차권을 구입해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역 바깥의 휑한 풍경. 그나마 반대편에는 기아자동차 출고차량들의 널따란 대기소가 있어서 좀 덜하지만, 소태 방향 승강장에서는 이렇게 새로 포장된 도로와 뭘 만들려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정비는 해놓은 황량한 땅만 볼 수 있다.
물론 저퀄 짤방 특성상 도무지 식별할 수 없지만, 멀리 호남선 고가 선로도 볼 수 있었다. 때맞춰 무궁화호가 속력을 내며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우선 와서 대기하던 소태행 열차를 먼저 보내고, 뒤이어 들어온 녹동행 열차를 탔다. 그러고 나서 중간에 내리는 일 없이 바로 고고싱. 광주 1호선의 동쪽 시종착역인 녹동역 풍경이다. 차량기지 내에 임시로 만든 역사라 볼품은 없는 편인데, 승강장도 딱 하나 뿐이어서 서울 7호선의 장암역을 연상시킨다.
마찬가지로 단순한 노선도. 여기에는 화살표가 되어 있지 않은 걸로 봐서 이 쪽에서 추가 연장될 계획은 없는 것 같다. 역 주변에도 차량기지와 완전히 한적한 시골 분위기의 작은 마을을 빼면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이 쪽에서 뭔가 대규모 산업 단지나 주택 단지가 조성되지 않는 한 연장할 이유도 없을 테니. 게다가 이 쪽은 무등산 등 산지와도 가까워 개발 가능성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녹동역 열차 시간표. 일반 기차 시간표가 절대 아니다. 녹동가려는 사람이 눈앞에서 녹동행 열차를 놓쳤을 때의 심정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전국에서, 그리고 2010년 현재 세계에서 오직 이 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스크린도어. 열차 지붕 쪽에 보면 무슨 빨랫줄 비슷한 것이 몇 가닥 걸린 것처럼 보이는데, 저게 스크린도어다.
열차가 들어오거나 나갈 때를 맞춰 수직으로 들어올려지고 내려지는 식으로 작동하는데, 엘리베이터 문처럼 수평으로만 열리는 스크린도어를 보다가 저걸 보니 꽤 신기했다. 다만 높이는 지상 역사의 홈도어 정도고, 밀폐식과 달리 빈틈이 많은 로프식이라 안전성은 좀 떨어질 듯.
발차를 기다리는 동안 찍어 본 전동차 내부. 서울이나 부산의 전동차들과 달리, 열차 사이의 이동 통로에 출입문이 아예 없도록 설계했다. 중형 전동차라서 내부 공간의 면적은 인천 1호선의 전동차와 거의 비슷했다.
상업 광고 외에도 이런저런 시정 홍보 광고가 많은 것은 다른 지하철과 마찬가지였다. 아직 경제 규모가 다른 광역시들에 비하면 작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지, '예향' 과 '민주도시' 라는 이미지 외에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도시임을 홍보하기 위한 광고가 많은 것도 눈에 띈다. 위 짤방은 시정 홍보 만화인 '光과 州의 사랑이야기' 1화.
다시 소태 방면으로 출발하는 전동차를 타고 출발했었던 금남로4가역에서 내렸다. 여기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어중간한 점저를 먹고 터미널로 향했고, 거기서 고속버스 편으로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적은 예산으로 거의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은 외로움 보다는 이것저것 많이 못하고 다닌다는 아쉬움이 큰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궂은 날씨도 좀 처지는 분위기에 한몫 했고.
그나마 먹거리는 딱 두 곳이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에, 미각의 호기심은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식충잡설 카테고리에 쓸 다음 포스팅에서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