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4일에 했던 포스팅에 이어 8월 8일도 어느 행사를 목표로 집을 나섰지만, 그것이 큰 감흥을 주지 못해 이리저리 싸돌아다닌 날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 글도 꽤 많은 태그 분류가 들어갈 듯. 하지만 태그 분류는 그렇다 치고, 글의 주제를 어디로 보내야 할 지 망설여지는 것은 지난 번보다 심각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외잡설' 로 보내버렸다.
어느덧 3회 째를 맞이했던 '백합제'. 이번에는 1~2회와 달리 한여름 무더위 속에 개최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부제는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따온 '한여름 밤의 꿈' 이었다. 물론 밤에 개최되지는 않았지만. 장소는 예전에 사운드호라이즌 온리전 때 가본 바 있었던 보라매 청소년수련관 다이나믹 로동홀과 부속 부스 공간으로 사용된 107호실이었다.
하지만 지난 백합제 때 인연이 닿았던 동인 작가들은 이번 행사에 모두 참가하지 않았다. 아마 학업이나 생업으로 바쁜 이들도 있겠고, 어느 한 작가는 한국 활동을 접고 일본에서 간헐적인 활동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돈을 매우 적게 쓰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그랬다.
청소년수련관 건물에 들어서니 전단지를 활용한(?) 안내도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급조한 티가 역력했고, 오히려 공들여 뽑은 전단지에 낙서를 해서까지 안내를 할 정도로 종이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의문까지 들었다. 나야 지난 번 한 번 와밨기 때문에 그리 헤매지 않고 행사장을 찾아갈 수 있었지만, 초행길인 사람들은 전단지에 매직으로 그어놓은 화살표나 문구를 간신히 해독해 행사장을 찾아가야 했을 듯. 차후 행사에서 반드시 보완해야 할 부분이었다.
이번의 지름 품목(...).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었다. 사실 백합제라는 행사의 카테고리에 전반적으로 공감하고는 있다고 하더라도, 행사의 유행을 내가 따라잡지 못한 것인지 공감하지 못한 것인지는 몰라도 살 만한 품목이 보이지 않았다. 웹툰도 거의 챙겨보지 않고 있어서 '어서오세요 305호' 나 '연민의 굴레' 는 관심 밖이었고, 그 외의 패러디물도 마찬가지였다.
행여 공감하는 주제의 패러디 혹은 창작물이라도,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고. 글쎄, 요즘은 인연이 깊은 동인이나 소위 '큰손' 동인 작가들 것만 찾아다니고 있는 내가 눈이 너무 높아진 걸까? 하여튼 입장료 2000원 내고 받은 카탈로그와, 코타비 화백의 세일러문 패러디 회지(3000\)로 지름을 마쳤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로 가기로 한 곳은 용산이었다. 어떤 이벤트 참가 경품으로 문화상품권이 꽤 여러 장 생겨서, 오랜만에 음반이나 영상물 지름에 나서기로 했다. 오히려 백합제나 그 뒤의 끼니 해결보다 이 날의 중심은 이 쪽에 맞춰져 있었다.
어느덧 베네수엘라의 떠오르는 신예 지휘자인 구스타보 두다멜의 CD와 DVD도 각각 다섯 장과 네 장에 달하고 있다. 그 중 신보들인 'Rite' 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음악 감독 취임 공연의 DVD가 목표였는데, CD는 신나라레코드 아이파크점에서, DVD는 신나라레코드 전자랜드점에서 구입했다. CD 가격은 두 점포가 모두 비슷하지만, DVD의 경우 전자랜드점이 좀 더 싼 편이다. (유니버설 뮤직의 국내 라이센스 DVD를 기준으로 아이파크점은 22000원, 전자랜드점은 20200원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봄의 제전(1947년 개정판)' 과 멕시코 작곡가 레부엘타스의 관현악 모음곡 '마야의 밤' 을 담고 있는 CD인 'Rite' 는 의외로 괜찮았다. 특히 봄의 제전 보다는 처음 들어보는 레부엘타스 작품이 인상적이었는데, 이전에 나온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과 환상곡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를 담은 CD처럼 마지막 수록곡인 이 곡에는 박수를 그대로 넣어 실황의 현장감도 살려주고 있었다.
'봄의 제전' 은 개인적인 레퍼런스 음반인 게르기에프 지휘의 키로프 관현악단 보다는 야성미가 약간 떨어진다는 인상이었는데, 대신 리듬의 활력은 거의 대등하거나 좀 더 우월하다는 느낌이었다. 빠르게 변하는 템포나 복잡한 리듬을 소화하는 능력은 이미 청소년 관현악단 운운하는 것이 뱀발로 느껴질 정도.
다만 DVD의 경우 CD에서 느낀 정도의 감흥은 받지 못했다. 취임 공연의 첫 곡이자 세계 초연곡이었던 애덤스의 '시티 누아르' 는 전형적인 미국 작곡가의 작품 답게 색소폰의 재지한 활용이라던가 비교적 통속적인 선율, 미니멀리즘, 영화음악 풍의 묘사 등이 두드러졌는데, 좀 더 전위적인 면모를 기대한 내게는 그렇게까지 성에 차지 못했다.
두 번째 곡인 말러 교향곡 1번도 뭔가 약간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최근의 말러 연주 대세인 빠른 템포나 시원시원한 다이내믹 처리는 이 연주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직 대선배들인 아바도와 래틀의 그림자가 많이 느껴진다는 생각이었다. 3악장도 좀 밋밋한 인상이었는데, 기능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별로 없었지만 내면적인 표현 등의 부족이나 미흡함은 앞으로 음악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풀어야 할 과제로 여겨졌다.
지름의 욕구를 풀고 나니 허기의 충족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이 날은 일요일. 가장 가까운 용사의 집의 식당들도 공휴일은 칼같이 쉬고, 약간 멀기는 하지만 마포구청역 쪽의 '정광수의 돈까스가게' 도 일요일에 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뭘 먹을까? 아이파크몰의 푸드 코트는 신나라레코드나 대교문고를 갈 때면 늘상 지나치는 곳이기는 하지만, 뭔가 먹어본 적은 없었다.
아무튼 신나라레코드 아이파크점에서 몇 발치 떨어져 있는 모 음식점에 가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한국식 돈까스 종류를 여기서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돈까스와 오무라이스를 같이 내는 '돈 오므라이스(6000\)' 가 눈에 띄었다.
꽤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놓은 음식 모형. 하지만 이상과 현실이 늘 같을 수는 없고, 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분식집들 처럼 종이에 먹고 싶은 것을 체크해 주문하는 식이었는데, 가격은 개인적인 체감 기준으로는 1000~2000원 가량 비싼 것 같았다.
그리고 나온 '돈 오므라이스'...오무라이스 양은 충분한 편이었지만, 같이 나온 돈까스는 작은 편이었고 양배추 샐러드도 딱 '곁들임' 수준이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 달달한 키위 드레싱이 끼얹어져 있었고. 완전히 못먹을 수준으로 최악의 맛은 아니었지만, '푸드 코트 음식은 그냥 고만고만한 수준' 이라는 개인적인 편견을 결코 깨주지 못한 평범함만을 느낄 수 있었다.
백합제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확률이 높고, 코믹월드나 다른 동인 행사도 이제 두 번 정도 더 가면 당분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신세다. 과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아무튼 8월 서코도 몇 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경술국치 100주년에 딱 맞춰 치러지는 만큼 또 '왜색 코스프레' 어쩌고 해서 언론에 (부정적인 쪽으로) 뜨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하긴, 광복절을 비롯한 한일관계에서 분명한 떡밥이 되는 이벤트가 이 달에 줄줄 있으니 8월 서코/부코 개최는 항상 민감한 문제가 되어 왔다. 코믹월드 측도 그 점을 알면서도 그냥 행사 개최를 강행하는 건지, 아니면 돈줄이 달려 있어서 감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코스 전면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해 가능한한 안좋은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여러 모로' 기대되는 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