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듣도보도 못한 온갖 새로운 음식점이나 카페 등이 들어서면서 대학가라고 보기에는 꽤나 고급화되어 보이는 홍대 인근 상권이지만, 그래도 대학가 답게 적은 돈으로 즐길 수 있는 곳들도 찾아보면 꽤 된다. 다만 이들 가게는 대개 큰길 쪽이 아닌, 골목 곳곳에 은닉된(???) 터라 초행길인 사람이라면 별 신경쓰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번에 찾아낸 곳은 사실 예전에 굴라시를 싼 값에 맛볼 수 있다고 소개한 G&B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어디 있는 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다만 들어가서 음식을 시켜먹은 것은 올해 8월 중순이 처음이었고.
홍대 정문 쪽에서 놀이터 쪽 언덕길을 잠시 타고 올라가다 보면, 벽마다 그래피티가 가득한 아트박스 골목을 오른쪽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골목 오른쪽에서 눈에 띄는 노란 간판이 나오는데, 이번 뻘포스팅의 중심 주제인 '박리식당' 이 되겠다. 이름의 유래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 '박리다매(薄利多賣)' 에서 딴 게 아닐까 싶지만.
가게 앞에 배너거치대로 세워놓은 메뉴판. 큰길 가에 입점한 소위 '맛집' 들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임을 알 수 있다. 탕수육을 다른 식사 메뉴와 셋트로 쭉 구성한 것으로 봐서는, 꽤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메뉴로 여겨졌다.
때마침 저녁식사 시간이기도 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변의 인쇄소 직원들에서부터 홍대생으로 보이는 학생들, 근처에 거주하는 듯한 주민 등 매우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찌개며 돌솥밥이며 탕수육이며 돈까스를 먹고 있었다.
단촐한 테이블 셋팅. 양념통 같은 것은 없고, 그냥 냅킨통이랑 수저통이 전부였다. 냅킨통에는 종이 계산서를 부착한 클립보드도 끼워져 있었지만, 구두로 주문받는 것을 봐서는 거의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한쪽 벽에는 벽걸이 텔레비전이 엠넷을 내보내고 있었고, 그 옆에는 무료로 쓸 수 있는 핸드폰 충전기도 비치되어 있었다.
가게 안에도 이렇게 곳곳에 메뉴를 인쇄한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다만 바깥의 배너거치대 메뉴와는 좀 차이가 있었다. 주로 카레 메뉴와 육개장, 갈비탕 등 탕 종류가 종이로 가려져 있었다. 다만 이 가게가 가장 잘한다고 내세운 탕수육 보다는, 오무라이스와 돈까스에 관심이 있어서 그 중 하나인 오무라이스를 시켰다.
기본 반찬들. 혼자 먹은 터라 양은 적게 나온 편이었지만 가짓수가 꽤 다양했다. 배추김치와 깍두기, 단무지, 오징어채무침, 어묵볶음.
소위 '예술의 거리' 답게, 이러한 소박한 밥집 스타일 식당의 벽에도 독특한 동화풍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서 이채로웠다.
주문한 오무라이스. 약간 갈색 빛이 감도는 소스는 아마도 데미그라스 계열이었겠고, 겉보기에는 일단 평범한 인상이었다.
오무라이스에 따라나온 우동 국물. 크게 특색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평범하게 상상할 수 있는 우동 국물맛.
오무라이스의 달걀부침을 갈라 풀어헤쳐봤다. 가격대가 가격대인지라 속의 볶음밥에는 채썬 당근과 양파 같은 채소 고명이 전부였는데, 다만 맛은 꽤 독특했다. 중국집에서 시켜먹는 오무라이스 스타일이었는데, 탕수육을 잘한다고 써붙인 것이나 짜장볶음밥, 짬뽕밥 같은 중국집 메뉴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에서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주방장 분이 중국집에서 근무하신 경력이 있거나, 아니면 중식과 한식을 모두 배운 경력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인 듯 싶다.
9월 서코 예매권을 사기 위해 홍대 쪽에 갔다가 두 번째로 들렀는데, 이번에는 오무라이스와 함께 개인적인 '경양식' 애호 품목의 쌍벽을 이루는 돈까스를 주문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다섯 종류의 밑반찬이 먼저 식탁에 깔렸다. 다만 예전과 달리 어묵볶음의 양이 꽤 되는 편이었고, 오징어채무침 대신 깻잎장아찌로 보이는 것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우동 국물과 밥 한 공기. 보통 돈까스를 시키면 밥과 돈까스가 같은 접시에 담기는게 예사지만, 여기서는 그냥 밥을 따로 주고 있었다.
돈까스 접시. 꽤 커 보이는 돈까스 두 조각에 채썬 양배추가 따라나오는, 비교적 단촐한 모양새였다. 다만 양배추는 흔히 아일랜드 드레싱 혹은 토마토 케첩과 마요네즈가 같이 뿌려지는 다른 집과 달리 케첩만 뿌려서 내왔다. 돈까스 위에 뿌린 소스는 오무라이스에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을 쓰는 모양이었다.
물론 크기가 커보인다고 해서 고기까지 일본식으로 두툼한 것은 아니었다. 얇은 고기를 튀겨낸 전형적인 한국식이었고, 오무라이스에서 맛본 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하지만 별도로 얘기 안했음에도 꽤 눌러 담은 공기밥과 밑반찬의 포스가 더해져 상당히 배가 불렀는데, 결국 밑반찬은 다 못먹고 대부분 남기고 말았다.
전형적인 대학가 식당 다운 모양새와 음식이었는데, 물론 이런 곳에서 일반적인 통념 이상을 바라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식당의 강점은 일단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양에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싼 것만 찾아다니는 고상치 못한' 내 취향에는 일단 맞는 집 같다. 다만 홍대를 예전처럼 뻔질나게 가는 것도 아니라서, 얼마나 더 찾아갈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