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 쯤 포스팅한 회락춘 이후로 거의 네 달 동안 요 시리즈 글이 없었는데, 물론 그 동안 아예 못간 것도 있고 해서 결국은 시즌 5가 되었다. 사실 이번에 갔던 가게 때문에도 밀릴 수밖에 없었는데, 장소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갈 때마다 헛걸음을 쳐서 결국 들어가 먹어본 것은 ZD(Zertifikat Deutsch) 필기시험 끝난 11월 중순에나 가서였다.
이번에 간 곳은 제목 그대로 '공원장' 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인데, '~장' 이라는 이름만 보면 뭔가 중국집 삘이 나지만 이번엔 아니다.
서소문 철도건널목 근처에 자리잡은 집인데, 큰길에 고가도로가 그늘을 만들고 있어서 제대로 알고 가지 않으면 헛탕칠 가능성이 꽤 있다. 가장 안전한 루트는 2호선 충정로역 3번 출구로 나와 큰길 따라 쭉 걷는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예전엔 꽤 낡은 간판이 걸려 있었지만, 어느 시점엔가 새롭게 디자인한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다만 하얀 타일로 뒤덮인 건물 자체는 꽤 오래된 분위기를 여전히 풍기고 있어서, 간판이 꽤 튀게 보인다. 오늘의 목표 메뉴인 볶음밥도 '명품 볶음밥' 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표기되어 있고.
1층과 2층을 모두 쓰고 있었는데, 2층은 주로 단체 손님들을 받는 공간이었다. 1층은 테이블 네 개 정도가 있는 공간과 온돌방으로 된 공간 두 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테이블에서 먹고 가려고 했지만 단체 손님들이 많았던 관계로 온돌방에 들어갔다.
온돌방은 주인 내외분이 영업 안할 때 생활 공간으로 쓰고 계신 것 같았는데, 상만 치우면 그냥 집안 방 분위기가 날 정도로 소박했다.
방 한 켠에 붙은 메뉴판. 왼쪽이 식사류, 오른쪽은 안주류로 여겨지는데, 식사류 가격은 모두 5000원으로 통일되어 있다. 물론 이번에 들어가자마자 시킨 것은 볶음밥. 사실 찌개나 백반을 내놓는 가정식 음식점은 한국 어딜 가도 쌔고 쌨지만, 좀 뜬금 없이 볶음밥까지 있는 집은 내가 가본 한 여기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메뉴판 여백을 채우려고 단순히 곁다리로 넣은 것이 아님은 곧 알게 되었고.
우선 뜨끈한 보리차와 밑반찬부터 받았다. 밑반찬은 보이는 대로 콩자반과 감자(혹은 고구마) 볶음, 얼갈이 배추김치, 소시지 부침, 멸치볶음, 김칫국으로 되어 있었다.
볶음밥 한 접시. 짤방만 봐서는 가늠할 수 없겠지만, 의외로 양이 꽤 되었다. 채썬 파와 당근, 달걀, 오징어, 새우가 밥과 고슬고슬하게 볶여 나왔는데, 웬만한 중국집 삼선볶음밥에 버금가는 모습이라 놀랐다. 게다가 소위 볶음밥 매니아들의 미각을 자극시키는 '불맛' 도 느껴졌는데, 갓 만든 거라 꽤 뜨거웠지만 쉴새없이 입에 때려넣기 시작했다.
정말 이걸 먹으려고 몇 달을 기다렸는지. 사실 여기 영업 시간에 맞춰 가는 것은 가게 근처 회사원이나 근로자, 동네 사람 아니면 그리 쉽지 않은 미션인 것 같다. 일단 식사 시간에 맞춰 문을 여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밥때 아닌 애매한 시간에 가면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그리고 휴일에는 높은 확률로 열지 않고 있었고. 결국 학원 수업이 12시에 끝나는 날 맞춰 '이번에 못 먹어보면 그냥 잊어버리자' 는 각오(???)로 찾아간 것이었고,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다.
맛도 맛이었지만, 값도 일반 중국집과 비교하면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 왜 호평을 받는 지 알 만한 메뉴였다. 다만 가끔 씹혀나오던 오징어 뼈가 좀 걸리기는 했지만. 볶음밥 외에는 청국장도 꽤 많이 나가는 메뉴 같았는데, 들어가자마자 꼬릿한 냄새가 풍겨나왔던 걸 보면 그런 것 같다.
상을 비우고 값을 치른 뒤 소화 좀 시키려고 충정로역까지 걷기로 했다. 경찰청을 끼고 서대문로터리를 지나 올라갔는데, 2호선 충정로역도 아니고 5호선 충정로역에서 가까운 이 길을 택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였다.
길거리에서 파는 튀김과자 종류를 대충 생각해 보면 고로케나 단팥도넛, 꽈배기 정도가 떠오르는데, 실제로 동네 분식집에서도 열이면 아홉은 이런 구색을 맞춰서 장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쪽 길을 지나다가 본 어느 허름한 가게에서는 좀 다른 것을 내세워 팔고 있었다. 바로 추로스.
밀가루 반죽을 톱니 모양 틀에 뽑아 기름에 튀긴 과자인데, 얼핏 보면 그냥 튀김도넛이랑 비슷하고 실제로 만드는 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설탕과 계피가루를 뿌려 뜨거울 때 먹으면 꽤나 각별한 맛이고. 원산지인 에스파냐에서는 아침 식사로 이걸 걸쭉하고 뜨거운 핫초콜릿에 찍어먹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놀이공원 같은 곳에서 군것질을 해 본 사람이면 이름만 들어도 뭔지 알 만한 먹을거리고.
다만 놀이공원에서 사먹을 수 있는 비싼 추로스가 아닌, 길거리에서 꽤 싼 값에 사먹을 수 있는 추로스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추로스 가게. 물론 여기도 영어식 발음인 '츄러스' 라고 써붙이고 있었다. 길거리 음식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굵기는 좀 가는 편이었고 길이도 11cm 정도로 짧은 편이었는데, 다섯 개에 1000원을 받고 팔고 있었다. 그 외에 호두과자나 단팥도넛, 고구마튀김 같은 것도 팔고 있었지만 그냥 추로스만 공략해 2000원어치를 사들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 접시에 담아본 추로스들. 2000원이라면 열 개를 포장해 줬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덤으로 하나 더 끼워준 것 같았다. 비록 짧고 가늘기는 했지만 설탕과 계피가루라는 필수 옵션은 적절히 갖추고 있었고,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먹어보니 천국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신촌이나 홍대 갔다올 일 있으면 들러서 잔뜩 사오고 싶을 정도다. 만드는 방법도 그냥 튀김과자랑 별다를 바 없는데 왜 이리 찾아보기 힘든지 원.
아직 구술 시험이 하나 남아 있어서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일단 필기와 청취 시험을 모두 보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홀가분한 상태다. 한 달 넘게 개점휴업이었던 블로그질을 다시 재개할 마음도 겨우 생겼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