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같이 거의 기존 시판품으로 끓이는 국수 말고,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대중적인 국수는 가는 면발의 잔치국수와 굵은 면발의 우동(가락국수) 정도다. 물론 냉면이나 막국수 같은 것도 있겠지만, 적어도 따끈한 국수를 차가운 국수보다 더 선호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근데 우동은 이곳저곳에서 자주 먹는다고 해도, 이상하게 잔치국수를 사먹어본 적은 별로 없다. 두꺼운 면발의 우동에 비해 좀 양이 적어보여서인데, 그러면 양 많은 곳에 가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종로통 골목 한 군데에 내가 원하는 그런 곳이 있다고 해서 가봤다.
80~90년대에 라디오만 틀면 흔히 들을 수 있었던 광고로 유명한 보령약국 골목에 있다고 했는데, 1호선 종로5가역에서 종로3가 방향으로 난 지하상가를 통해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약간 너른 쪽을 지나 계속 걷다 보면,
이렇게 여러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왼편에서 가게를 찾아볼 수 있다. 가게 이름은 '소문난 국수집'. 얼마나 소문이 났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 쪽을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골목을 주의깊게 다녀보지 않았던 내게는 요 근래에야 처음 들었던 소문일 뿐이었다.
좁다란 건물 통로에 바짝 붙듯이 위치한 작은 가게였는데, 1층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주로 소면을 삶아 만드는 국수를 요리하고 계셨다. 주방 외에 벽을 마주하고 앉아 먹는 공간도 있었지만, 일단 올라가서 먹기로 했다. 윗 짤방이 그 공간에 붙어 있는 메뉴판인데, 이런 저런 국수 종류에 떡국과 만두국, 김밥 종류가 끼어 있는 분식집스러운 모양새다. 다만 떡볶이나 순대는 없었다.
약간 가파른 계단을 올라와 보니, 다락방같은 구조의 또 다른 식사 공간이 나왔다. 사람들은 주로 여기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통로 일부를 갖고 만든 아래층보다야 넓지만 그렇다고 크다고는 볼 수 없는 규모였다. 아래 짤방은 2층 주방 쪽인데, 여기서는 주로 떡국이나 라면 같은 음식을 요리하고 있었다.
완연한 겨울 날씨다 보니, 사람들은 대부분 라면이나 국수 같은 따뜻한 음식을 주로 들고 있었다. 갑자기 라면이 땡겨왔지만, 일단 오늘 목표는 가느다란 잔치국수, 그러니까 여기서는 멸치국수라고 불리는 것이었으니 그걸 주문했다.
찍을 때 삑사리가 나서 꽤 흐릿한 수저통과 양념통. 알루미늄 통에는 양념간장이, 자그마한 유리 양념병과 빨간색 양념통에는 각각 후춧가루와 고춧가루가 들어 있었다. 수저통에 같이 꽂혀있는 것은 튜브형 겨자소스였는데, 냉면 같은 찬 국수에 풀어먹으라고 준비해놓은 것 같았다.
주문한 멸치국수. 짤방만 봐서는 모르겠지만, 알루미늄 그릇이 꽤 크고 깊어서 굉장히 푸짐해 보였다. 물론 금속제 그릇인 만큼 어설프게 손으로 잡으려다 뜨거워서 혼났고. 가격대가 가격대이다 보니, 고명은 김가루와 송송 썬 파가 전부다. 반찬도 배추김치 한 종지.
미니멀리즘스러운 음식 셋팅은 아무래도 좋았고, 일단 고춧가루를 팍팍 풀어넣고 끌어넣기 시작했다. 물론 특별히 신의 한 수를 두는 듯한 맛은 아니었지만, 개운한 멸치 육수와 꽤 많은 양의 국수 사리, 내 입맛에 딱 맞는 신김치가 적절하게 박자를 맞춰준 덕에 뜨겁기는 해도 쉴새없이 입에 우겨넣었다.
골목에 있는 가게이기는 해도, 주변에 옷감이나 이불감을 수선하거나 도매하는 가게가 많아 단체손님이 월등히 많은 편이었다. 내가 절반 쯤 비우고 있을 때도 근처의 회사 혹은 공장 사람들로 보이는 여덟 명의 손님들이 무리지어 올라왔다. 혼자 4인용 식탁을 차지하고 있기 뭣해서, 주방 맞은편에 소금 포대와 온열기 등을 쌓아놓았던 식탁으로 옮겼다. 물론 자진해서.
윗층 주방 아주머니께서 좀 미안했는지 남은 국물에 밥이라도 말아줄까 하고 물어보셨지만, 푸짐한 국수 사리로 배가 불어난 터라 사양했다. 국물과 김치를 모두 해치운 뒤, 3000원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다. 같은 값에 먹어본 시래기국밥과 마찬가지로, 단순해 보여도 보이는 만큼의 맛과 양이라면 별 불만없이 만족스럽게 먹어치울 수 있다는 진리(?)를 확인한 셈이었다.
앞서 쓴 대로, 종로5가역에서 바로 이어지는 지하도 출구로 나가면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다음이건 위의 네이뷁이건 지도를 보면 그냥 지하철 출구만 있지, 연계 지하도 출구 정보는 하나도 없는 불친절함을 보여준다. 어차피 지하철 출구로 나와도 그리 오래 걷지는 않지만.
다음 가게들도 비슷비슷한 컨셉인데, 콩나물밥이라던가 돼지불고기백반, 두부나 비지요리도 눈길을 끌었고 '코렁탕' 이라는 신조어로 유명한 설렁탕 식당도 있다. 어디를 갈 지는 그 때 기분과 본능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튼 다음 번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