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이 시리즈 13편의 댓글에 달린 추천 음식점 중 한 곳을 방문해 봤다. 12월 25일에 서코 끝나고 3호선 연장 구간을 이용해 갔다왔는데, 좀 복잡한 상념이 얽혀 있었다. 일단 '마지막 코믹이 될 것이라는' 마음에 괜히 기분이 약간 우울한 상태였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위치를 찾아보지도 않고 갔기 때문에도 확신이 안서는 상태였다.
어쨌든 후달리는 기억력을 되살려 5호선 굽은다리역에 있는 주변 약도를 보고, 대충 찍어맞춰 1번출구로 나갔다. 이유는 병기된 지명이 간지나서? -,.-
하지만 나와서도 여전히 '출구 나온 방향으로 쭉 걷기만 하면 되는 건가?' 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나와서 뒤돌아 보면 보이는 사거리 주변을 기웃거리며 어느 쪽으로 갈 지 망설여야 했다. 하지만 제법 쌀쌀한 날씨 때문에 뭐가 됐던 발을 움직여 추위를 잊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일단 다시 1번출구 나온 방향 그대로 쭉 걸었다. 걷는 도중에 보도에 박힌 특이한 이정표. 굽은다리역으로 향하는 방향과 거리가 새겨져 있다. 계속 자기 확신이 안선 상태로 걷다가 아파트를 지나고 나니 뭔가 가게 이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야 정말 제대로 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바로 여기가 이 날 목표였다. 얼핏 보면 왠지 1980년대 유행했던 소위 '가든' 류 고깃집 분위기가 풍기는 2층짜리 음식점이었는데, 뭔가 패밀리 레스토랑 분위기도 풍기고 해서 '여기 왠지 코스 요리만 되는 곳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노파심이 들었다. 그렇다고 완전 쓸데없다고 하기도 뭐한게, 들어가면 일단 동네 중국집보다는 뭔가 격식을 갖춘 요릿집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었다.
점심 때를 좀 지나서 갔기 때문인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혼자 갔기 때문에 그냥 1층 창가의 양식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았는데, 모든 테이블에 이렇게 인원 수 딱맞춰서 개인 접시 둘과 받침대에 고여 나오는 고급 나무젓가락, 테이블 냅킨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가게 내부 모습.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정돈된 분위기가 위압감까지 줄 정도였다. 지배인으로 보이는 남자분은 말끔한 양복 차림이었고, 서빙하는 두 여종업원들도 유니폼을 맞춰입고 돌아다니고 있어서 이것 만으로도 굉장히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어차피 먹을데 쓸 돈도 별로 없었고, 애초에 먹어보자 한 메뉴는 볶음밥이었으니 메뉴판에서 식사 메뉴 쪽을 재빨리 찾아 새우볶음밥(6000\)을 시켰다. 곱배기 시킬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기분 탓인지 그리 심하게 배가 고프지는 않아서 그냥 보통으로 하기로 했다. 메뉴 가격도 다른 곳보다는 좀 센 편이라 그렇기도 했고.
여기의 독특한 점을 또 하나 쓰자면, 이렇게 유달리 높이 쌓아올린 냅킨통이 식탁마다 비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 좀 멀리 앉아있는 사람도 집기 편하라고 높게 쌓은 것 같은데, 일부러 잡아흔들거나 흩뜨리지 않는 한 무너지지도 않게 셋팅되어 있어서 장인정신(?)까지도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뻘쭘하게 있다 보니 볶음밥이 나왔다. 새우볶음밥이니 만큼 새우살 네 조각이 고명으로 얹어져 나왔다. 신신원처럼 볶음밥에 흔히 곁들여 나오는 짜장이 여기서는 제공되지 않았고, 국물도 계란탕으로 나왔다. 볶음밥 윗쪽에 있는 반찬들은 왼쪽부터 배추김치, 자차이와 단무지인데, 지금까지 가본 중국집 중에 유일하게 자차이를 내오는 집이라 흥미로웠다. 다만 자차이에는 개인적으로 혐오해 마지않는 오이채가 섞여 있어서 손도 못댔지만.
짜장을 내오지 않아서 그런지 볶음밥 간이 다른 곳보다는 좀 더 짭짤하게 되어 있었다. 재료도 밥에 잘게 썬 파, 당근, 달걀, 새우라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컨셉이었는데, 볶음밥이라면 응당 갖춰야 하는 고슬고슬한 기본 식감은 지키고 있었다. 다만 좀 더 '불맛' 이 느껴지도록 바짝 볶여져 나왔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고. 그리고 너무 쫄아버린 채로 들어간 탓인지, 맛을 음미하기가 그다지 쉽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건 사실 소심한 내 자신의 문제지만.
아무튼 반찬 빼면 밥이고 국이고 깨끗하게 비운 후 계산을 하고 나왔다. 사실 분위기가 고급스러워서 그렇지, 창가 쪽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짜장면이나 짬뽕, 볶음밥 같은 소위 '식사류' 를 편안히 들고 있었다. 어차피 코스로 먹는 사람들은 여럿이서 와서 대부분 넓은 원탁이나 온돌방 쪽에 자리를 잡으니, 그 쪽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내가 먹고 싶은거 눈치볼 필요 없이 시켜먹고 제값 내고 나오면 될 일이다.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지나간 근처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있던 포스터. 요즘 건강 관리가 이슈라 그런지 이렇게 웬만한 곳은 계단으로 다니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뻔질나게 걸어다니기는 하지만 먹는 양이 좀처럼 줄지 않으니 체중은 늘 제자리 걸음인 상태인데, 그놈의 단것에 대한 유혹은 정말 뿌리치기 힘들어서 문제다. 물론 단것 만이 문제도 아니고, 방금 기름으로 볶은 볶음밥을 먹고 왔으니.
다음 방문지도 마찬가지로 여기와 함께 소개받은 노량진 인근의 가게로 정했다. 다만 이 쪽은 고시촌이 많은 동네 특성상 북경프라자같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절대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데, 특이하게 국수 종류는 안팔고 밥 종류만 파는 곳이라고 한다. 아마 이 쪽 분위기상 가격도 그리 비싸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일단 오이만 안넣고 볶으면야 부담없이 먹을 수 있겠고.
*이 글과 상관은 없지만, 푸념 비슷한 쓴소리 좀 하고 싶다. 티스토리 메인 화면의 카테고리에 쓴 지 한참 된 글들이 날짜랑 시간만 바꿔 계속 올라오는 모습을 꽤 많이 볼 수 있는데, 특히 모 블로거가 그런 식으로 계속 메인에 노출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던 모 라면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변했다. 게다가 이런 블로거가 한둘이 아니고, 비슷한 짓을 하던 블로거는 심지어 올해 티스토리 우수 블로거에까지 선정되었더라.
하도 짜증나서 운영진 쪽에 신고넣었더니 이용 약관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짤막한 답장 뿐이었다. 약관의 헐거움이라는 개인적인 견해는 접어두더라도, 자신의 블로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나, 혹은 특정 상품에 대한 리뷰를 오래 올려두어 광고 효과를 보기 위해 이런 식으로 노골적인 동어반복을 일삼는 행동 자체가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하긴, 분명히 영리 목적을 가진 기업의 상업적 홍보 블로그도 용인되는 세상에 내가 너무 민감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