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에 한 포스팅 이래로 한 달 넘게 블로그를 쉬고 있었다. 물론 이유는 난생 처음 겪게 된 외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귀찮아서. 사실 정기권 끊고, 선불폰 구입해 개통하고, 비자 받고, 은행계좌 트고 하는 것에서 굉장한 난관에 봉착하기는 했지만, 큰 문제나 어려움 없이 모두 완수해서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다.
일단 한 달을 넘기고 나니 나름대로 내가 이 곳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뒤집어서 내가 타국에서 한국인을 볼 때의 관점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대충은 알게 되었다. 음식 문제로 고생하려나 싶기도 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하고 있는 것 같고. 다만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먹었던 것을 여기서 먹으려면 몇 배나 되는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독일에서 맛볼 수 있는 소박하면서도 특색있는 것들을 먹는 재미로 그 욕구를 억누르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하려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포스팅 거리 하나가 있어서, 한국에서 먹었던 것에 대한 그리움을 무릅쓰고(???) 적기로 했다. 제목 그대로 한국에서는 정말 '사소한' 먹거리 중 하나인 한솥도시락.
한솥 같은 경우에는 처음 나왔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타 경쟁 도시락 업체와 달리 박리다매를 추구하고 있어서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나 자취생들의 끼니를 지금도 많이 해결해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나는 그다지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는데, 독일로 떠나기 대략 한 달 전부터 '정기적으로' 이 곳에서 한 끼를 때웠다.
한솥 메뉴 중에 내가 좋아하는건 튀김 종류가 메인이 되는 도시락들이다. 그 중에 돈까스도시락. 가격이 가격인 지라 왠지 다진 고기를 넣은 민치까스가 들어가나 싶겠지만, 의외로 고깃살이 씹히는 순살돈까스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주는 메뉴. 물론 여기 독일에도 슈니첼(Schnitzel)이라는게 있지만, 특별한 소스 없이 먹고 훨씬 얇아서 느낌 자체는 많이 다르다.
햄버그도시락. 돈까스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두툼한 햄버그스테이크가 두 조각 들어간다. 햄버그의 원조(?) 함부르크가 위치한 이 곳에서도 햄버거는 그리 어렵잖게 구경할 수 있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외식을 자제하고 있어서 여태껏 한 번도 안먹어봤다. 대신 비슷한 느낌의 다진고기로 만든 완자인 프리카델레(Frikadelle)로 분위기를 내고 있지만.
치킨도시락. 한솥의 도시락 조리법이 재일교포가 세운 일본 도시락 체인점 '혼케카마도야' 에서 전수되었다는 것은 거기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들어가는 닭다리살 튀김은 한국의 프라이드 치킨보다는 일본의 카라아게에 더 가깝다. 프라이드 치킨 식감을 기대하고 먹다가 짭짤한 간 때문에 당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지만.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먹었던 칠리탕수육도시락. 매운 소스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메뉴라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심하게 맵지 않았고 매운맛 덕에 튀김의 느끼함이 상쇄되는 효과가 있어서 그럭저럭 괜찮게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위 메뉴들을 적당히 조합한 돈까스도련님도시락과 칠리포크도시락. 어차피 기존 메뉴들을 조금씩 골고루 섞은 '정식' 메뉴라 딱히 특별할 것은 없다. 하지만 독일에 한솥도시락 체인점이 있을 리 없으니...11월 말에 다시 돌아가면 먹을 수는 있겠지.
그리고 출국 이틀 전에는 어느 지인과 홍대 근처에서 만나서 가족 외의 사람과는 마지막으로 '입을 즐겁게 할 기회' 를 가졌다. 없어진 멘야도쿄 대신 오자와에서 먹은 미소카츠동. 오자와에서 뭘 먹어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는데, 다만 양이 기대보다는 그다지 많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미소카츠라 그런지, 다른 돈부리들과 달리 달걀과 양파를 줄알쳐 풀지 않고 채썬 양배추를 밥과 돈까스 사이에 얹어낸 모습이었다. 물론 독일에서 일본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라는 이 곳에도 일본식 돈부리 가게들이 있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가격이 깡패라 쉽게 접근하지도 못하고 있다. 어딜 가나 돈이 문제.
오자와에서 식사를 마치고 수다떨기 위해 택한 상상마당 근처의 델문도. 여기도 마찬가지로 직접 가서 뭔가를 주문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택한 음료는 베일리스 핫초코. 원체 단거 좋아하는 데다가 살짝 알콜 기운이 도는 것이 은근히 땡겼다. 그리고 호기심에 코냑 넣은 사각 모양의 생초콜릿까지 안주(?)삼아 시켜서 나눠먹었다. 마지막 만찬이라고 생각하니 돈 걱정은 없었고, 아예 고국을 등지자고 떠나는 것도 아니라 크게 아쉬움은 없었다.
애석하게도 여기서는 디카로든, 아니면 폰카로든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여기서 뭘 어떻게 쳐묵하고 있는지는 인증(??)이 불가능한 상태다. 하긴, 어차피 브뢰첸 쪼개서 만드는 볼품없는 샌드위치나 밥알 풀풀 날리는 값싼 안남미로 지은 밥에 간단한 반찬과 샐러드 곁들여 먹는 단조로운 식사의 연속이니 굳이 사진 찍을 필요도 없어 보이고.
하지만 빵이고 뭐고 일단 생긴 그대로의 맛이고 계속 반복해서 먹어도 그리 질리지는 않다는 것이 다행이면 다행이다. 물론 처음 생으로 먹었다가 '이거 뭐여 ㅅㅂ' 이라고 생각한 자우어크라우트나 마요네즈를 연상시키는 묘한 맛으로 GG친 버터밀크처럼 실패 사례도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식료품 값은 비싸지 않아서 다행인데, 특히 과일 들어간 저지방 요구르트의 경우 한국보다 양도 많고 값도 싸서 하루 하나씩은 꼭 먹고 있다. 장출혈성 대장균(EHEC) 때문에 생으로 먹기 전전긍긍해하던 토마토 같은 과채류도 날걸로 잘만 먹고 있고. 날씨도 가끔 땡볕 오지게 쬐이고 낮 최고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가는 변태같은 날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날이 별로 많지 않아서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시원하게 지내고 있다. 여름 날씨에 늘 축 처지는 체질이라 이 때 도피한(???)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이니.
외지 환경과 조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사느냐가 외국 생활을 편하게, 혹은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 물론 독일도 사람 사는 곳인 만큼, 귀찮고 짜증나는 일도 없을 리는 없겠고. 특히 관공서 등에 일을 보러 갈 때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데, 우선 독어 청취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실수 안하려고 움츠렸다가 할 말도 못하고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아직까지 불편하고 부당하다고 느껴본 적은 거의 없다. 이 곳의 룰이니까. 11월까지 살아본 뒤 불편하지 않고 익숙해질 수 있겠다 싶으면, 나가고 들어가고 하는 것도 익숙해 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