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으로는 발레에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영화 '백야' 에서 열연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나 이번에 소개할 루돌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 1938-1993)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누레예프가 춤을 춘 영상물을 아직 하나도 못봐서 그가 얼마나 전설적인 발레리노인지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대신 그가 말년에 지휘대에 섰을 때 남긴 유일한 음반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누레예프는 발레 인생을 시작하기 전에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피아노, 아코디언 등의 연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발레리노의 길을 택하면서 음악인의 꿈은 접어야 했는데, 그 이후에도 취미로서 클래식 음악에 상당히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소련 시절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발레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개인적으로 피아노 연주법을 배우고 헌책방에서 오래된 악보나 음반을 사들이는 등 이 분야에 대한 '덕질' 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초짜 무용수로 쥐꼬리만한 월급과 배급으로 연명하던 시절에 말이다.
1961년에 프랑스로 망명한 후 재정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되자, 누레예프는 집에 피아노와 하프시코드를 사들여 놓고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비롯한 곡들을 연습하곤 했다. 물론 그 후에도 누레예프의 본업은 발레리노였고, 음악은 여전히 발레를 위한 수단이자 취미 정도였다.
하지만 누레예프는 1980년대 초반 경 유럽에 상륙한 AIDS에 걸리게 되면서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가서는 춤을 추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이미 그 전부터 칼 뵘이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등에게 개인적으로 지휘를 배우고 있었지만, 발레리노로서의 인생이 사실상 끝났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했는지 1980년 후반에 본격적으로 지휘 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91년 1~2월 동안 미국의 록퍼드와 내시빌, 유타에서 열린 '누레예프와 친구들' 이라는 제목의 공연들에서 차이콥스키의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서곡과 그랑 파드되 두 곡을 시험삼아 지휘한 뒤, 누레예프는 자신의 국적지인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가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현직 단원들과 지휘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실질적인 지휘법을 배웠다.
약 4개월 동안의 준비와 연습을 거쳐 1991년 6월 25일에 누레예프의 공식 지휘 데뷰 음악회가 빈 아우어스페르크 궁전의 로젠카발리에잘에서 열렸다. 프로그램은 하이든의 교향곡 73번 '사냥' 과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4번(협연자 불명),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로 되어 있었고, 연주한 악단은 빈 레지덴츠 관현악단(Wiener Residenzorchester)이라는 이름의 실내 관현악단이었다.
비록 발레리노가 무슨 지휘냐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누레예프는 바라던 바를 이루었다. 이 공연의 실황은 전부 녹음되었고, 누레예프 사후에 이런저런 음반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내가 독일 아마존에서 찾아본 음반은 해적판삘이 농후한 '클래식 아트(Classic Art)' 라는 재미없는 이름의 이탈리아 레이블을 달고 있었고, 중고와 신판이 각각 4유로 대와 5유로 대라는 염가로 판매되고 있었다. 정말 누레예프 지휘의 녹음인지는 의심이 갔고 산 뒤에도 그랬지만, 일단 그보다는 비싼 다른 음반 한 장과 함께 질렀다. 그리고 이게 독일에 온지 3개월 만에 내 의지로 직접 구입한 첫 음반 중 하나가 되었다.
음반에는 연주 곡목과 재생 시간, 연주 단체 정도가 적힌게 전부였고 녹음 일자나 장소, 제작진은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누레예프 재단 홈페이지의 지휘 기록을 통해 정확한 녹음 일자와 장소를 알 수 있었다. (다만 여기도 모차르트 협주곡의 협연자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위 홈페이지에 있는 지휘자로서의 누레예프를 서술한 대목을 보면, 처음에 악단 단원들 중 몇몇은 그렇게 마음에 내켜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하긴, 지휘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시작한 초짜 지휘자도 아니고 전설적인 발레리노가 한 번 '외도하기' 위해 자기들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누가 기분이 좋으려나. 하지만 연습을 시작하면서 누레예프의 열정과 재능에 탄복해 마음을 돌렸다고 하는데, 저게 거장에 대한 예우를 위한 서술인지 단원들의 진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음반을 통해 들어본 바로는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전문 지휘자들보다는 좀 밋밋하고 때로는 아인자츠(곡의 시작 전에 저어주는 예비박)가 허술하게 들어가는지 살짝 흔들리는 첫박 등의 헛점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음악에 대한 감각이 요구되는 발레리노 생활에서 얻은 경험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듯 보인다.
녹음은 공연 시작 전의 박수 소리까지 포함해 하룻 동안의 실황을 그대로 담은 것이라 덜 정제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는데, 객석의 소음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간 대목이 더러 있다. 공연장이 전문 콘서트홀이 아니라 궁전의 큰 공간을 전용한 것이라 그런 것 같은데, 객석의 소음 외에도 현악 합주의 기능성이 최대한 발휘되어야 하는 차이콥스키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다소 해이한 합주력이 아쉬운 편이다.
이후에도 누레예프는 유럽과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계속 지휘 활동을 했고, 1992년 5월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을 지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레예프의 몸은 발레는 물론이고 지휘도 하기 힘들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고, 결국 두 달여 뒤인 1992년 7월 17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대학 관현악단의 연주회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발췌와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 을 지휘한 것이 마지막 지휘 무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