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틴트너가 낙소스에 남긴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과 사후 발매된 추모 에디션을 CD든 유료 wav 다운로드 파일이든 모두 소장하고 있는데, 다만 낙소스 외의 음반사에서 나온 것들은 한국에서 정말 찾아보기 힘들어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독일에 와 있는 동안에라도 몇 개 건지고 싶었는데, 틴트너의 브루크너 교향곡 녹음들 중 6번이 도이체 샬플라텐이라는 독일 음반사에서 나온 것을 확인하고 독일 아마존을 검색해 보았다. 다만 여기도 이미 절판 혹은 폐반되었는지 중고반도 재고가 얼마 없다고 되어 있었고, 메디몹스(Medimops)에서 위탁 판매하던 중고반이 가장 싸고 독일 현지 배송이라 배송비도 훨씬 덜 든다는 점을 감안해 질렀다.
ⓟ 1994 Deutsche Schallplatten
내가 아는 한, 이 음반은 틴트너 지휘의 브루크너 녹음 중 유일하게 낙소스 외의 음반사에서 나온 CD다. 물론 이보다 약 12년 전에 캐나다의 주발(Jubal)이라는 음반사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의 미개정판 북미 초연을 했을 때 녹음한 실황이 있기는 하지만, LP로만 나왔고 그 후로 CD 재판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 없는 상태다.
틴트너가 낙소스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음반 작업을 시작하기 약 3년 전인 1992년 9월에 만든 녹음인데, 체코 동부 츨린(Zlín)을 본거지로 하고 있는 관현악단인 보후슬라프 마르티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Filharmonie Bohuslava Martinů)를 지휘했다. CD 속지에 있는 틴트너 프로필을 보면 이 녹음이 어떻게 해서 제작되었는지 유추할 수 있는데, 전년도에 츨린에서 열린 국제 지휘자 워크숍에 참가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아마 이 때 이 악단과 처음 공연하고 음반 제작 기회를 잡은 것으로 여겨진다.
공교롭게도 틴트너가 낙소스 브루크너 사이클을 시작할 때 가장 처음 녹음한 곡도 6번 교향곡이었는데, 다만 틴트너 자신은 낙소스에 직접 집필한 속지를 보더라도 이 곡에 대해 어느 정도 비판적인 견해를 가졌던 것 같다. 특히 4악장의 구조와 응집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는데, 그럼에도 브루크너 교향곡 중 두 번 이상의 녹음을 남긴 것은 이 6번과 8번 뿐인 점이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여러 모로 뉴질랜드 교향악단을 지휘해 만든 낙소스 녹음과 비교 혹은 대조해 듣는 재미가 있는 음반이었는데, 체감상 큰 차이는 아니지만 전반적인 템포는 이 샬플라텐 녹음이 약간 빠른 편이다. 연주 기조는 두 녹음 모두 비슷하지만 샬플라텐 쪽이 약간은 더 역동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는데, 다만 낙소스나 샬플라텐이나 기용한 악단의 역량이 브루크너 연주에는 약간 부족해 보인다는 아쉬움은 매한가지였다.
속지는 마치 염가반 마냥 매우 간단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일반적으로 음악학자나 기타 음악 관계자가 직접 음반 발매에 맞춰 집필하는 오리지널 라이너 노트 대신 1/2차 사료들을 인용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차례대로 브루크너가 6번 교향곡의 부분 초연 직전이었던 1882년 10월 13일에 레오폴트 호프마이어에게 보낸 편지, 음악평론가 요제프 쇼이가 1899년 3월 2일 '노동자 신문' 에 게재한 전곡 초연의 비평, 전곡 초연 지휘자였던 말러가 1890년에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브루크너에 대한 회상, 브루크너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이었던 프란츠 샬크가 브루크너 교향곡의 구조와 전개에 대해 쓴 에세이, 루돌프 루이스가 집필한 브루크너 전기의 6번 교향곡에 대한 내용이 발췌되어 실려 있다.
브루크너 자신이나 주변인, 당대 인사들의 자료를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꽤 쏠쏠한 재미를 주는 편집이지만, 달리 보면 제작비 절감을 위해 저작권 기간이 만료된 자료들을 성의 없이 때려넣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반면 지휘자나 악단 소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당시 최신 자료들을 썼는지, 녹음이나 음반 출반 직전의 상황들이 들어 있다. (틴트너 프로필에는 그 당시 최신 음반들인 필립스 제작의 베토벤 금관 합주 편곡집 음반과 캐나다 방송 협회(CBC)에서 진행하던 음반 제작 소식, 오스트리아 대공로훈장 수상 등이 덧붙여져 있다.)
이외에도 아직 구하지 못한 틴트너 지휘 음반들이 꽤 여러 종류 있는데, 다만 틴트너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캐나다 같이 자체 음반 제작의 빈도가 낮은 나라들에서 활동한 관계로 유럽에서 틴트너 음반을 구하기는 낙소스 발매반이 아닌 이상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오스트레일리아 시절 만든 LP나 오페라 공연의 해적반은 엄두도 못내고 있고, 그저 필립스반이나 CBC에서 낸 'Late Romantics',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방송 협회(ABC)에서 낸 돈 케이(Don Kay)라는 작곡가의 '그 곳은 섬' 이라는 합창곡 녹음의 CD들 정도가 다음 공략 대상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