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귀국하기 전에 꼭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 돈까스와 짜장면, 그리고 순대국 혹은 순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를 넘긴 지금까지 짜장면은 먹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돈까스와 순대국은 재빨리 입에 댔고.
버드나무집에서 오랜만에 순대국을 먹은 뒤, 신세계백화점 명동점 뒷편에 뭔가 특색있는 순대국을 판다는 집이 있다고 해서 구글로 약도를 알아본 뒤 지난 달 5일에 처음 찾아가봤다.
밤에 갔기 때문에 짤방 화질은 네온사인에 가려서 시망이지만, 모 편의점과 '한우촌' 이라는 식당 사이에 있는 골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길 건너편에서는 그 가게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어떠한 이정표나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니 옻닭집 오른편에 있는 자그마한 간판이 보였다. 여기가 이 날 목표였던 '철산집'.
간판에 콩비지와 순대국을 표기했을 정도면 이 두 메뉴로 승부하는 집으로 여겨졌다. 저녁식사 시간 직전에 들어간 탓에 손님은 나밖에 없었지만, 순대국을 쳐묵하고 있을 때 술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등으로 미뤄볼 때 인기없는 집은 아닌 것 같았다.
메뉴판. 국내산 돼지고기와 쌀을 쓴다고 강조된 밑에 보이는 메뉴들은 안주건 식사건 예상대로 순대와 비지 위주로 되어 있었다. 순대국따로밥이 좀 궁금하기도 했고 콩비지밥 맛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들었지만, 일단 순대국이 가장 땡겼기에 그걸로 주문했다.
수저통과 후추, 소금, 다대기 등의 양념통. 다대기는 처음에 넣어서 먹을까 생각했다가 넣지 않았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에 깔린 순대국과 반찬들. 밥은 말아져 나왔고, 반찬은 마늘쫑+마늘 무친 것과 새우젓, 깍두기, 무생채로 되어 있었다.
국물은 순대국 치고는 기름기가 별로 없는 뽀얀 색이라 겉보기부터 특이했다. (이 때문에 다대기를 넣지 않고 소금간만 약간 해서 먹었다.) 게다가 돼지머릿고기 외에도 뭔가 닭고기처럼 보이는 잘게 찢은 하얀 색의 고기가 있었는데, 돼지고기 장조림할 때 쓰는 기름기 없는 퍽퍽한 살코기처럼 보이기도 해서 닭고기는 아닌 듯 싶었다. 아무튼 저렇게 기름기 적은 고기를 넣었기 때문인지 더더욱 담백하게 보였다.
다섯 개 정도 들어 있던 순대도 특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짤방으로 보기에는 허연게 잔뜩 박혀 있어서 마치 독일에서 먹은 블루트부어스트(Blutwurst)처럼 선지에 비곗살을 섞어 만든 듯한 모양새였는데, 먹어보니 비계가 아니라 두부였다. 그 동안 순대국을 먹으면서 그냥 시장표 찹쌀순대나 막창순대가 든 것에는 익숙했지만, 두부를 많이 넣어 두부맛과 선지맛이 거의 비등하게 나는 순대가 든 순대국은 처음이었다.
순대나 머릿고기, 장조림용 살코기로 추정되는 고기 외에도 허파와 간, 곱창 등 다른 부속물도 들어 있어서, 내장 요리도 큰 거부감 없이 먹는 내게 꽤 쏠쏠한 재미를 주었다. 국물이 좀 더 따끈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국물이 워낙 담백했던 탓에 좀 식었을 때도 느끼하다는 인상이 전혀 없었다. 순대국 외에 콩비지밥은 어떨까 하는 기대감도 있는데, 이건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리고 그 다음 기회에 먹어본 콩비지밥.
비지에 송송 썬 배추를 넣고 끓여낸 매우 단순한 모양새인데, 아주 곱게 갈지는 않는지 콩입자도 간혹 보였다. 하지만 콩비린내도 거의 나지 않았고, 비지 요리도 좋아하는 터라 첫인상은 괜찮은 편이었다.
물론 망설일 것 없이 같이 나온 간장 양념장을 넣고,
밥을 넣어 비벼서 해치웠다. 다만 양은 순대국에 비하면 좀 적은 편이었고, 순대국 먹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좀 더 따끈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거 빼면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비지를 먹고 싶을 때 딱일 것 같다는 생각이었고. 의외로 시끌벅적한 번화가 속에서 관광객 등 인파에 치이지 않고 조용하고 소박하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덤으로 지난 달 12일에 명동의 '향미' 에 들렀던 날 집 근처 분식집에서 먹은 순대 한 접시. 물론 평범한 찹쌀순대고 부속물도 간 뿐인 매우 단촐한 모양새였지만, 독일에서는 이렇게 단순한 한국식 순대마저 구경할 수 없었기에 일부러 시켜먹었다. 물론 맛도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순대맛이었지만, 바로 그게 내가 반 년 동안 타지에 있으면서 만끽하고 싶었던 맛이었고.
다음 편은 바로 위에 쓴 대로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집인 향미 방문기가 될 듯 하다. 그냥 흔해 보이는 중국집이라면 중국집겠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메뉴 두 가지가 내 관심을 끌었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