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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교보 핫트랙스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대합실로 올라오는 길에 뭔가 광고 간판 하나를 보게 되었다. '10번 교향곡' 이라는 제목의 소설에 관한 것이었는데, '아마도 9번 교향곡 징크스가 있는 작곡가를 소재로 쓴거겠군' 이라고 얼추 짐작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과연 그 징크스의 창시자(???)였던 베토벤의 '교향곡 제 10번' 을 소재로 쓴 통속 소설이었다. 그리고 부록으로 문제의 '교향곡 제 10번' 이 담긴 국내 미발매 CD가 동봉되었다고 나와 있었고.
하지만 그것을 보고도 부록 CD에 낚여야 겠다는 생각은 이성에서건 감성에서던 본능에서건 들지 않았는데, 이미 두 번 들어보고 실실 쪼갰기 때문이었다.
사실 베토벤이 교향곡 제 10번을 완성하지는 못했어도 계획한 것은 분명한데, '베토벤, 불멸의 편지' 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된 베토벤 서간집 발췌본을 보면 현존하는 생애 마지막 편지에 잠깐 언급되고 있다. 이미 펜을 움직일 기력도 거의 떨어져 쉰들러에게 구술시킨 편지였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전략)...교향곡에 대한 구상이 이미 끝났고, 새로운 서곡도 있고 다른 것들도 있네...(후략)"
저기서 이야기하는 교향곡은, 전작이었던 교향곡 제 9번을 영국 초연했던 런던 필하모닉 협회의 위촉을 받은 곡이기도 했다. 당연히 10번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오선지에 직접 쓴 악상이 있건 없던 간에 머릿속으로는 이미 구상을 끝냈으니 그것을 꼭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고, 결국 저 편지를 구술한 며칠 뒤 평소의 악필에 정신마저 많이 몽롱해진 상태로 마구 휘갈겨쓴 유언만을 마지막 기록으로 남기고 타계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저 교향곡에 대한 떡밥은 쉰들러를 비롯해 세이어나 노테봄 등 초기 베토벤 전기 작가들에 의해 이곳저곳에 뿌려져 호사가들의 입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연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베토벤 이후 등장한 수많은 유명 교향곡 작곡가들이 '마의 9번 장벽' 을 넘기지 못한 채 교향곡을 더 이상 쓰지 않거나 쓰던 중 작고하면서 아예 징크스처럼 굳어질 지경까지 갔다. 쇼스타코비치가 그 기록을 깰 때까지, 베토벤의 9번 저주와 10번의 존재에 대한 떡밥은 수많은 이들을 낚으며 지속되었고.
굳이 그 떡밥을 다시 소재로 활용한 저 소설은, 대충 보니 역사적 고증 보다는 작가가 내키는 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놓은 일종의 라이트노벨 풍이었다. 흔히 음모론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소설들에서 감초처럼 등장하는 프리메이슨이 출몰해서 주인공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주변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등.
꽤 오래 전 어느 예술 잡지에서 소개되었던 통속 소설과 비슷했는데, 바흐의 미완성 작품인 '푸가의 기법' 을 소재로 프랑스 작가가 쓴 것이었다. 거기서도 개신교도였던 바흐의 비밀을 풀려고 하는 음악학자를 천주교 비밀결사 조직원들이 암살하기 위해 쫓아다닌다는 플롯이라던가, 장크트 토마스 교회의 오르간으로 '푸가의 기법' 마지막 부분을 연주하니 오르간이 180도 돌아가며 미완성이라고 여겨진 나머지 부분의 자필보가 발견된다거나 하는 '김X명식 어처구니 전개' 가 돋보이는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하여튼 이런 것을 보면, 요즘 내놓아지고 있는 많은 통속소설들은 국내건 국외건 떡밥 신선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경우는 다르지만, 한두 배우의 카리스마와 연륜에만 의지하다가 스토리와 플롯을 효도관광보내고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모 드라마도 말이지.)
다만 소설은 소설이고 작가의 상상은 자유니 더 이상 태클을 걸고 싶지는 않지만-물론 사르트르가 제창한 '소설적 자유' 라는 개념을 들고 오면 어떻게던 깔 수는 있음-, 문제는 왜 굳이 부록으로 CD를 제공했냐는 것이었다.
베토벤 사후 유품으로 남겨진 수많은 자필보들을 뒤지면서 교향곡 제 10번과 관련된 자료가 있는지 찾아본 음악학자들은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결정적인 자료를 찾아내지는 못했고, 그것과 관련이 있음직한 아주 단편적인 악보가 몇 개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 배리 쿠퍼(Barry Cooper)라는 영국 음악학자 겸 작곡가가 교향곡 10번에 대한 결정적 자료를 찾아냈다면서, 그것을 갖고 자신이 보완해 1악장을 완성했다는 것을 공표했다. 이 1악장은 1988년에 발터 벨러 지휘의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시연되었는데, 시연되자마자 꽤나 논쟁이 있었다.
문제는 그 논쟁의 주도권이 쿠퍼의 작업을 칭찬하거나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쿠퍼의 작업을 '결과물이 너무 작위적이고 사용한 자료의 출처조차 의심스럽다' 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말러의 교향곡 제 10번이나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 9번,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같이 '거의 완성 단계였던' 미완성 작품의 보작에는 별로 태클을 걸고 싶지는 않은데,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 8(7)번이나 이 곡같이 너무 진척된 분량이 적거나 그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것에 손을 대 완성한다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쿠퍼의 보작품은 몇 년전 모 음악 사이트에 회원 전용 스트리밍 서비스로 파일이 제공되고 있어서 들어볼 수 있었는데, 그 사이트는 지금 증발한 상태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말러와 관련해 3부작 책을 썼던 김문경이 그 초안 격으로 말러 교향곡 전곡에 대한 분석을 실었었고, 지금은 폐간된 '레코드포럼' 에 푸르트벵글러 관련 연재를 했었던 박진용도 브루크너 교향곡 기사를 00번에서 5번까지 연재하다가 급서하는 바람에 중단되었다.)
제공된 파일은 쿠퍼의 보작품을 가장 처음 녹음한 윈 모리스(Wyn Morris) 지휘의 런던 교향악단(London Symphony Orchestra) 연주였다. 하지만 나의 섣부른 호기심은 파일을 재생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썩어문드러진 미소로 바뀌었고.
우선 맨 처음 나오는 E플랫장조의 느릿한 악구에서부터 '너무 통속적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교향곡 보다는 차라리 현악 4중주 같은 실내악에 더 잘 어울릴 듯한 비더마이어풍(고전주의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그 양식의 모방에 안주하던 사조를 비꼬는 용어) 악상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리고 그 주제를 별 발전도 없이 악기 편성이나 다이내믹만 바꿔가며 되풀이한 뒤 갑자기 관계 단조인 C단조로 전조되어 나오는 활발한 대목도, 그저 그 성향이 베토벤 중기의 투쟁적인 악상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것 외에는 남는 것이 없었다. E플랫장조 악구에서도 나온 문제였지만, 여기서도 악상을 '뽀대나게' 내놓고도 그것을 치열하게 풀어나가려는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베토벤이 9번 교향곡 1악장에서 복잡한 대위법 기교를 구사하며 엄청난 힘을 비축한 뒤, 재현부에서 강렬하게 터뜨리던 전개 방식에 비하면 너무나 해이한 동어 반복의 전개였던 것이었다.
게다가 배리 쿠퍼라는 당사자가 자신있게 말하던 작업 과정도 그저 '같잖은 변명' 이라고 생각되었다. 쿠퍼가 베토벤을 얼마나 심도있게 연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수많은 음악학자들이 평생 혹은 그와 비슷한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도 찾아내지 못한 교향곡 제 10번이라는 존재를 '확실히 파악했고' '작곡 의도도 알 수 있었다' 고 단정짓는 섣부른 오만함 말이다.
아무튼 1988년에 녹음된 모리스 지휘의 것 외에도 저 쿠퍼의 작업물 녹음이 또 있었는데, 바로 맨 처음 시연했을 때의 지휘자였던 발터 벨러(Walter Weller)가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을 지휘해 샨도스에 녹음한 것이었다.
문제의 소설에서 제공한 부록이 바로 저 벨러 지휘의 샨도스 음원이 담긴 CD였다. 공교롭게도 이 음원 역시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었고, 이것 역시 (물론 처음 들었던 모리스의 녹음과 똑같은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들어볼 수 있었다. 모리스가 녹음할 때와 악보도 똑같았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것을 바라기는 힘들었고, 그냥 벨러가 모리스보다 좀 더 템포도 빨리 잡고 직설적으로 음악을 풀어나가는 차이만 파악될 뿐이었고.
그리고 쿠퍼라는 인물이 1988년의 시연과 직후에 행한 개정 1회 이후 지금까지 20년이 흘러가는 동안 저 '교향곡 제 10번' 에 대해 어떠한 조사나 보완 작업도 하지 않고 손놓고 있는 것도 꽤나 병맛인데, 말러의 교향곡 제 10번이나 브루크너 교향곡 제 9번의 보완 작업을 했던 이들의 진지하고 치열한 태도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말러 교향곡 10번의 보완에 손을 댄 데릭 쿡의 경우, 처음 '연주용 판본' 을 내놓은 뒤에도 동료나 후배 음악학자들의 조언을 계속 들어가며 관련 자료를 연구하고 수집했고, 죽기 직전에도 새로운 개정 악보를 내놓을 정도로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브루크너 교향곡 9번 4악장 보완에 공동으로 참가한 음악학자들인 니콜라 사말레와 주세페 마추카, 존 앨런 필립스, 벤야민 구나르 코어스도 계속되는 시연과 자료 발굴을 거쳐 자신들의 보완 악보를 개정했고, 그 과정에서 이견이 격화되어 몇 사람이 작업을 그만 둘 정도였다.)
물론 소설을 내놓은 출판사도 '베토벤 교향곡 제 10번' 이라고 내놓은 CD가 있었으니, 그것을 부록으로 첨부하면 소설을 읽는데 뭔가 플러스 요인 혹은 흥미 유발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독자들이 '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까지 불사하며 찾아다닌 교향곡 10번이라는 곡이 고작 이 정도였나' 라고 되레 실망할 것 같다.
내 입장을 정리하자면, 저 곡을 혹시나 연주하거나 녹음하게 될 때 '베토벤의 교향곡 제 10번' 이라고 공연 프로그램이나 음반 속지에 올리는 어떤 공연이나 녹음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 소설의 한국어판 출간에 발맞춰 해당 곡을 10번 교향곡이라고 공연한 모 관현악단의 연주회도 마찬가지로 보러가지 않았다.)
차라리 솔직해지자. 이렇게 말이다;
베토벤 주제들에 의한 교향 악장. 배리 쿠퍼 작곡
(Symphonic Movement on themes by Ludwig van Beethoven, composed by Barry Cooper)
이렇게 되면 괜히 존재도 불분명한 10번 교향곡 갖고 장난친다는 '불순 세력' 들의 논란도 물리칠 수 있고, 쿠퍼가 단순히 보완자나 편곡자가 아닌 '작곡가' 로 격상되면서 인세 수입도 훨씬 많아지지 않을까? 고트프리트 폰 아이넴이나 루치아노 베리오처럼 말이다.
(오스트리아 작곡가인 아이넴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 미완성 4악장의 스케치에 나온 주제들로 '브루크너 대화' 라는 곡을 작곡했고, 이탈리아 작곡가인 베리오도 슈베르트가 교향곡 제 10(9)번으로 의도하고 남긴 피아노 스케치의 악상들을 주제로 '렌더링' 이라는 곡을 작곡했다. 물론 쿠퍼가 '나는 그들과 달리 멋대로 창작한 것이 아니라, 베토벤의 의도에 충실하게 복원했을 뿐' 이라고 가열차게 주장한다면 별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