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가운데 서울의 강남구에 거점을 둔 어느 관현악단이 각각 2006년과 2011년에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한국 관현악단 역사상 최초로 녹음한 결과물을 요 며칠 전에 구입할 수 있었다.
창단 당시 명칭이 강남교향악단이었던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이하 강남심)는 한국 최초로 구 단위 지자체에서 출범한 악단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물론 2008년에 강남문화재단 산하 악단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구립 글자는 떼어버렸지만.
사실 이 악단은 창단한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음반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1998~2000년 교향악축제 때 2부 순서로 연주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과 4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 차례로 이즘레코드를 통해 출반되었다. 물론 하룻 동안의 실황을 무편집으로 녹음한 것이고 녹음이나 연주 상태도 결코 최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들이 자신들의 연주 기록을 꽤 적극적으로 보존하고자 한 의지를 미리 보여준 물건들이었다.
이렇게 실황 녹음 세 종류를 비매품 형식으로 내놓은 뒤인 2002년부터 이 악단은 꽤 무모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매년 스튜디오 녹음해 전집을 만들어 보자는 계획이었는데, 실황이야 녹음해서 내놓는 악단은 꽤 여러 군데 있었지만 이렇게 돈과 시간이 상당히 많이 드는 스튜디오 녹음에 올인하다시피 한 단체는 거의 없었다.
강남심의 베토벤 교향곡 녹음은 일단 2002년 9월 25-27일 동안 1번과 2번을 녹음하며 시작했고, 이어 3번과 8번을 이듬해 10월 8-10일 동안 녹음했다. 이 두 차례의 세션 녹음은 당시 악단 악장이기도 했고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 독일에서 톤마이스터(녹음 엔지니어) 과정을 이수한 정남일-불행히도 2011년 3월 교통사고로 고인이 되었다-과 독일 프로듀서 홀거 부세가 게누인(Genuin)이라는 독일 음반사의 한국 지사를 통해 진행했다.
게누인의 녹음 작업은 이 네 곡으로 마무리되었고, 남은 곡들의 녹음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톤마이스터 과정을 수료한 최진과 슈테판 카엔이 공동 설립한 녹음 회사인 셈프레 라 무지카(sempre la musica)에서 맡았다. 이들은 2004년 9월 22-24일에 5번과 7번을, 2005년 10월 19-21일에는 4번과 6번을, 그리고 2006년 9월 6-8일에 9번을 녹음해 5년 동안 베토벤 교향곡 아홉 곡 전곡의 녹음을 모두 끝냈다.
다만 낱장으로 나왔던 게누인의 음반과 달리, 이 셈프레 라 무지카 제작 음반들은 게누인 녹음을 포함한 CD 다섯 장 짜리 세트에 묶여서 선보여졌다. 게누인 음반을 계속 모아온 사람들은 금전 손실을 감수해야 했을 것 같은데, 다만 비교적 제작비가 저렴한 종이 케이스에 담아 만든 것이라 그렇게 비싸다고 볼 수도 없었다.
강남심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 발매 소식은 한국 음반 업계에서도 나름대로 충격적이었는지, 그 동안은 한국 관현악단의 음반이 나왔다고 하면 그냥 소개 정도에 그쳤던 음악잡지나 평론계에서도 특별히 이런저런 기사나 평론을 실었다. 물론 그 중에는 한국 최초라는 가치에 너무 비중을 두어 객관성이 흐려진 국수적 비평을 남발한 것도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열광하지 않았다.
다만 국립예술자료원에 소장된 CD를 빌려와서 들어봤을 때는 꽤 괜찮은 결과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푸르트벵글러 스타일의 꽤 개성적이고 구시대스러운 연주가 취향이기는 했지만, 스튜디오 녹음의 강점인 재녹음과 편집으로 깔끔하게 다듬어진 녹음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확실한 장점이었다.
그렇다고 이걸 정말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 뒤로도 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어느 정도 사대주의적인 감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 않더라도 꽤 여러 종류 있는 베토벤 교향곡 음반들에 굳이 추가해도 될 지 의구심도 들었고.
하지만 이들이 이 베토벤 프로젝트를 끝마친 뒤 2008년부터 브람스 교향곡 전곡 녹음을 또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점차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베토벤도 꽤 버거웠을 텐데, 이번에는 브람스를 한다고?
하지만 이 프로젝트도 1년에 한 곡씩(2008.10.22-23 4번, 2009.9.23-24 1번, 2010.9.15-16 2번, 2011.9.28-29 3번) 진행되어 결국 작년에 완결되었고, 이것도 마찬가지로 음반으로 나왔다. 다만 마지막 3번이 녹음되고 있을 때 나는 독일에 있었기 때문에, 이 3번 녹음의 편집 때문에 음반은 내년(2012년)에나 나오겠구나 싶었다.
브람스 전집도 베토벤 전집과 비슷한 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우선 4번의 경우 베토벤 교향곡 1, 2, 3, 8번을 녹음했던 게누인의 정남일이 다시 한 번 녹음을 담당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곡의 녹음에는 또다시 최진 등 셈프레 라 무지카의 스탭들이 기용되어 프로젝트를 끝마쳤다. 이 전집 음반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낱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다만 상업용으로 시판된 1번과 2번의 CD와 달리 4번의 경우 내가 아는 한 음반 시장에 나온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이 전집이 녹음은 마쳤으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혹시 상업용이 아닌 사가반 형식으로 풀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가반으로 풀린다는 건 이 악단의 연주회 때 공연장에서 직매하는 것 정도로만 구할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강남심의 신년음악회가 열렸던 1월 17일에 일부러 예술의 전당을 찾아갔다. 공연을 보러 간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다른 떡고물(???)에 정신이 팔려 찾아간 경우는 극히 드문 케이스였다.
예상대로 공연 시작 전 로비에서는 프로그램 노트와 함께 이들의 음반을 팔고 있었다. 베토벤 전집과 브람스 전집이 각각 2만원 씩에 팔리고 있었고, 베토벤 전집의 경우 시중 가격보다 만원 가까이 쌌고 브람스 전집은 이번에 처음 보는 것이라 둘 다 구입했다. 다만 연주회는 패스(...).
아직까지 음반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브람스 전집도 베토벤 때와 마찬가지로 씨앤엘뮤직에서 배급을 맡고 워너뮤직 코리아에서 제작했다고 되어 있어서 아마 조만간 시장에 풀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교향곡 한 곡 당 한 장씩을 할애한 것이 좀 의아했는데, 적어도 2번과 3번은 다 합치면 재생 시간이 76분 정도라 충분히 한 장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CD 숫자와 제작비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이들 녹음은 모두 성남의 분당요한성당에서 제작되었는데, 종교 시설이기는 하지만 음향 상태가 녹음에도 상당히 괜찮은지 2000년대 이후로 나오고 있는 한국 클래식 음반들의 상당수가 여기서 제작되고 있다. 박은성 재임기에 수원시향이 내놓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이나 김영률+서울바로크합주단+김덕기 콤비의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전곡도 마찬가지.
게누인과 셈프레 라 무지카의 녹음은 프로듀서나 엔지니어의 주관 때문인지 약간의 소리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굉장히 양호하다. 연주 면에서는 중용을 지킨다는 인상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좀 심심하게 들리는 곡들도 몇 곡 있었지만, 오히려 그 깔끔한 면이 편하게 듣기에는 괜찮게 느껴져서 두 전집 모두 MP3 플레이어에 넣어서 듣고 있다. 다만 브람스의 경우 좀 더 묵직하면서도 윤기있는 음색으로 연주됐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고.
이 두 차례의 대규모 프로젝트 뒤에 강남심이 또 무슨 곡에 손을 대 스튜디오 녹음을 할 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지휘자 서현석이 월간지 '객석' 2011년 2월호 기획 기사 '우리 오케스트라' 에서 이 브람스 교향곡 전곡이 악단 녹음 프로젝트의 끝이라는 뉘앙스라고 밝힌 바 있어서, 다음에 녹음이 또 진행된다고 해도 아마 한참 뒤에 서현석의 후임 지휘자가 맡지 않을까 추측된다.
물론 예산도 그리 넉넉치 않고, 정기 연주회도 1년에 대여섯 번 정도 개최하는 악단으로서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한국 양악사에 나름대로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으니 이 두 전집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생각된다. 이 악단 외에 또 어느 악단이 과감하게 (또는 무모하게) 상업 음반 시장에 발을 디디게 될지 궁금한데, 이미 브람스 교향곡 1번의 2007년 교향악축제 실황을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에서 상업 음반으로 내놓은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행보도 주목하고 싶다.
뱀다리: 음반을 사는 김에 강남심이 교향악축제 실황으로 내놓은 음반의 재고 여부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일단 관할 단체인 강남문화재단에 직접 문의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나온지 10년도 더 된 음반이라 재단 측에서 아직 재고를 보유하고 있을 지는 의문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다만 아직 재단에 직접 전화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있을까 하는 (근거없는) 희망을 갖고 물어볼 예정이다. 이미 쇼스타코비치 CD는 몇 년 전에 황학동 중고음반점에서 구했기 때문에, 적어도 차이콥스키 CD 두 장이라도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