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에 캐나다의 해밀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소속 금관 주자 다섯 명이 모여 창단한 금관 5중주단이 바로 제목에 언급된 캐나디언 브라스(Canadian Brass)다. 물론 창단된 지 40년을 넘긴 지금은 튜바 주자 찰스 댈렌바흐만 원년 멤버로 남은 상태지만, 계속 멤버들을 물갈이하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턱시도 정장에 운동화를 신고 나오는 좀 삐딱한 듯한 무대 매너가 독특한 개성으로 여겨지는 단체인데, 정통 클래식에서 재즈나 블루스, 민요까지 다양하게 아우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하고 있다. 덕분에 이들은 여러 음반 회사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수십 장의 음반들을 내놓았는데, 그 중 필립스에서 내놓은 네 장의 음반들이 좀 독특한 컨셉이라 국내외의 중고음반 판매자들로부터 구입해 모았다.
1980년대 후반에 캐나디언 브라스는 네덜란드에 거점을 두고 있던 필립스-지금은 유니버설 뮤직을 모회사로 하는 영국의 데카가 인수해 흡수됨-와 계약을 맺고 첫 음반을 제작했는데, 물론 전면에 부각된 것은 저 단체였지만 거기에 미국 유수의 관현악단인 보스턴 교향악단과 뉴욕 필하모닉의 수석/부수석급 금관 주자들과 타악기 주자들을 더한 일종의 영국식 브라스 밴드 편성이었다.
이렇게 증편된 캐나디언 브라스의 첫 앨범에 수록된 곡은 베토벤의 극음악 '에그몬트' 서곡과 교향곡 5번, 그리고 '웰링턴의 승리' 세 곡을 금관과 타악기의 합주 용으로 편곡한 것들이었다. 편성이 비교적 컸던 관계로 필립스와 계약하기 전에 RCA나 콜럼비아(CBS)에서 출반된 캐나디언 브라스의 앨범 대부분에서 따라붙을 일이 없던 지휘자가 기용되었는데, 바로 생애 후반기 낙소스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녹음으로 뒤늦게 주목을 받은 게오르크 틴트너(Georg Tintner)였다.
ⓟ 1990 Philips Classics Productions
물론 여기서 주역은 틴트너가 아닌 캐나디언 브라스였고, 앨범 속지에도 틴트너에 관한 내용은 일체 없었던 만큼 지휘자의 영향력은 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이 앨범이 나왔을 당시 한국의 어느 음악 평론가는 틴트너를 '군악대장' 정도로 생각했다고 했을까. 물론 후속작으로 나온 나머지 앨범들에서도 한 종류 빼고 지휘자의 역할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베토벤의 고전 명곡들로 증편된 금관의 역량을 과시한 뒤, 필립스에서는 나름대로 재미를 보겠다고 생각했는지 비슷한 방식으로 증편한 캐나디언 브라스의 음반을 계속 출반하기로 한 것 같다. 그래서 1년 뒤인 1991년에도 마찬가지로 보스턴향과 뉴욕 필 주자들을 섭외했고, 이번에는 미국의 음악이라는 컨셉으로 음반을 만들었다.
ⓟ 1991 Philips Classics Productions
물론 수록곡 모두가 미국 작곡가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멜로디의 작품들을 골랐기 때문에 'Made in the USA'라는 음반 타이틀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행진곡의 왕' 으로 불렸던 존 필립 수자의 작품들이나 '그랜드 서커스 판타지아' 라는 서커스 음악들을 엮은 흥겨운 메들리들도 들어 있어서, 네 종류의 음반들 중에는 가장 대중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앨범에도 독일 출신의 미국 작곡가이자 지휘자 루카스 포스(Lukas Foss)가 섭외되어 박자를 맞춰주었다.
첫 베토벤 앨범의 속지에서 캐나디언 브라스 단원들은 막스 브라더스의 만담 토크 식으로 자신들의 향후 활동을 점쳤는데, 그 때의 구상 중 '우리가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금관 5중주로 편곡해 연주한다면 어떨까' 도 들어 있었다. 물론 반지 전곡의 편곡은 아니었지만, 그 중에 '발퀴레' 와 '신들의 황혼' 에 나오는 히트 넘버들인 '발퀴레의 출동' 과 '지크프리트의 장송 행진곡' 을 같이 선곡한 'Wagner for Brass' 라는 앨범이 증편 캐나디언 브라스의 세 번째 음반으로 나왔다.
ⓟ 1993 Philips Classics Productions
첫 두 앨범에서 미국 관현악단의 단원들과 협연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베를린으로 가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바이로이트 축제 관현악단의 금관과 타악기, 하프 주자들과 합세했다. 위에 언급한 '발퀴레' 와 '신들의 황혼' 외에도 '탄호이저',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로엔그린', '리엔치' 같은 오페라들에서 뽑은 명곡들을 금관 합주용으로 편곡해 연주했고, 바그너와 마틸데 베젠동크의 불륜 관계로 탄생한 '다섯 개의 베젠동크 가곡집' 중에서도 한 곡을 골라 같이 실었다.
그리고 예전 앨범들에서 지휘자에게 큰 역할을 부여하지 않은 것과 달리, 이번에는 난이도 높은 곡들을 선곡했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오보에 주자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네덜란드 지휘자 에도 데 바르트(Edo de Waart)가 섭외되었다. 바르트는 지휘 활동 초기에 네덜란드 관악 합주단을 이끌어 여러 장의 관악 합주 앨범을 필립스에서 제작한 만큼, 취주악 분야에도 정통한 지휘자라 특별히 섭외한 것으로 여겨진다.
필립스의 '증강된' 캐나디언 브라스 앨범들 중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1992년에 녹음되어 1994년에 출반된 'Gabrieli for Brass' 였다. 이 앨범에서는 뉴욕 필과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수석 금관 주자들이 참가했는데, 다른 앨범들과 달리 타악기를 일체 사용하지 않은 금관악기 만의 합주로 연주되었다.
ⓟ 1994 Philips Classics Productions
앨범 제목만 보면 르네상스 시대에 베네치아에서 끗빨 날렸던 조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의 금관 합주 작품을 모은 것으로 보기 쉽지만, 가브리엘리 작품 외에도 그와 동시대인이었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나 가브리엘리의 제자였던 하인리히 슈츠, 가브리엘리의 삼촌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이들의 선배이자 안드레아와 거의 동년배인 오를란도 디 라소의 금관 합주곡과 종교음악의 금관 편곡을 골고루 싣고 있다.
개인적으로 무신론자라 그런지 종교음악이 상당 수를 차지하는 이 앨범에는 유독 감흥이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공간 음악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가브리엘리 음악의 이상적인 청취감 구현을 위해 5채널 돌비 서라운드 방식으로 녹음을 하는 등 마지막 앨범 답게(?) 꽤 공들여 제작한 물건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앨범의 지휘자는 토론토 멘델스존 합창단 지휘자를 역임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합창단인 엘머 이슬러 싱어즈를 창단한 합창 전문 지휘자 엘머 이슬러(Elmer Iseler)가 맡았다.
네 앨범 모두 '쪽수로' 따지면 캐나디언 브라스가 오히려 이곳저곳에서 증강된 금관 주자들에 밀려서, 자신들의 이름을 건 앨범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앨범의 아이디어와 편곡 의뢰 등 실제 공연과 음반 제작 등의 기획은 캐나디언 브라스가 스스로 주도한 것이었고, 그런 점에서 금관 5중주로는 한계가 있는 대규모 브라스 작품들을 다루고 싶었던 욕구를 충족시켜준 음반들로 여겨진다.
실제로 금관만 편성한 밴드는 아무래도 목관과 합쳐 편성하는 콘서트 밴드보다 연주 레퍼토리나 기교의 제약으로 인해 다소 평가절하될 위험이 크지만,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갖춘 연주자들이 모인 그룹과 금관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뛰어난 편곡은 얼핏 단조로워 보이는 금관 밴드를 스타 그룹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네 종류의 앨범을 양자를 모두 충족시킨 가치있는 것으로 여겼고, 미국과 독일에까지 주문을 넣어 완전히 갖출 수 있었다.
ⓟ 1989 CBS Records Inc.
사실 이 앨범들 전에도 캐나디언 브라스는 콜럼비아(현 소니 BMG)에서 뉴욕 필과 보스턴 교향악단 금관 주자들을 대동하고 일본 지휘자 아키야마 카즈요시(秋山和慶)의 지휘로 가브리엘리와 몬테베르디의 금관 합주곡집을 녹음한 바 있었는데, 이 앨범은 아직 주문하지 않았다. 물론 이 앨범도 콜럼비아를 승계한 소니 BMG에서 일곱 장의 앨범을 모은 박스 세트로 재발매되어 있고, 낱장으로도 아마존 등 온라인 매장에서 중고나 신품으로 주문할 수 있으니 혹시 모을 계획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