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영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 '백곰 카페' 라는 작품이 있다. 제목의 백곰을 위시해 판다와 황제펭귄, 라마, 불곰, 나무늘보 등의 동물들이 그 모습 그대로 인간처럼 말하고 돌아다니는데, 명탐정 홈즈 처럼 거의 사람에 가깝게 의인화시킨 것이 아니라서 동물 좋아하는 사람은 버틸 수가 없을 정도다.
대인 관계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나로서도 사람보다는 동물을 마주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할 때가 많은데, 물론 거기에는 동물보다 우월한 인간이라는 선민 의식이 깔려 있음을 부정할 수도 없겠고. 사람에게 수용당하는 동물의 관점이나 여타 머리아픈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거기에 동물들이 있으니까' 오랜만에 가봤다.
서울대공원은 초딩 때였는지 중딩 때였는지 단체로 소풍갈 때를 제외하면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특히 동물원의 경우 내가 정말 가봤는지 기억나는 것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폰카도 있고, 친구도 적고(...) 해서 홀가분하게 혼자 찾아가봤다.
사실 사람이 직접 볼 수 있는 동물들은 초식이든 육식이든 잡식이든 한정될 수밖에 없다. 기린도 마찬가지인데, 겉보기에는 키만 커보이고 어쨌든 초식동물이니 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 다리에 채이면 사자고 뭐고 운나쁘면 즉사, 운좋아도 중상을 입을 정도로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라 이렇게 멀리서 밖에 볼 수 없다.
멀리서 찍은 사진은 폰카의 한계 때문에 피사체가 너무 작게 나와 대부분 지워버렸지만, 기린이 물을 마시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이건 남겨놨다. 목이 하도 길다 보니, 앞다리를 벌리고 목을 숙여서 마시고 있었다. 그 외에 모 웹툰 덕에 건드리면 X된다는 당연한 진리를 배울 수 있는 작은 하마도 있었지만 이것 역시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어서 결국 삭제크리.
이렇다 보니 동물원에서 관람자들의 애정을 독차지하는 동물은 아무래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작은 동물들이다. 두 발로 서서 관람자를 주시하고 있는 이 녀석은 미어캣. 어린이대공원에도 있는데, 자그마한 몸집이지만 얘도 성질은 더러운 편이고 물리면 크게 다칠 수 있으니 괜히 깝죽거리지 말 것.
프레리도그 두 마리. 이 동물들도 미어캣이나 후술할 사막여우와 함께 작은 동물들 중에 꽤 인기있는 축에 속하는데, 세 동물들 모두 어린이대공원에서도 사육되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공원의 프레리도그 우리에는 이렇게 동물 눈높이에서 볼 수 있게 유리를 사방에 덧댄 참호 식의 관람 공간도 있어서, 코앞에서 관람할 수도 있다.
한층 더워지는 날씨 덕에 원산지와 비슷한 기후 조건이 되고 있는 것 같지만, 태생이 야행성이다 보니 대부분 축 늘어져 있는 사막여우들. 가격과 사육 난이도 모두 높기 때문에 아직 보편화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반려동물로도 기르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있을 때나 가능할 테니 그냥 보고 있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워낙 인기가 있었고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모습 때문이었는지, 사생대회 나온 학생들이 꽤 준수한 솜씨로 사막여우들을 화폭에 담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영장류 쪽도 꽤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들어가 있었는데, 작은 종들은 워낙에 활동적이라 사진 좀 찍으려고 하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어서 포기했다. 그나마 좀 점잖은(?) 모습으로 나무 구조물 위에 앉아 있는 비비원숭이-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한 장만 건질 수 있었다.
야외의 초식동물 우리도 대부분 사람이 직접 접근해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앤틸로프라고 기억나는 우리에서 찍은 동물 뒷태(...). 나무에 걸려 있는 붉은 벽돌 모양의 물건은 일종의 각설탕이라고 한다. 예전에 말 사육장에 갔을 때 설명을 들어서 알 수 있었는데, 우제류 동물들은 단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간식처럼 핥아먹으라고 달아놓는다고 한다.
서울대공원 경내는 순환 버스가 돌아다닐 정도로 꽤 넓다 보니, 다 돌아보려면 꽤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그 두 능력 모두 다운된 곳이 이 남미관이었는데, 아무래도 열대지방 쪽 동물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보니 냉방 장치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가뜩이나 땀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끈적끈적한 상태로 돌아다녀야 했다. 일단 처음 본 것은 어느 관람객이 던져준 것으로 보이는 후렌치파이를 깨작거리는 이름 모를 원숭이.
하지만 여기서 돋보이는 동물들은 무엇보다 파충류들이었다. 뭔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어느 이름 모를 도마뱀부터,
잘게 썬 양상추 등 푸성귀를 먹고 있는 이구아나,
겉보기에도 육중한 체구로 유리를 툭툭 건드리고 있던 갈라파고스 육지거북,
그리고 거의 대부분 이렇게 입을 벌리고 꿈쩍않고 있던 악어들. 특히 악어들은 원래 습성이 그런지, 대부분 이런 품위 없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인간 입장의 이야기겠고.
열대동물관을 나온 뒤에 꽤 한참 동안 죽치고 있었던 애기판다(또는 레서판다) 우리. 이런저런 경로로 짤방화되고 있을 정도로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동물인데, 얘도 꽤 이리저리 움직이길래 포기했다가 결국 이렇게 한 장 담는데 성공했다.
이 동물도 새끼를 잘 낳지 않는 습성과 밀렵 등으로 인해 개체 수가 급격히 줄고 있고, 한국에서도 서울대공원 아니면 볼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들었다. 애기판다 우리 옆에는 예전에 동물원을 탈출했다가 붙잡혀 화제가 된 말레이곰 우리도 있었는데, 재탈주를 우려했는지 뭔지 한정된 시간만 우리로 내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고생 미식 애니메이션 '케이온!' 을 봤다면 아마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돼지코거북. 특이하게 곤충관 쪽에 있었는데, 수조에 두 마리가 있었지만 이 녀석은 나머지 한 마리와 좀 싸웠는지 어쨌는지 코 한 쪽에 상처가 있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폰카 저장 용량 한계로 못찍은 동물들이 훨씬 많았을 뿐인데, 들어가서 직접 당근을 먹이로 줄 수 있는 사슴 우리라던가 묘한 때깔로 눈에 확 띈 플라밍고들, 소동물관의 너구리와 삵, 여우, 인공포육장의 새끼 표범 등등. 결국 동물원에서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DSLR을 마련하는 것이 낫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줬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동물원이고, 또 입장료를 받는 곳인 만큼 사육 환경도 비교적 양호하고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관람 전에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돌아다녀야 덜 피곤한 곳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동물들에게 먹이주기 프로그램 같은 것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 관람의 미를 좀 떨어뜨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가령 사슴과 과나코 (혹은 라마) 모두에게 먹이를 주고 싶어도, 시간대가 겹치는 경우가 많아 결국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식이다. 그리고 이게 관람객들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게 하는 일종의 '상술' 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이고 비교적 저렴하지만 어쨌든 계속 입장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대공원은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고, 동물 가짓수는 적지만 좀 더 알찬 상설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좀 더 자주 찾고 있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