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단 공식적으로 출판물에 대한 사전검열은 폐지되어 있다. 하지만 정부의 검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또 그 검열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무서운 소송이나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 등의 수단으로 출판을 제지하는 경우도 있다. 덕분에 정치인 혹은 정치적으로 논란 거리가 많은 인물을 다룬 책이나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를 취하는 책은 여러 모로 집필부터 판매까지 성가신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이번에 본 책도 비슷한데, 원래는 '독재자와 음악' 이라는 제목으로 6월에 음악세계라는 음악출판사에서 발매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심한 논란의 대상인 박정희의 음악 정책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출판사가 발행을 꺼려했고, 결국 한울로 옮겨서 7월에 발매해야 했다.
물론 여기에 최근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뽑힌 박근혜나 그 측근이 직접 출판 계획에 대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29만원 할아버지의 아드님이 운영하는 출판사가 대선을 노리고 있는 거물 정치인의 입장을 '배려해 준 듯한' 모양새는 확실하게 잡힌 꼴이 되었고, 역시 정치인을 상대로 공과를 가리는 작업은 민주 국가를 표방하는 한국에서 아직도 쉽지 않다는 씁쓸한 현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 2012 Hanul Publishing Company
제목 대로 이 책은 여덟 명의 독재자들이 가진 음악에 대한 견해와 그것을 집행한 정책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나폴레옹부터 시작해서 피델 카스트로까지 군주로 자처한 인물과 극우, 극좌 등 사상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집필은 각 장별로 여덟 명의 음악사연구회 회원들이 맡았다.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관심이 있어서 이런저런 책이나 논문을 이미 접한 스탈린이나 히틀러, 김일성 챕터 같은 경우에는, 사실 아주 신선하다고 여겨진 새로운 정보나 관점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박정희 챕터에서도 주로 건전가요 장려와 대중가요 검열에 대해 다루었기 때문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서 중 '한국 대중가요사' 의 1960~70년대 서술과도 겹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었고.
오히려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그 동안 한국 음악사회학계에서 연구가 미진한 축에 속했던 무솔리니, 마오쩌둥, 피델 카스트로 집권기의 이탈리아와 중국, 쿠바의 음악 정책에 대한 서술이었다.
특히 무솔리니 시기에 근대화를 추구한 미래파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진영에 있던 자코모 푸치니나 피에트로 마스카니 등이 파시즘 밑에서 서로 세력 다툼을 했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비슷한 전체주의 국가였던 나치 독일이 현대음악을 유대주의와 볼셰비즘이 결탁한 쓰레기라고 규정하며 씨를 말려버리려고 했던 것에 비하면, 무솔리니는 당시 현대음악 조류에 속한 미래파와 보수파 양측을 저울질해가며 예술가들과 직접 소통하고자 했다고 평하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정부의 정책과 자신의 견해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던 작곡가들-파시즘 찬가인 '로마 찬가' 를 작곡하고는 이후 멘붕했던 푸치니나 12음 기법을 도입해 현대음악의 최전선에 섰지만 미래파와는 척을 둔 루이지 달라피콜라-, 열성적 파시즘 추종자였던 프랑코 알파노와 일데브란도 피체티, 정치와는 거리를 두려고 했던 오토리노 레스피기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마오쩌둥 챕터에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문화대혁명 당시의 혼란상에 구체적인 당시 음악 정책과 공연을 허가받은 작품들에 대한 정보를 추가할 수 있었고, 또 그 당시 중국에서는 성서와 동일시 되던 마오쩌둥 어록을 비롯한 정치 강령과 정책 구호가 노래 가사로 이용되어 홍위병들에게 불려졌다는 특이한 '노래 운동' 의 흐름도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개인 숭배를 조장하는 음악 정책은 이후 김일성의 북한에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겠고.
피델 카스트로를 다룬 챕터에서는 스탈린이나 마오쩌둥, 김일성 같이 음악을 개인 숭배의 도구로 써먹은 것과는 다른 독특한 정책에 대해 조명하고 있어서 무솔리니 챕터 다음으로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카스트로와 관련된 만큼 쿠바 혁명 이후의 쿠바 음악계 상황을 다루고 있는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정도가 대중적으로 유명한 한국 현실에서 쿠바 음악의 흐름을 대략적으로나마 짚으려면 꼭 읽어봐야 할 것 같다고까지 생각되었다.
아타우알파 유방키나 빅토르 하라 같은 이들의 노래로 유명한 라틴아메리카 누에바 칸시온의 영향을 받아 쿠바 혁명 후 생겨난 누에바 트로바, 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따른 붕괴로 고립되어 있던 1990년대 중반에 세를 얻은 댄스 뮤직인 팀바를 가지고 카스트로의 음악 정책을 서술하고 있는데, 카스트로는 자신의 기준을 '혁명' 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해 '반혁명적' 인 음악을 통제하고 음악가들이 거기에 저항하다가 결국은 순응해 자세를 낮추고 있다고 평했다.
반체제 음악가들이 온갖 탄압을 겪다가 나라 밖으로 망명하거나 음악 활동을 강제로 그만두는 여타 독재 국가들과는 좀 다른 모양새였는데, 카스트로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버무린 혁명 이념에 예술가에 대한 원조와 통제를 교묘히 배합하면서 결국 이들의 반골 정신을 상당 부분 거세해 버리는데 성공했다고 평하고 있다.
여러 나라와 독재자들의 음악 정책을 다이제스트 식으로 다룬 터라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이 보강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고,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낸 독재자는 없었지만 일왕을 신격화하고 그 밑에서 알아서 기었던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일본 음악계도 다뤘으면 하는 바램도 있기는 하다. 다만 이런 것은 그 분야들에서 좀 더 전문적인 개별 연구서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물론 연구의 가능성은 아직도 열려 있고 자료도 계속 뒤져보면 풍부하게 나오겠지만, 결국 이걸 대중에게 보여주기까지의 과정이 문제겠고. 언제 이런 연구가 '높으신 분들' 의 태클을 맞지 않고 자유롭게 진행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