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다음날인 11월 3일 일정은 아침에 전통 누룩으로 빚은 지역 특산 막걸리라는 금정산성막걸리를 구입하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늦잠을 잔 덕에 이건 결국 패스해야 했는데, 물론 저 막걸리는 인터넷 구매도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배송료와 다량 구매의 압박 때문에 현지에서 두세 병 사들고 가는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막걸리 구입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고, 일단 아점부터 먹기 위해 부산역으로 갔다. 이 날 두 번의 처묵처묵이 모두 여기 근처에서 있었고, 덕분에 부산 차이나타운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게 되었다.
아점 먹을 곳은 부산역 5번 출구에서 가장 가깝다고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출구로 나와 오른편의 중앙대로195번길로 가다가 첫 번째 나오는 왼쪽 골목 모습. 인천보다도 작고 분위기도 그다지 중국풍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차이나타운이 맞기는 맞았다. 오른쪽에는 담벼락에 인천의 그것과 비슷한 삼국지의 주요 등장 인물 벽화가 그려져 있는 부산화교중학교의 교문이 있었고, 그 맞은 편에 '신발원' 이라는 가게가 있었다.
붉은 바탕에 한자로 쓰여진 간판만 보면 왠지 '중국집' 같아 보이는데, 중국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간판 밑의 현수막에 작게 인쇄되어 있는 '중식점심방' 이 이 가게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었다.
여기서 파는 것들의 모조품. 만두와 꽈배기, 기타 이러저러한 중국식 빵과 과자가 보인다. 물론 판다는 팔지 않는다
천장에 매달아 놓은 메뉴판. 하지만 가게가 내부 수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사이 주방 담당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여종업원들만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물만두나 월병의 경우 이 날은 안된다고 했고, 빵이나 과자 종류도 일손이 부족해 예약 손님이 아니면 1인당 판매량을 제한하고 있었다.
가게 내부도 식사 공간이 4인용 테이블 네 개 뿐이라서, 먹고 가는 사람 보다는 사갖고 가는 사람들 위주인 것으로 보였다. 일단 나는 양 쪽 부류에 모두 속해 있었고, 우선 먹고 가기 위해 고기만두와 콩국+과자라는 특이해 보이는 것을 주문했다.
테이블 세팅. 젓가락통 왼쪽의 간장병과 고춧가루는 만두 먹을 때 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오른쪽에 있는 단지는?
열어 보면 노란색 가루가 잔뜩 들어 있다. 바로 황설탕인데, 물론 만두를 여기에 찍어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고 실제로도 따로 쓰는 데가 있다.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먼저 나온 엷은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 동안에도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진열장에 있는 것들을 사가고 물만두를 먹으려다 오늘은 안된다고 해서 헛걸음을 치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과자류 진열장. 윗쪽에는 꽈배기와 커빙, 팥빵, 계란빵이, 아랫쪽에는 공갈빵이 들어 있다. 제일 잘나가는 메뉴는 공갈빵으로 보였는데, 한 번은 어느 손님이 열 개씩 사가려다 제지당하기도 했다.
만두가 어느 정도 됐는지, 우선 이렇게 밑반찬들이 깔렸다. 춘장과 단무지, 생양파라는 전형적인 중국집 식이었고, 간장은 내가 직접 테이블에 있는 것으로 즉석에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만두보다 먼저 나온 것은 콩국+과자였다. 앞서 특이해 보인다고 했지만 그 정체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다만 먹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아침에 죽이나 만두-속이 있는게 아니라 꽃빵처럼 그냥 밀가루로만 만든 찐빵-, 혹은 이렇게 콩국과 튀김과자를 먹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하는데, 이미 아침은 한참 지났지만 중국식으로 하루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마찬가지였다.
따뜻한 콩국은 중국어로 더우장(豆漿)이라고 하는데, 그냥 콩에 물을 붓고 갈아서 걸러낸 아무 첨가물도 없는 '레알' 두유다. 콩비린내가 날 것 같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과자는 그냥 튀김빵이라고 봐도 되는데, 중국어로 유탸오(油條)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더우장에 찍어먹기도 하고, 따로 먹기도 하고, 또 말아먹기도 한다. 나는 가장 후자를 택했다.
그러려는 사이 만두도 나왔다. 짤방에 나온 대로 1인분에 여덟 개인데, 더우장+유탸오 보다는 고기만두를 먼저 먹고 싶었고 우선 한 개를 입에 넣었다.
이 곳의 만두도 예전에 먹은 인천 차이나타운 원보의 찐만두처럼 입에 넣으면 감칠맛 나는 따뜻한 육즙이 느껴졌다. 물론 원보의 것은 자오쯔(교자)고 신발원은 바오쯔(포자)니까 모양은 다르지만, 화교가 빚은 중국식 만두라는 점은 같았다.
그리고 만두 먹을 동안 잘 뿔어터지라고(...) 미리 더우장에 황설탕을 타놓고 유탸오를 몽땅 들이부어 가라앉혔다. 물론 더우장은 그냥 설탕 안넣고 먹을 수도 있지만, 그러자니 너무 맹맹할 것 같고 황설탕도 넣으라고 둔 것이니 그냥 타먹었다.
한참 처묵하는 동안 어느 외국인이 가게에 들어왔는데, 메뉴판도 다 한국어라 영어로 뭔가를 물어보다가 내가 먹고 있던 만두를 가리키면서 이걸 시키겠다는 몸짓을 했다. 하지만 주방에서는 만두를 먹으려면 적어도 2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고, 나는 갑자기 독일어로 얘기하려다 바로 고치고 어설픈 영어로 'You must wait twenty minutes' 라고 말해줬다.
결국 그 외국인은 'OK, I'll come back an hour later' 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 말 대로 정말 다시 왔을 지는 모르겠지만. 독어나 영어나 둘 다 지금 수준은 그냥 도찐개찐이지만, 그나마 독어의 경우 거기 반 년 살면서 입에 어느 정도 붙어서 이제 외국인이랑 마주치기만 하면 영어보다 독어가 먼저 튀어나오고 있다. 좋은 건지 뭔지.
만두를 다 먹은 뒤 더우장 속에서 충분히 뿔어터진(...) 유탸오를 퍼먹기 시작했다. 오로지 설탕만 친 담백한 두유에 튀김과자를 말아먹는 만큼 다른 맛은 없었고, 그 담백함 때문에 중국인들이 하루를 이걸로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더우장이든 유탸오든 고기만두든 모두 깨끗이 먹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 그건 물론 아니었다.
이렇게 한 꾸러미를 더 사들고 나왔는데, 물론 더우장이나 고기만두는 아니었다.
이렇게 팥빵과 계란빵을 가족들 몫까지 합쳐 구입했는데, 월병이나 호도수, 지단고, 부용고는 먹어봤지만 이런 종류의 중국빵은 처음 보는 것이라 호기심이 발동했다.
집에 온 뒤 먹어본 계란빵. 찍기 전에 두 입 야금야금 먹어치워 저 모양이다.
속은 이렇게 생겼다. 물기 적고 단단한 질감의 빵 속에 검은깨와 졸인 흑설탕으로 보이는 속이 들어가 있었는데, 빵 자체는 비교적 밋밋했지만 저 속이 서걱거리는 설탕 결정 덕분에 달달함을 더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작아 보였지만, 빵이 두툼하고 또 단단한 편이라 하나만 먹어도 어느 정도 요기가 되었다.
동글납작한 팥빵은 회오리 모양으로 낸 칼집이 특이했는데, 크기는 계란빵보다 작은 편이었다. 이 빵은 그 칼집 때문에 '칼빵' 이라는 뭔가 조폭스러운 이름으로도 불리며, 예전에는 인천 차이나타운 등지에서도 팔았지만 찾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없어서 거의 사장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신발원에서는 아직 그 명맥을 잇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 입 먹은 뒤. 보면 알겠지만 빵은 마치 황남빵이나 경주빵처럼 그냥 겉껍데기에 불과하고, 팥소 자체가 주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팥소는 곱게 빻은 달달한 일본식 고물이 아니라 통팥 알갱이가 씹히는 별로 달지 않은 고물이었고, 뜨뜻한 차와 함께 먹으면 꽤 괜찮을 것 같았다.
이렇게 중국식으로 아점을 먹은 뒤에는 전날 타려고 했던 부산-김해 경전철을 타러 사상역으로 갔다. 마찬가지로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