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등본에 나와 있는 내 출생지는 성북구 월계동이지만, 아주 갓난아기 때 몇 년 살았던 것을 빼면 중학교 때까지 내 기억에 아직도 남아 있는 '제2의 고향' 은 성동구 마장동이다. 다만 거기서 내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올 때 좀 뒤끝이 안좋게 끝났기 때문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아주 가끔이지만 향수라는 것이 있어서 찾아가곤 했는데, 그 때마다 꽤 달라진 동네의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지금도 계속 재개발 등으로 인해 특히 왕십리역 쪽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변하고 있는데, 다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길이라던가 상가의 위치는 충분히 익숙하다.
그래도 이사한 뒤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른 곳에서 다녔기 때문에 한양대 쪽과는 인연이 별로 없었고, 그 쪽에서 유명하다는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때까지도 내가 하던 식사는 집에서 먹는 밥과 학교에서 먹는 도시락 정도가 일상적이었고, 외식 빈도는 매우 낮아서 하다 못해 그 흔한 떡볶이나 순대 류의 분식도 자주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랬던 내가 이제는 소위 '식도락' 이라는 것을 즐기러 그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양대 삼거리 한켠의 다소 좁은 골목에는 이런저런 음식점과 술집이 들어서 있는데, 그 중에 옛날 경양식 삘이 나는 돈까스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끌린 건 밥과 빵이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같이 나온다는 것이었는데, 어째 돈까스 그 자체가 아니라 주객전도가 된 것 같았지만 일단 호기심이 동해 4월 말에 처음 가봤다.
빛바래고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가게 간판이 어느 정도 연식이 있음을 보여주는 듯한 가게였는데, 이름은 유리문에 쓰여져 있는 대로 행운돈까스였다. 왼쪽과 오른쪽에 메뉴 사진이 붙어 있는데, 실물과 가까운 것은 오른쪽의 입간판에 있는 것이다.
가게 안은 그리 넓지 않아서, 열다섯 명 정도가 들어가도 꽉 찰 정도였다. 실제로 식사 시간대 피크 타임에 가면 좀 기다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그래도 고객 순환 속도는 빠른 편이었다. 메뉴는 가장 싼 돈까스(4500\)부터 생선까스, 치킨까스, 치즈돈까스, 고구마돈까스, 함박스텍, 정식(이상 5000\), 그리고 가장 비싼 비후까스(5500\)까지 ~까스 종류는 웬만한 것이 다 갖춰져 있었다.
가장 비싼 것도 6000원을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연 대학가 식당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1500원을 추가 지불하면 돈까스 한 조각을 더 먹을 수 있다는 점도 특이했다. 그리고 돈까스의 경우 그냥 밥 대신 김치볶음밥이 들어간 메뉴도 돈까스와 같은 값에 제공하고 있었고, 오징어덮밥으로 바꾼 것도 5000원이었다. 다만 고구마=디저트라고 생각하는 내게 고구마돈까스는 일종의 언어도단 같아서 아예 관심 대상에서 제외했고, 나머지 메뉴들을 먹고 싶었다.
일단 돈까스와 생선까스, 함박스텍이 같이 나오는 정식을 처음으로 골랐는데, 과연 어떻게 나올 지 궁금해 하면서 기다렸다.
평범한 연장통. 후춧가루는...
식전 수프용. 그냥 밀가루 크림수프 같아 보이는데, 땅콩가루를 넣어서 만드는지 고소한 맛이 강했다.
그리고 같이 나온 빵. 모닝롤 위에 딸기잼 한 숟갈을 얹은 모양새인데, 다만 이렇게 나오면 식전빵 보다는 식후 디저트 같은 느낌이 강해서 음식 다 먹고 먹기로 했다. 빵 자체는 평범했는데, 아마 스팀기에 쪄서 나오는 것 같았고 서로 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 빵 표면이 반질반질할 정도로 기름이 많았다.
이어 단무지와 깍두기가 곁들여진 정식이 차려져 나왔다.
왼쪽부터 차례로 돈까스-함박(달걀프라이 위)-생선까스였는데, 함박은 상당히 작았던 반면 돈까스는 달걀프라이 밑에 보이는 것까지 해서 가장 많았다. 그래도 함박의 동반자 달걀프라이가 같이 나온다는 점에서 구색 자체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소스는 모두 똑같은 데미글라스 계열로 뿌려져 나왔는데, 약간 단맛이 강하기는 했지만 딱히 이상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일단 밑반찬 약간 빼고는 모두 비워냈고, 이제 다음부터는 개별 메뉴를 하나 씩 먹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바로 두 번째로 찾아갔고, 이번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돈까스를 시켰다. 고기 두 덩이가 나왔는데, 물론 입에는 아주 잘 들어갔지만 먹다가 왼쪽 어금니가 깨져버리는 영 좋지 않은 경험을 했다.
물론 돈까스가 딱딱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고, 치과 가서 설명을 들어보니 원래 좀 금이 가있던 부위가 깨져버린 거라고 했다. 하지만 깨진 부위가 너무 커서, 결국에는 비싼 돈 들여 인공 치아를 씌워야 했다. 그래서 이후 계획에 당연히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세 번째 방문은 그로부터 약 20일 지나서야 가능했다.
세 번째 가서 먹은 치킨까스. 두 덩이가 나온 돈까스와 달리 커다란 것 한 덩이가 나왔는데, 이 날만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맛은 물론 고기 차이 때문에 당연히 담백한 편이었다.
사진 빨이 영 좋지 않지만, 네 번째 가서 먹은 생선까스. 생선살 네 조각이 튀겨져 나왔는데, 다만 소스가 모두 똑같다 보니 왠지 조금씩 질린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적어도 생선까스 만은 타르타르소스를 썼으면 했는데, 가격을 맞추기 위한 고육책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섯 번째 갔을 때는 최고가 메뉴인 비후까스를 주문했다. '양이 좀 적을 것 같아서 돈까스를 좀 곁들였습니다' 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두 비후까스 덩어리 사이에 있는 게 돈까스다. 사실 저거 없어도 양이 그다지 적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호주산 쇠고기를 쓴다는 비후까스는 돈까스나 생선까스보다는 좀 더 성실히 씹어야 했는데, 그 때문에 치과 치료가 완전히 마무리된 뒤에야 이렇게 먹을 수 있었다.
여섯 번째 방문은 원래 광주에 갔다온 직후 하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돈을 좀 더 모아야 했기 때문에 돌아오자마자 다음 날부터 또 알바를 뛰느라 다소 늦어져 6월 첫째 주의 마지막 날에나 갈 수 있었다.
이번에 시킨 건 함박스텍. 다른 까스류 메뉴와 달리 이번에는 양배추 샐러드와 밥이 따로 담겨져 나왔다.
그리고 약 1분 뒤 소스가 자글자글 끓고 있는 철판에 뜨거운 햄버그스테이크와 달걀프라이가 담겨져 나왔다. 물론 뜨거운 것을 잘 못먹는 터라 좀 두려운 모습이었지만, 사실 함박이라면 이렇게 철판에 뜨겁게 나오는 것이 정석이었기 때문에 되레 만족스러웠다.
함박은 흔히 까스류보다 양이 적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이상하게 그 '높이' 가 좀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달걀프라이를 들춰보니,
의외로 햄버그스테이크 외에 꽤 큼지막한 돈까스까지 한 조각 들어가 있었다. 햄버그 자체는 좀 작았는데, 이것도 세 덩이가 나왔기 때문에 돈까스가 없어도 납득할 만한 양이었지만. 원래 이러한 형태로 나오는 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주는 돈까스는 사양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으니 싹 먹어치웠다.
이렇게 정식 메뉴에 나오는 삼대장에 치킨까스, 비후까스까지 쭉 먹었는데, 치즈돈까스도 신경쓰이는 메뉴라 일곱 번째 갔을 때 주문했다.
며칠 동안 한창 더울 때 알바를 하면서 사타구니의 염증, 근육통으로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몸과 정신 모두 상당히 힘들었는데, 그래도 식욕은 살아 있어서 처음 나왔을 때는 '뭐지 왜 이렇게 작아' 라는 생각을 했다.
일반 돈까스보다 양이 적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께는 꽤 두꺼운 편이었다.
먹기 위해 다 잘라놓으니 속에 있던 피자치즈가 쭉 흘러나왔다. 비록 치즈와 고기의 합체 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 고기 따로 치즈 따로 먹는 경우가 많았지만, 치즈돈까스 특유의 씹는 맛은 괜찮은 편이라 고생 끝에 받은 밥상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후에도 새로 찾아간 곳은 몇 군데 되는데, 대부분 돈까스 아니면 순대국 종류를 파는 곳이었다. 다만 이걸 올리기 위해 중간에 짤린 광주 여행기가 다 끝나고 나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