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광주 방문에서 마지막 식사로 택한 것은 국밥이었다. 시장통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어서 뭐 그런 걸 먹고 왔냐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부산의 돼지국밥처럼 국밥이라는 음식도 지역마다 특색이 있기 마련이다.
국밥골목에는 상당히 여러 군데의 국밥집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그 중 뭔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행복식당이라는 곳을 골랐다.
국밥 종류의 가격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평균적이었는데, 족발이나 수육, 머릿고기는 오히려 다른 동네보다 더 싼 것 같았다. 물론 여럿이서 함께 하는 술자리였다면야 유효한 선택이었겠지만, 혼자 방문한 이방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일단 모듬국밥을 주문하려다가 '특' 자가 붙어 있는 특모듬국밥을 택했다.
먼저 깔린 밑반찬류. 다만 오이소박이는 확실히 내가 못먹는 것이었으니 상에 오르자 마자 물렸다. 하지만 문제는 오이소박이가 아니었다.
국밥을 기다리고 있을 때 겉보기에도 상당히 만취한 어느 남자가 들어와서는 내 바로 뒷쪽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고, 주문하겠냐는 소리에도 별로 반응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수저통을 쳐서 바닥에 떨구기도 했다. 결국 진상 손님(=손놈)이라는 것이 확실해지자 식당 아주머니들이 '그냥 가시는 것이 좋겠다' 고 타일렀는데, 이 자식이 뭣때문에 꼭지가 돌았는지 주변에 있는 손에 집히는 것을 마구 던져서 박살내더니 결국 주인에게 손찌검까지 했다.
나도 이런 진상은 예전에 편의점 알바를 잠깐 했을 때 종종 마주친 적이 있었고, 그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 배운 덕에 조용히 일어나 핸드폰으로 112를 눌렀다. 딱히 모범 시민도 아니었고 경찰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봉변을 당한 적도 없었으니 저 전화번호를 사용한 적도 거의 없었는데, 일단 식당 위치와 정황을 대충 알려주었다. 그러자 경찰 쪽에서는 증심사 쪽에서 내려오느라 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다행히 그 손놈은 제 풀에 지쳤는지 어쨌는지, 다시 의자에 주저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손놈과 가장 가까이 있던 내 자리를 방 쪽으로 옮겨주었고, 거기서 식사를 했다.
이 집만 그런 지는 모르겠는데, 국밥이 나오기 전에 이렇게 찹쌀순대와 내장 등이 담긴 접시가 초고추장과 함께 전채처럼 나왔다. 분명한 건, 저게 내가 손놈을 경찰에 신고해줬기 때문에 주어진 '포상' 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서 주문을 한 뒤에도 이렇게 상이 깔렸으니까.
그리고 국밥도 나왔다. 특이니까 당연히 순대와 머릿고기, 내장이 듬뿍 올라와 있었고, 들깨가루와 다대기 양념, 채썬 파도 예상 범위 내의 먹거리들이었다. 하지만 콩나물이 특히 눈에 띄었는데, 전주 쪽의 콩나물국밥이 융합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콩나물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곧장 다대기와 들깨가루를 풀어넣고, 새우젓도 넣어서 간을 보고 먹기 시작했다. 느끼하고 기름질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그런 부위는 적게 들어 있었고 콩나물 덕이기도 한지 비교적 깔끔한 맛이었다.
순대의 경우에도 특모듬국밥이라 그런지, 그냥 찹쌀순대가 아니라 이렇게 콩나물을 넣어 만든 피순대처럼 보이는 것이 들어가 있었다. 쫄깃한 내장 맛도 좋았는데, 다만 먹다가 풋고추로 입이 매워지는 바람에 먹는 속도가 좀 느려지기도 했다.
먹고 있는 동안 경찰관들이 들어왔고, 자초지종을 물어본 뒤 현장 사진을 찍고 손놈을 데리고 나갔다. 어떻게 됐는 지는 모르겠고 이 동네에서는 일상적인 일인 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술이 웬수가 아니라 술먹고 꼬장부리는 놈이 웬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몇 가지 찬을 빼면, 국밥은 깨끗이 먹어치웠다. 손놈 때문에 기분 잡친 식사이기는 했지만, 맛과 양이 그것을 보상해 줬으니 쌤쌤이었나? 아무튼 그렇게 마지막 끼니를 때우고 다시 광천터미널로 돌아왔다.
여기서 좀 고민을 했다. 지금 출발해도 이미 시간은 늦었으니 서울에 닿아도 대중교통은 택시 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첫차에 맞추려고 심야우등을 타자니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하룻밤을 다시 첫 날 묵었던 그 찜질방에서 보냈고, 다음날 아침에 일반고속을 타고 돌아왔다.
허비한 시간도 많았고, 또 돌발 상황도 겪기는 했지만 귀와 입의 즐거움은 만족스러웠으니 '또 가고 싶다' 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 공연 프로그램의 독특함에 이끌려 불과 한 달 남짓 뒤에 세 번째로 광주에 갔다왔는데, 이번에는 좀 더 단순한 일정이기는 했지만 이것도 추후 정리해서 포스팅하려고 한다.
사실 이것 말고도 또 방문한 사마르칸트라던가 용인경전철 탑승기, 을지로 쪽의 순대국/감자국 전문 식당, 일본에서 주문한 CD 등 쓸 것은 넘쳐난다. 언제 쓰느냐가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