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지하철/광역철도(중전철) 사업이 예산 문제로 계속 좌초되자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경전철이었고, 이미 운영하고 있는 노선부터 건설중인 노선, 계획중인 노선까지 꽤 여러 정보가 잡히고 있다. 하지만 그 중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냐고 하면 한숨만 나온다.
부산과 의정부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개통된 경전철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 용인경전철(에버라인)인데, 다만 이 노선도 의정부와 마찬가지로 여론이 영 좋지 않고 또 서울에서도 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 내서 타보기 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분당선이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왕십리역까지 연장된 덕에 기흥역까지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경전철로 갈아탈 때 수도권 환승 요금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부터 의정부경전철의 그것처럼 진한 망삘의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의정부경전철은 환승 통로라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었지만, 이건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서 일단 역사 밖으로 나가야 했다.
코레일의_간접적_용인경전철_디스.jpg. 개통된 지가 두 달이 가까워 오는 데도 역세권 지도에서는 용인경전철의 경 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튼 4번 출구로 나와 공사중인 환승통로 부지의 임시 칸막이를 따라 걷다 보니 경전철 기흥역이 바로 눈에 띄었다.
환승통로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경전철 역사 밑으로 난 길로 이동해야 하는데, 밤길 거닐 기가 신경쓰이거나 꺼려지는 사람이라면 이것도 이것 대로 문제일 것 같았다.
경전철 역사의 역세권 지도. 물론 자기들 노선이니 당연히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환승역에서부터 대우가 좋지 않으니 참 보기가 거시기했다.
일단 추가 요금 결제가 짜증나기는 했지만, 교통카드를 갖다대고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승차 전용 플랫폼 맞은편에 서 있던 경전철 차량.
그리고 내가 탄 차량. 둘 다 외관은 래핑 처리가 되어 꽤 화려했는데, 이 경전철의 종착점에서 가깝...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에버랜드를 의식한 것이었다.
모든 차량은 1량 편성이었는데, 대신 의정부나 부산 4호선, 부산-김해 노선의 것보다는 몸집이 좀 컸다. 그리고 무인 운전인 것은 이들 노선과 동일했는데, 덕분에 가는 내내 이렇게 맨 앞에서 주변 경치를 보며 갈 수 있었다.
가다가 맞은편에서 마주친 차량. 에버랜드식 래핑이 된 차량 외에 이렇게 평범한 차량도 같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차량이나 승차 인원은 적었는데, 이걸 탔을 때가 오후 6~7시, 그러니까 평일 퇴근 시간대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참담한 실적이었다.
여타 경전철과 마찬가지로 이 노선도 제3궤조 집전식이라 많은 역사들의 천정이 낮게 설계되어 있었고, 또 비상시에 대비해 선로 중간에 대피용 둔턱이 마련되어 있었다. 측면에 두지 않은 것은 당연히 감전 사고를 막기 위한 것이겠고.
그렇게 30분 남짓을 달려 종착역인 전대·에버랜드역에 도착했다. 반대편 선로가 아니라 대기 중인 차량이 있는 쪽에 도착했는데, 내리자마자 곧바로 승객들을 싣고 반대 방향으로 출발했다. 어차피 빨리 가야 할 필요도 없었으니, 그냥 보내고 역사 내부를 둘러봤다.
역명판. 근처에 논밭 혹은 축사가 있는 지, 은은하게 풍겨오는 분뇨 혹은 거름 냄새가 인상적이었다.
선로 끝에는 저렇게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나중에 노선 연장을 하려고 해도 힘든 구조였다. 서울 9호선의 개화역을 일부러 산 바로 앞에 놓은 것과 비슷...한가?
그리고 모든 역사에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비상시에 역사 밖으로 재빨리 빠져나갈 수 있도록 계단과 비상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선로 끝에 있던 열차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선로 보안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기회도 있었는데, 스크린도어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지만 사람이 선로 가까이 접근할 경우 감지 센서가 작동해 경보음과 메시지가 방송되는 식이었다. 어떤 철없는 청소년들인지 젊은이들인지가 일부러 그 짓을 하길래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가는 길. 대부분의 종착역이 그렇지만, 여기도 수요는 참 안나오게 생겼다. 그나마 역사 근처에서 에버랜드로 가는 직통 버스와 대형 주차장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삼가역에서 초당역 가는 길에서 이렇게 선로가 삼각선 비슷하게 갈라지는데, 다른 노선들이 대개 종착역 쪽에 차량기지를 두는 데 반해 용인경전철은 이렇게 노선 중간에 기지가 있는 식이었다. 물론 전대·에버랜드역은 기지 두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고, 기흥역도 마찬가지라 이런 식으로 설계했겠지만.
기흥역으로 진입하는 모습.
이렇게 해서 약 1시간 정도의 경전철 탑승이 끝났다. 기흥역에서 갈 때도 그랬지만,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로 승객의 숫자는 비슷했다. 그래서 앉아서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아마 다시 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경치나 다 구경하고 오자는 식으로 계속 서서 왔다.
내리기 직전에 본 노약자/임산부석의 무음 경보 장치. 물론 차량 내에 비상용 경보 장치가 있는 거야 당연하지만, 이렇게 무음으로 설치한 것은 내가 본 걸로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여러 선진적인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었지만, 아무리 시스템이 최신이고 성능이 최고라고 해도 노선 설계가 병맛이라면 허무할 수밖에 없다.
개찰구를 나온 뒤 뭔가 밖으로 나가는 유리문이 눈에 띄었는데, 모두 잠겨 있고 추가로 노란 바리케이드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당연히 밖으로 나가면 아래로 떨어져 버리니까. 밖에서는 이 문으로 연결되는 환승통로가 한창 공사중이었는데, 공사 진척도가 그다지 높지는 않아 보였다.
용인에 살아보지 않아 내가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지인이 살고 있는 수지구 쪽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상당한 혼돈의 카오스를 경험한 바로는 경전철이 더 절실히 필요한 곳은 수지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권 신도시 대부분이 '집부터 올리고 대중교통과 기반시설은 나중에' 라는 거지같은 도시계획으로 생겨난 터라 이런 문제는 늘 발생하고 있지만, 용인은 그 중에서도 특출나게 이뭐병스러운 곳이다.
그나마 용인보다 먼저 개발이 된 의정부 쪽도 경전철이 제 기능을 못한다고 까이고 있는데, 대체 무슨 깡으로 수지구를 아오안으로 만들고 상대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은 처인구 쪽으로만 노선을 부설했는 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처인구도 나중에 개발이 될 테니까' 는 식의 선견지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선견지명이라는 것의 효과를 기다리기까지 한 해 몇십 억원이나 되는 적자를 보고 시공 업체와 시청이 법정에서 병림픽까지 벌이는 거라면 그건 그냥 바보짓이다.
물론 신도시의 입주 예정율과 거기에 부설되는 철도의 이용객을 추산하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추산 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여기서도 드러나는데, 여전히 '보여주기식' 토목공사나 홍보 사업에 지나치게 몰두해 재정 적자나 부작용을 염두하지 않는 많은 지자체들의 병크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이게 국가 재정 사업이 아닌 민자사업이라는 것도 문제인데, 이러다 나중에 인천공항철도처럼 거의 반강제 국유화되어 세금으로 민자 노선의 적자를 채워주는 변태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일단 이걸로 지금까지 수도권에서 개통된 모든 지하철/광역철도 노선을 다 이용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올해 말에 수원까지 완전히 개통된다는 분당선이나 2014 아시안 게임을 목표로 공사 속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수인선 쪽에 더 흥미를 두고 있다. 그나마 이들 노선은 어느 정도 수요가 긍정적으로 예측되었고, 또 광역전철 사업인 만큼 숱한 민자사업 경전철의 실패 사례와는 비교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아직까지 못타본 대전지하철은 언제 타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