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달도 안되어 세 번째로 광주를 찾게 만든 것은 역시 클래식 공연이었다. 6월 28일에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광주시향 수시공연이었는데, 실연으로는 듣기 힘든 곡인 멘델스존의 교향곡 1번이 연주된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광천터미널에서 남광주 방향으로 가는 가장 빠른 노선이라는 첨단09 버스를 타고 동구청에서 가장 가깝다는 문화전당(남) 정류장에서 내렸다. 점심먹을 곳이 동구청 뒷골목만 찾으면 땡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아주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바로 여기. 광주까지 가서 뜬금없이 웬 중국집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중국집 볶음밥이야 돈까스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식 메뉴이고 특히 여기가 꽤 잘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다할 수 없었다.
도착했을 때가 마침 12시 47분이라 식사 손님이 꽤 많았는데, 그 때문에 가게 내부의 촬영은 힘들었고 메뉴판도 담아오지 못했다. 일반적인 좌식 테이블 외에 안쪽에 온돌방식 식사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고, 주방 뒷편에 방 같은 곳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가게의 일부를 주인 내외분이 가정집으로도 쓰는 모양이었다. 음식 가격은 대충 일반 중국집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혼자 갔기 때문에 자리가 부족해서, 콩국수를 훌훌 끌어넣던 어르신과 합석을 해야 했다. 일단 기본적인 연장통. 고춧가루를 소위 얘기하는 락앤락 식 용기에 담은 것은 처음 봤다.
주문한 볶음밥 곱배기(6000\). 보통을 시킬까 했지만, 이번 여행은 꽤 예산이 쪼들린 가운데 했기 때문에 '아예 점심을 푸짐하게 먹어서 저녁 생각도 나지 않게 만들자' 는 의지(???)로 곱배기를 시켰다.
당연히 양도 꽤 많았는데, 파와 당근, 약간의 돼지고기와 달걀 만으로 볶아낸 밥은 아주 고슬고슬했고 '불맛' 도 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짜장소스를 붓지 않고 볶음밥을 먹으면서 짬뽕국물과 함께 간간이 떠먹었다.
먹는 동안 메뉴판에 있던 '국밥' 이라는 메뉴가 좀 신경쓰였는데, 중국집에서 무슨 국밥을 파는 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옆 테이블에서 마침 국밥을 시키길래 곁눈질로 힐끗 보니까, 타지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짬뽕밥이었다. 어쩐지 메뉴판에 짬뽕이나 삼선짬뽕은 있어도 짬뽕밥이 없다 했지. 여기 외에도 광주/전남 일대의 많은 중국집에서 짬뽕밥 대신 국밥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한다.
워낙 양이 많다 보니 2/3 쯤 비우고 나서는 좀 먹는 속도가 줄었지만, 어쨌든 차려진 맛난 음식을 절대 남길 수 없어서 단무지와 깍두기 빼고는 싹 비웠다. 화상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볶음밥의 맛이라는 게 꽤 잘 살려져 있어서 배와 입 모두가 즐거운 첫 끼니였다. 그리고 의도했던 대로 워낙에 든든해서 저녁은 그냥 패스했다.
아직 공연까지 시간은 꽤 많이 남아 있었는데, 그래서 잔여 시간은 동구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금남로 쪽에서 보내기로 했다. 마침 5월에도 갔다온 알라딘 중고책방 생각도 나서 그리로 갔는데, 가기 전에 좀 더 시간을 죽이고자 지하철 한 바퀴를 한 번 더 돌기로 했다. 어차피 연장 개통 같은 게 없었으니 딱히 변한 건 없으므로 사진 같은 건 거의 안찍었지만.
하지만 절대 지나칠 수 없던 것도 있었다. 바로 이 탄산음료 자판기. 서울/수도권 쪽에서는 언제부턴가 아예 그냥 캔/플라스틱병 음료 자판기로 몽땅 대체되어서 이제 찾아볼 수도 없지만, 광주지하철에서는 상당히 많은 역사에서 이 자판기가 버젓이 운영되고 있었다(이 사진은 문화전당역의 자판기다).
게다가 새로운 캔/병음료 자판기가 이 자판기와 공존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이 사진 자체는 첫 방문 때 찍은 거지만, 막상 뽑아 마셔본 건 이번 방문 때가 처음이었다.
고른 음료는 칠성사이다.절대 빈 컵만 나온 게 아니다! 미란다나 탐스 같은 색깔 있는 음료를 골랐다면 좀 더 티가 났겠지만, 그냥 마시고 싶은게 사이다였으니 짤방의 비주얼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탐스라는 상표도 이제는 거의 사어가 되었는데, 여기서는 아직도 팔고 있는지 포도맛을 고를 수 있었다. 다만 파인맛은 펩시콜라와 함께 품절 상태.
좀 더 음료 같은 짤방. 얼음없음 버튼도 있었지만, 일부러 누르지 않고 그대로 뽑았다. 어차피 탄산음료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고 한 번에 많이 마시기도 거시기하니 개인적으로는 이런 컵 자판기로 뽑아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에서는 이제 그런 선택도 할 수 없다. 물론 굳이 시판품 자판기로 바꾼 것도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으니 무조건 반발하거나 지나친 추억팔이로 미화시키는 것도 무리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서울우유 제품만 파는 자판기도 있었다. 이런 형태의 자판기 역시 서울/수도권 노선에서 흔해졌지만, 특정 회사의 음료 위주로만 파는 자판기는 없다는 점에서 이것도 꽤 유니크한 모습이었다. 다만 여기서는 뭘 뽑아먹지는 않았다.
지하철을 한 바퀴 쭉 돈 후에는 다시 금남로로 가서 알라딘 중고책방을 찾았다. 물론 여전히 광주시향 CD라던가 하는 내가 찾던 레어템은 없었지만, 대신 크라잉 넛 2~3집과 아워 네이션 5집을 사왔다. 옛날에는 워크맨만 돌리던 탓에 대부분의 인디 음반을 카세트 테이프로만 구입했지만, 이제는 카세트 테이프 자체가 과거의 유물이 되어 있고 오디오도 쓰지 않고 있어서 다시 CD로 구입하고 있다.
중고책방을 나온 뒤 이 쯤이면 되겠다 싶어서 바로 버스를 타고 문화예술회관 쪽으로 이동했다. 공연장인 소극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서, 미리 준비해 간 연주곡들의 관현악 총보를 넘겨보며 로비에서 시간을 때웠다. 공연 시작 30분 전에 문이 열려 들어갔는데, 대극장은 두 차례 이용했지만 소극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략 체임버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세팅된 무대는 반원형 모양이었고, 객석은 소극장인 만큼 층수 구분 없이 그냥 계단식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음향. 공연이 시작된 뒤에 내 귀에 들린 것은 마치 일반 학교 강당에서 연주하는 것 같이 성마른 소리였다. 여음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특히 중간에 연주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과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은 섬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나게 딱딱한 음악이 되었다. 물론 악단의 기량이 아직 프랑스 근대음악을 제대로 소화하기에 역부족이라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나마 양 끝에 위치했던 멘델스존의 서곡 '핑갈의 동굴' 과 교향곡 1번은 지휘자가 일부러 그 건조한 음향을 이용했는 지 베토벤 풍의 박력있는 해석을 취한 탓에 그렇게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극장 자체의 음향 상태가 매우 구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여기서 계속 이런 생음악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것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여행 때도 이용했던 광천터미널 근처의 찜질방으로 갔다. 물론 들어가기 전에 아래층에 있는 PC방에서 폰카 사진 정리와 여타 작업을 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다만 공연이 끝난 뒤 뒤늦은 허기가 밀려오길래, 찜질방 체크인을 하면서 카운터에서 구운 달걀 두 개를 추가 구입해 저녁 대신 까먹고 잤다.
다음 날에는 사실 딱히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그냥 아침 먹고 올라가는 것 뿐이었는데, 그 아침은 남광주시장 국밥 골목으로 가서 때웠다. 방문한 곳은 두 번째 때와 마찬가지로 행복식당이었고, 주문한 것도 마찬가지로 특모듬국밥(6000\)이었다.
차려진 한 상. 다만 이 때는 순대와 간, 염통 서비스가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녁 시간 때만 제공되는 거라고 한다. 다른 테이블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게 없는 걸 보면 확실한 것 같다. 어차피 국밥 자체가 양이 꽤 많은 편이니 그게 없다고 해서 사무칠 듯한 아쉬움까지 느끼지는 못했지만.
국밥 위의 다대기와 들깨가루, 그리고 이 지역 특유의 콩나물이 듬뿍 올라간 모습은 여전했다.
다만 이번에는 먹는 방식을 좀 바꿔보기로 했다. 우선 다대기와 들깨가루를 뒤적여 섞고 새우젓도 넣어 간을 본 뒤, 이렇게 내장 부위와 순대를 수육처럼 건져서 국밥 속의 콩나물이나 밑반찬과 함께 먹었다.
그리고 내장과 순대를 어느 정도 비웠을 쯤에 남은 고기와 내장을 밥과 함께 먹었다. 이렇게 먹으니 국물 속에 너무 오래 방치될 경우 질겨지기 마련인 내장의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있었고, 밥알에도 국물이 충분히 배어 감칠맛이 났다.
비워낸 뒤. 이 특모듬국밥 외에도 소머리국밥이라던가 특정 부위만을 담아내는 머리고기국밥, 내장국밥, 순대국밥 같은 것도 먹고 싶었지만, 푸드파이터가 아닌 이상 끼니는 제한되어 있고 예산도 마찬가지였으니 이걸로 만족해야 했다. 바로 광천터미널로 온 뒤 거의 만석이 된 서울행 버스를 타고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이후 나는 여행은 물론이고 외출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차후 포스팅하게 될 독일 주문품으로 돈이 꽤 많이 깨지면서 그걸 메꾸려고 알바를 이것저것 하고 있기 때문인데, 역시 카드는 긁기는 쉽지만 긁은 걸 지불하는 건 쉽지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물론 몇백만원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간에.
사실 독일에서 주문한 건 대부분 예전에 나치 시대의 독일 재즈를 다룬 포스팅에서 언급했고, 또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를 통해 이미 들어본 거라 딱히 쓸 것은 없다. 다만 그 중 독일무도오락악단의 녹음 대부분을 담은 음반 세 종류에 대해서는 따로 쓸 가치가 있으니 그걸 다룰 생각이다.
이번에는 좀 서둘러서 가기로 하고 아침 9시 이전 차를 예약했는데, 점심을 거기서 때우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가는 동안에는 휴게소의 군것질 거리에도 손을 대지 않았고, 그저 챙겨간 베지밀B만 홀짝거렸을 뿐이었다.
광천터미널에서 남광주 방향으로 가는 가장 빠른 노선이라는 첨단09 버스를 타고 동구청에서 가장 가깝다는 문화전당(남) 정류장에서 내렸다. 점심먹을 곳이 동구청 뒷골목만 찾으면 땡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아주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바로 여기. 광주까지 가서 뜬금없이 웬 중국집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중국집 볶음밥이야 돈까스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식 메뉴이고 특히 여기가 꽤 잘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다할 수 없었다.
도착했을 때가 마침 12시 47분이라 식사 손님이 꽤 많았는데, 그 때문에 가게 내부의 촬영은 힘들었고 메뉴판도 담아오지 못했다. 일반적인 좌식 테이블 외에 안쪽에 온돌방식 식사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고, 주방 뒷편에 방 같은 곳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가게의 일부를 주인 내외분이 가정집으로도 쓰는 모양이었다. 음식 가격은 대충 일반 중국집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혼자 갔기 때문에 자리가 부족해서, 콩국수를 훌훌 끌어넣던 어르신과 합석을 해야 했다. 일단 기본적인 연장통. 고춧가루를 소위 얘기하는 락앤락 식 용기에 담은 것은 처음 봤다.
주문한 볶음밥 곱배기(6000\). 보통을 시킬까 했지만, 이번 여행은 꽤 예산이 쪼들린 가운데 했기 때문에 '아예 점심을 푸짐하게 먹어서 저녁 생각도 나지 않게 만들자' 는 의지(???)로 곱배기를 시켰다.
당연히 양도 꽤 많았는데, 파와 당근, 약간의 돼지고기와 달걀 만으로 볶아낸 밥은 아주 고슬고슬했고 '불맛' 도 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짜장소스를 붓지 않고 볶음밥을 먹으면서 짬뽕국물과 함께 간간이 떠먹었다.
먹는 동안 메뉴판에 있던 '국밥' 이라는 메뉴가 좀 신경쓰였는데, 중국집에서 무슨 국밥을 파는 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옆 테이블에서 마침 국밥을 시키길래 곁눈질로 힐끗 보니까, 타지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짬뽕밥이었다. 어쩐지 메뉴판에 짬뽕이나 삼선짬뽕은 있어도 짬뽕밥이 없다 했지. 여기 외에도 광주/전남 일대의 많은 중국집에서 짬뽕밥 대신 국밥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한다.
워낙 양이 많다 보니 2/3 쯤 비우고 나서는 좀 먹는 속도가 줄었지만, 어쨌든 차려진 맛난 음식을 절대 남길 수 없어서 단무지와 깍두기 빼고는 싹 비웠다. 화상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볶음밥의 맛이라는 게 꽤 잘 살려져 있어서 배와 입 모두가 즐거운 첫 끼니였다. 그리고 의도했던 대로 워낙에 든든해서 저녁은 그냥 패스했다.
아직 공연까지 시간은 꽤 많이 남아 있었는데, 그래서 잔여 시간은 동구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금남로 쪽에서 보내기로 했다. 마침 5월에도 갔다온 알라딘 중고책방 생각도 나서 그리로 갔는데, 가기 전에 좀 더 시간을 죽이고자 지하철 한 바퀴를 한 번 더 돌기로 했다. 어차피 연장 개통 같은 게 없었으니 딱히 변한 건 없으므로 사진 같은 건 거의 안찍었지만.
하지만 절대 지나칠 수 없던 것도 있었다. 바로 이 탄산음료 자판기. 서울/수도권 쪽에서는 언제부턴가 아예 그냥 캔/플라스틱병 음료 자판기로 몽땅 대체되어서 이제 찾아볼 수도 없지만, 광주지하철에서는 상당히 많은 역사에서 이 자판기가 버젓이 운영되고 있었다(이 사진은 문화전당역의 자판기다).
게다가 새로운 캔/병음료 자판기가 이 자판기와 공존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이 사진 자체는 첫 방문 때 찍은 거지만, 막상 뽑아 마셔본 건 이번 방문 때가 처음이었다.
고른 음료는 칠성사이다.
좀 더 음료 같은 짤방. 얼음없음 버튼도 있었지만, 일부러 누르지 않고 그대로 뽑았다. 어차피 탄산음료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고 한 번에 많이 마시기도 거시기하니 개인적으로는 이런 컵 자판기로 뽑아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에서는 이제 그런 선택도 할 수 없다. 물론 굳이 시판품 자판기로 바꾼 것도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으니 무조건 반발하거나 지나친 추억팔이로 미화시키는 것도 무리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서울우유 제품만 파는 자판기도 있었다. 이런 형태의 자판기 역시 서울/수도권 노선에서 흔해졌지만, 특정 회사의 음료 위주로만 파는 자판기는 없다는 점에서 이것도 꽤 유니크한 모습이었다. 다만 여기서는 뭘 뽑아먹지는 않았다.
지하철을 한 바퀴 쭉 돈 후에는 다시 금남로로 가서 알라딘 중고책방을 찾았다. 물론 여전히 광주시향 CD라던가 하는 내가 찾던 레어템은 없었지만, 대신 크라잉 넛 2~3집과 아워 네이션 5집을 사왔다. 옛날에는 워크맨만 돌리던 탓에 대부분의 인디 음반을 카세트 테이프로만 구입했지만, 이제는 카세트 테이프 자체가 과거의 유물이 되어 있고 오디오도 쓰지 않고 있어서 다시 CD로 구입하고 있다.
중고책방을 나온 뒤 이 쯤이면 되겠다 싶어서 바로 버스를 타고 문화예술회관 쪽으로 이동했다. 공연장인 소극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서, 미리 준비해 간 연주곡들의 관현악 총보를 넘겨보며 로비에서 시간을 때웠다. 공연 시작 30분 전에 문이 열려 들어갔는데, 대극장은 두 차례 이용했지만 소극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략 체임버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세팅된 무대는 반원형 모양이었고, 객석은 소극장인 만큼 층수 구분 없이 그냥 계단식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음향. 공연이 시작된 뒤에 내 귀에 들린 것은 마치 일반 학교 강당에서 연주하는 것 같이 성마른 소리였다. 여음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특히 중간에 연주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과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은 섬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나게 딱딱한 음악이 되었다. 물론 악단의 기량이 아직 프랑스 근대음악을 제대로 소화하기에 역부족이라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나마 양 끝에 위치했던 멘델스존의 서곡 '핑갈의 동굴' 과 교향곡 1번은 지휘자가 일부러 그 건조한 음향을 이용했는 지 베토벤 풍의 박력있는 해석을 취한 탓에 그렇게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극장 자체의 음향 상태가 매우 구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여기서 계속 이런 생음악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것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여행 때도 이용했던 광천터미널 근처의 찜질방으로 갔다. 물론 들어가기 전에 아래층에 있는 PC방에서 폰카 사진 정리와 여타 작업을 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다만 공연이 끝난 뒤 뒤늦은 허기가 밀려오길래, 찜질방 체크인을 하면서 카운터에서 구운 달걀 두 개를 추가 구입해 저녁 대신 까먹고 잤다.
다음 날에는 사실 딱히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그냥 아침 먹고 올라가는 것 뿐이었는데, 그 아침은 남광주시장 국밥 골목으로 가서 때웠다. 방문한 곳은 두 번째 때와 마찬가지로 행복식당이었고, 주문한 것도 마찬가지로 특모듬국밥(6000\)이었다.
차려진 한 상. 다만 이 때는 순대와 간, 염통 서비스가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녁 시간 때만 제공되는 거라고 한다. 다른 테이블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게 없는 걸 보면 확실한 것 같다. 어차피 국밥 자체가 양이 꽤 많은 편이니 그게 없다고 해서 사무칠 듯한 아쉬움까지 느끼지는 못했지만.
국밥 위의 다대기와 들깨가루, 그리고 이 지역 특유의 콩나물이 듬뿍 올라간 모습은 여전했다.
다만 이번에는 먹는 방식을 좀 바꿔보기로 했다. 우선 다대기와 들깨가루를 뒤적여 섞고 새우젓도 넣어 간을 본 뒤, 이렇게 내장 부위와 순대를 수육처럼 건져서 국밥 속의 콩나물이나 밑반찬과 함께 먹었다.
그리고 내장과 순대를 어느 정도 비웠을 쯤에 남은 고기와 내장을 밥과 함께 먹었다. 이렇게 먹으니 국물 속에 너무 오래 방치될 경우 질겨지기 마련인 내장의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있었고, 밥알에도 국물이 충분히 배어 감칠맛이 났다.
비워낸 뒤. 이 특모듬국밥 외에도 소머리국밥이라던가 특정 부위만을 담아내는 머리고기국밥, 내장국밥, 순대국밥 같은 것도 먹고 싶었지만, 푸드파이터가 아닌 이상 끼니는 제한되어 있고 예산도 마찬가지였으니 이걸로 만족해야 했다. 바로 광천터미널로 온 뒤 거의 만석이 된 서울행 버스를 타고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이후 나는 여행은 물론이고 외출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차후 포스팅하게 될 독일 주문품으로 돈이 꽤 많이 깨지면서 그걸 메꾸려고 알바를 이것저것 하고 있기 때문인데, 역시 카드는 긁기는 쉽지만 긁은 걸 지불하는 건 쉽지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물론 몇백만원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간에.
사실 독일에서 주문한 건 대부분 예전에 나치 시대의 독일 재즈를 다룬 포스팅에서 언급했고, 또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를 통해 이미 들어본 거라 딱히 쓸 것은 없다. 다만 그 중 독일무도오락악단의 녹음 대부분을 담은 음반 세 종류에 대해서는 따로 쓸 가치가 있으니 그걸 다룰 생각이다.
Posted by 머나먼정글